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신수정 기자] KBS 여자 화장실 몰카에 이어 올해 상반기 내내 크고 작은 ‘불법촬영 범죄’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불법촬영을 자행하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불법촬영의 매개체인 ‘초소형카메라’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어떠한 규제 없이 판매되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직접 온·오프라인에서 초소형카메라 구매를 진행해 문제점을 짚어봤다. 
 

초소형 카메라를 판매하는 매장 [사진=신수정 기자]
초소형 카메라를 판매하는 매장 [사진=신수정 기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팔자” 
온·오프라인 구매 규제 無

“32GB 메모리 포함해서 현금 20만 원에 해줄게요”
“오프라인에도 파니까 천천히 둘러보고 나중에 구매해도 되요”

지난 22일 서울 시내의 한 전자상가에 방문한 기자는 일부 가게에서 초소형카메라를 판매 중인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가 한 가게에 들어가 구매를 시도하자 판매업자는 묻지도 않고 물건을 보여주며 가격을 제시했다. 이에 기자가 생각보다 비싸다고 말하자 업자는 “특수 용도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죠.”라고 답했다. 판매업자도 특정 목적을 갖고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였다. 

다른 매장에서는 구매를 요청하자 다른 물건들 사이에 깊이 숨겨둔 제품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여줬다. 기자가 방문했던 두 매장 모두 구매자의 신분, 구매 목적 등을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과거 꾸준히 다른 언론 매체들에서 불법촬영 카메라 구매에 대해 다뤘지만, 업체들은 판매과정에 개선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팔자 식의 영업방식을 이어오고 있었다. 

온라인 구매도 손쉽게 주문 접수가 가능했으며 퀵 배송도 가능해 빠르면 반나절 만에 제품을 받아볼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외형의 초소형 카메라와 무선 기능까지 달린 최신형 제품도 볼 수 있었다. 


“불법촬영으로만 쓰이진 않는데...” 
'양날의 검' 수사·증거물 취득용 등 다양 

초소형카메라가 불법촬영에 쓰이자 판매 금지를 외치며 유통시장을 근절하자는 목소리도 제기됐었다. 그러나 경찰 수사나 언론사의 잠입 취재 등 공익적인 용도로 쓰이는 경우도 있어 무작정 판매를 금지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또한 일반인들에게도 다양한 재판·소송에서 증거자료로 제출하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기자가 판매를 시도한 온라인 쇼핑몰은 ▲수사·단속장비 ▲성희롱·성폭행 ▲불륜·외도 ▲가정폭력 ▲왕따 ▲이웃분쟁 ▲협박·공갈 ▲도둑·절도 ▲스토커 ▲초소형 CCTV ▲경쟁업체조사 등 채증활동별로 제품을 분류해놓기도 했다. 

초소형카메라를 구입해서 보안감시, 증거물 수집을 목적으로 CCTV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몰래 촬영하는 것은 불법에 해당한다. 초소형카메라가 ‘양날의 검’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일반 녹음기 모형, 볼펜 모형 등으로 위장해 판매되는 초소형 카메라 [사진=신수정 기자]
일반 녹음기 모형, 볼펜 모형 등으로 위장해 판매되는 초소형 카메라 [사진=신수정 기자]

불법촬영 근절을 위해
명확한 ’판매 가이드라인‘ 필요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학교, 직장, 공중화장실 등에서 몰카를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남성을 타깃으로 한 몰카도 발생하고 있다. 

당국은 현행법상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하고 있다. 몰래카메라 적발 점검 등 예방에도 신경 쓰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법무부에서 발표한 ‘2020 성범죄 백서’에 따르면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촬영 범죄가 9317건에 달했다. 이는 2013년 412건에 불과했지만 2018년 2388건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초소형카메라 등에 대한 구매·판매 규제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피해지원국장은 “불법촬영을 규제한다 해서 불법촬영 유통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규제를 피한 유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문화와 유통시장을 근절하는 플랫폼 규제 운동이 동반되야 한다”고 제언했다. 

결국, 불법촬영 범죄의 근본 원인은 초소형카메라의 판매라기보다는 여성을 성적으로 상품화해 소비하는 문화와 이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암시장에 있다는 것. 

일요서울의 취재를 종합해보면, 불법촬영 근절을 위해서는 우선 초소형카메라의 판매 과정에 있어 합리적인 규제가 명시된 법을 제정해야 한다. 또한 불법촬영물의 소비자와 유통자의 처벌 수위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올바른 성 개념을 갖추고 성인지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성교육과 캠페인 등을 통한 인식 개선 노력도 요구된다. 

또한 초소형카메라의 판매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범죄에 악용하려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판매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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