“불이익 받을까 봐”… 상사 과제 뒷바라지에 동원된 직원들

[뉴시스]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공직사회 부패 예방과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그런데 정작 권익위 내부에서 갑질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갑질 의혹 당사자로 지목된 권익위 소속 고위 공무원 K국장은 개인적 업무를 부하 직원들에게 떠넘겼다. 현재 직원들은 K씨에게 불이익을 당할까 봐 그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다고 증언한 상황이다. 권익위 감사실은 해당 사건에 대해 감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제 대필·검토, 수업 자료 번역, 대리출석까지… 대학원 생활은 직원 몫

권익위 대변인 “현재 감사 진행 중… 사건 사실이면 갑질로 볼 수 있어”

2018년부터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K씨는 대학원 과제와 온라인 강의 출석체크 등 개인적인 업무를 부하 직원들에게 시켰다. 지난 14일 KBS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K씨의 직원들은 “A조사관이 (K씨와) 같은 전공을 했다. (부서 직원이랑) 몇 명 이렇게 해서 대학원 과제를 도와드렸다”고 설명했다. K씨의 대학원 과제를 직원들이 대신한 것이다. K씨의 과제 업무는 그가 소속된 부하 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K씨는 자신과 같은 전공인 타부서 직원 B씨에게 자신의 과제를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다. K씨는 검토 문제로 과제를 보내는 것조차 본인이 아닌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시켰다. 또한 직원들에게 대학원 수업 영문 자료를 번역하는 일까지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K씨의 과제 뒷바라지를 했던 직원 중 한 명이었던 C씨는 “사실 처음에 ‘아직도 이런 관행이 있나’ 이렇게 생각을 했다”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일개 직원이라 안 했다가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게 어떤 불이익인지는 모르지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갑질 공론화
갑질 근절 교육 시행

이미 지난해 5월 권익위 내부에서는 고위 간부들이 부하 직원들에게 개인 용무를 떠맡기는 행태에 대해 공론화가 됐었다. 권익위 감사실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장 갑질과 관련해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상사의 과제를 대신한 적이 있다’는 답변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감사실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갑질 근절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K씨는 이 교육 이후에도 부하 직원들에게 온라인 강의 출석을 부탁하는 등 개인적 업무 부담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KBS 보도가 나간 이후 K씨는 과제를 대신 했던 직원들을 불러 KBS나, 제보자로 추정되는 인물과 접촉했는지 감사실에서 따로 연락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갑질 근절 교육까지 했지만 달라진 건 없어 갑질 방지 교육이 허울뿐이라는 지적이다.

권익위 대변인실 관계자는 갑질 사건과 관련해 “현재 언론 보도 후 사실 확인을 위해 현재 감사부서에서 감사를 진행 중이다”라고 입장을 전했다. 해당 문제가 갑질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관계자는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부분에 대해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며 “그러나 해당 사건과 관련해 모든 부분이 사실이라면 (K씨의 행동은) 갑질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사실 확인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사건을 가지고 ‘어떤 행위다’ 명확히 규정을 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무원 행동강령 개정안
권익위가 추진

한편 2018년 7월 정부는 공공분야 갑질을 해결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가해자 처벌 수위를 높이는 ‘공공분야 갑질 종합 대책’을 수립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막말·폭언 등을 쏟아내는 등 갑질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공공이 갑질문화 청산을 선도하겠다”며 정부가 마련한 대책이다. 그해 12월에는 해당 정책을 행위 유형별로 명확히 규정했다. 공무원 갑질행위의 개념과 유형을 구체화하는 등 공무원 행동강령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다. 개정안 내용은 ‘공무원이 직무권한 또는 지위·직책 등의 영향력을 행사해 민원인이나 부하직원, 산하기관·단체 등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거나 의무가 없는 일을 부당하게 요구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공무원 행동강령 개정안은 당시 권익위가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모범을 보여야 할 권익위가 도리어 갑질 의혹에 휩싸여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유형과 대처 방법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된지 1년이 지났지만 직장 내 폭언과 따돌림, 부당 지시 강요 등의 괴롭힘은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119가 최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직장인 45.4%가 최근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특히 괴롭힘을 당했을 때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고 답한 사람이 60% 이상을 차지했다.

직장 내 괴롭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는 경우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업무 외 일을 시키거나 일을 주지 않을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나 병가, 복지 혜택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 ▲사적인 심부름 등 개인적인 일상생활과 관련된 일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지시하는 경우 ▲다른 사람들 앞이나 온라인, 메신저상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 ▲집단 따돌림 ▲원하지 않는 흡연, 술자리 및 회식 강요 등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상시 10명 이상 근로자가 있는 기업에서는 필수적으로 취업 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에 관한 사항을 기재하고 이를 사업장 관할 지방 고용노동관서에 작성해 취업규칙을 신고해야 한다. 만약 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취업 규칙은 기본적으로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사업주에게 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 받거나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조사해야 한다. 사실이 확인됐을 경우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피해자에게 해고 등 불이익을 주는 등 법 위반 시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처해진다.

괴롭힘의 행위와 내용, 정도에 따라 신고처도 다르다. 직원 간 괴롭힘은 사내 고충처리부서에, 대표 등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괴롭힘을 가한 경우 지방고용노동관에 신고할 수 있다. 직장 내 폭행이나 명예훼손 등 범죄와 관련된 괴롭힘이 발생했을 경우 경찰이나 고용노동부(국번 없이 1350)에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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