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느낌 물씬하게, 청평사를 떠올린 이유

[편집=김정아 기자/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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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여름휴가를 떠나기도 참 힘들어진 세상이다. 여전히 전 세계는 코로나19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고, 일부 국가가 문을 열었지만 예전처럼 룰루랄라 다녀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본격적인 찜통더위와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된 지금, 마음 놓고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신박한 여행은 국내에서도 쉽지 않다. 단 하루만이라도 예전의 ‘휴가’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춘천 청평사에 다녀왔다.  

청평사를 떠올린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단 하루라는 짧은 시간에 기차, 유람선, 산행, 사찰 그리고 현지 음식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이점을 갖추고 있다. 사실 서울 근교에 이렇게 여러 여행 요소가 동시에 혼합되어 있는 코스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물을 건너면 이어지는 길지 않은 산행이 가장 기대됐다. 한낮의 여름 태양을 잠시 피하고, 마침 인적이 드물다면 마스크를 벗고 청정한 숲의 공기도 마실 수 있길 바랐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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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 20분. 서울 용산역에서 출발한 ITX청춘 열차가 종착역인 춘천역 플랫폼에 멈춰서기까지 필요했던 시간이다. 경기도를 지나 ‘벌써 강원도?’라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 짧은 이동 시간이지만 기차여행은 창밖의 낯선 풍경과 함께 ‘낭만’이라는 두 글자를 꺼내어 놓았다. 안타깝게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두 눈만이 호사를 누렸던 시간.

청평사에 가기 위해 먼저 소양호 정상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청평사 입구까지 굽이굽이 고개 넘어 다니는 버스도 있지만, 소양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로 가는 길이 더 여행답기 때문이다. 말없이 산속을 지키고 있는 너른 소양호의 평화를 바라보는 것도,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자연의 품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청평사를 찾는 여행자들만의 소소한 특권이 아닐까.

소양강 댐 정상에서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이하는 이는 그 유명한 ‘소양강 처녀’다. 아직 앳된 모습의 소녀상은 왠지 외로운 얼굴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이 그녀에게도 미친 탓인 것 같아 씁쓸하다. 평일에는 1시간에 1대 운행하는 유람선을 기다리며 식당에서 현지식 브런치를 즐겼다. ‘혹여나 배를 놓치면 다음 배를 타면 되지’라고 여유를 부리며 느릿하게 식중경(食中景)을 즐겼다. 춘천을 대표하는 요리 막국수와 ‘산’하면 늘 생각나는 산채비빔밥 그리고 강원도의 맛을 가득 담은 감자전까지. 드디어 여행에 들어선 기분이다.

 

오감이 열리는 길

청평사 선착장부터 청평사까지 약 30-40분의 산행은 평탄하고 호젓하다. 가는 길목길목, 눈과 귀가 솔깃한 이야기들이 남아 발길을 잡기도 한다. 방문객이 적은 초록 숲속은 요란하지 않아 길 옆 계곡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반가운 그 소리를 눈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뜻밖의 당나라 공주를 만났다. 법도를 어기고 평민을 사랑한 당나라 공주. 그녀의 아버지에게 죽음을 당한 뒤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를 칭칭 감아버린 평민 청년.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 곳은 치료를 위해 떠돌아다니다 들른 이곳 청평사였다. 공주의 몸에서 내려와 죽음을 맞이한 상사뱀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공주탑’과 공주가 머무르던 동굴 ‘공주굴’, 공주가 목욕을 했던 ‘공주탕’ 그리고 그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세워놓은 공주상이 청평사와 오봉산의 신성한 기운을 말해주고 있다.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한 번 발길을 잡는 소리는 9미터의 높이에서 아홉 개의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구성폭포’다. 두 줄기의 굵고 가는 물줄기와 오묘한 초록빛을 띠는 노천탕이 공주굴 앞에서 또 다른 전설을 상상하게 한다. 흔히 얘기하는 선녀탕이 아닌 공주탕, 홀로 목욕을 즐기는 공주를 떠올리는 이는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사진=트래블에브리띵스 제공]

당나라 공주의 전설을 품고 있는 청평사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곳에 머물렀을까? 그 긴 세월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시대 학자 진락공 이자현의 부도와 그가 조성했다고 전하는 연못 영지에도 남아 있다. 영지에 비친 세월의 크기는 작은 못을 더욱 깊고 진하게 만들어온 모양이다. 오봉산의 산세가 그 속에 다 들어앉아 있다. 앙증맞게 쌓아 올린 작은 돌탑 몇 개가 그 세월을 꼿꼿하게 바라보고 있다.

해탈의 공간

청평사 절간 앞에 서면 경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경내로 오르는 계단과 그 계단을 가운데 두고 쌓은 계단 높이의 담, 담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선 키 큰 나무들 그리고 계단 너머에 빼꼼 모습을 드러낸 잘생긴 기와들만 시선에 잡힌다. 내게는 국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오직 청평사에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바로 그 장면이다. 보면 볼수록 오묘함이 더해지는 풍경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부처님의 삼라만상에 가까워지고, 결국 계단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순간, 우주가 눈앞에 펼쳐진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늠름한 바위산 하나가 호위무사처럼 청평사를 둘러싸고 섰다. ‘저 산은 어쩜 저리도 잘 생겼을까?’ ‘이 절집은 어쩜 이리도 자리를 잘 잡았을까?’ 크지 않은 절이지만 산을 통째로 다 갖은 것 같은 모양새다. 호연지기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른다. 이 시대를 이겨내야 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단어다.

청평사 회전문은 보물 제164호다. 가운데 칸이 출입문이고 양쪽 한 칸씩은 사천왕의 조각상을 세우거나 사천왕 그림을 걸도록 했던 공간으로 추측된다. 이 문을 지날 때 당나라 공주에게 붙어 있던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해탈이 어떤 상태인지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회전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청평사는 새로운 마음의 경험을 갖도록 이끌어주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극락보전에서 거꾸로 바라본 세상은 오늘 이곳까지 왔던 길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했다. 마침 구름을 뚫고 얼굴을 내민 해가 청평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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