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기로에 선 정의당...선택은?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현재 당대표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4.15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임기를 1년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선 심 대표를 대신할 당대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심 대표는 현재 당의 유일한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지난 19대 대선에 출마한 경험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대중성과 계파를 아우르는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의당은 9월 중으로 조기전당대회를 열고 새 지도부를 구성할 계획이다. 일요서울은 변화를 앞둔 정의당이 심 대표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롭게 탈바꿈 할 수 있을지 진단해 봤다. 

정의당 회의[뉴시스]
정의당 회의[뉴시스]

 

-강은미 “정의당, 국민에게 혁신내용 분명하게 제시 못해”

정의당은 지난 4.15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연동형비례대표제’ 통과를 위한 연대를 구축했다. ‘민주당 2중대’라는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총선에서 의석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새였다. 

앞서 조국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촉발된 조국사태 당시에도 정의당은 처음 비판적 입장을 바꿔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는 행보를 보여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진보논객이자 정의당의 오랜 당원이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SNS에 “(정의당이) 의석수에 눈이 멀어 지켜야 할 그 자리를 떠났다”고 비판하며 탈당했다. 진 전 교수는 정의당이 ‘정의’를 내세워 당명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보인 이중성에 실망했다는 언론의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정의당은 많은 비판을 감수하며 통과시킨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통해 원내교섭답체 구성을 꿈꿨으나 민주당의 비례위정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의 창당으로 인해 지난 4.15 총선에서 6석을 얻는 데 그치고 말았다. 정의당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형국이다. 

일각에선 심상정 대표의 행보를 정의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대표였던 권영길 전 의원과 비교하는 시각이 있다. 권 전 대표는 2번의 국회의원 당선과 3번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나 대권 도전에서 연이은 패배로 인해 정계은퇴 압박을 받았고 당에서 탈당해 2012년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에 출마했다. 결국 진보진영에서 ‘권영길 의원의 노욕이 진보 정치를 망친다’는 비판을 받으며 2013년 정계를 은퇴했다. 

심 대표는 4선 국회의원으로서 2번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18대 대선에선 야권 단일화를 위해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후보에서 사퇴했다. 권 전 대표와 비슷하게 경력을 쌓고 있는 심 대표는 지난 4.15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를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실제론 다음 지방선거나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심 대표가 정의당에서 자신을 대체할 인물이 없다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세대교체 없이 계속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심 대표는 지난 5월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임기 1년을 앞당겨 조기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심 대표는 “당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어젠다를 혁신하며 새로운 리더십으로의 교체를 준비하기 위해 독립적인 집행 권한을 갖는 혁신위 구성을 제안한다”며 ‘혁신위원회’ 출범을 제안했다. 심 대표의 혁신위 제안은 전면적인 당 쇄신과 새 리더십 창출을 위한 방안이라는 평이 나온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뉴시스]
강은미 정의당 의원[뉴시스]

 

혁신 없는 ‘혁신위’...갈등만 남겨

정의당은 지난 5월24일 장혜영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혁신위를 출범시켰다. 정의당 혁신위는 강민진 대변인 등 주요 당직자를 비롯해 외부 전문가, 청년 활동가, 사회 활동가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위원 가운데 여성이 과반이며 20~30대 청년도 40%를 차지했다. 이렇게 구성된 혁신위는 3개월 가까운 논의 끝에 지난 13일 혁신 최종안을 발표했다. 

혁신위는 이 자리에서 당의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최고 의결기구인 ‘대표단회의’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대표단회의는 당대표와 원내대표, 선출직 부대표 5인, 청년정의당 대표(당연직)로 구성된다. 이를 위해 부대표단은 기존 3명에서 5명으로 늘었다. ‘당대표 1인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 때문에 리더십을 분산해야 된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부대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당정치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부대표 자리를 놓고 당내 계파 간 다툼도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13일 혁신안 발표에 배석한 성현 혁신위원은 간담회 도중 장 위원장의 말을 끊으며 “혁신은 실패했다”는 돌발 발언을 했다. 이어 성 위원은 “집단지도체제하에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정의당이 될 것”이라며 “혁신위는 심상정 대표의 면피용으로 만든 기획이며, 그 기획조차도 실패했다. 자신들이 속한 계파의 숙원 작업을 위한 장으로 혁신위가 이용돼 왔고 당원들이 정작 바라는 주제는 토론에 담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혁신위가 내놓은 핵심 사안 중 하나인 당 지도체제 개편에 대한 합의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국민에게 정의당이 혁신하고자 하는 내용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며 “이번 총선에 대한 객관적 평가, 당 조직 혁신에 관한 비전, 재정 위기에 대한 대안 등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정의당은 최근 총선 과정에서 생긴 빚만 45억 원에 달해 재정 위기까지 겪고 있다.

심상정 대표[뉴시스]
심상정 대표[뉴시스]

 

‘포스트 심상정’ 부재 속 계파 갈등까지

혁신안 문제로 정의당의 내부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당 안팎에선 심상정 대표를 대체해 다양한 계파를 아우를 만한 뚜렷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당 내부에선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부터 크게는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양 계파의 갈등이 있어 왔다. 이 외에도 민주노총 출신 인사가 주축인 ‘노동정치연대’, 노동당 출신 인사가 속한 ‘평등사회네트워크’등 출신과 성향에 따라 여러 소수 계파가 존재한다. 거기에 류 의원과 장 의원을 응원하는 새로운 지지층도 있다.   

9월에 열릴 예정인 정의당 당대표 경선엔 배진교 원내대표, 여영국 전 정의당 의원, 김종민 선임대변인, 김윤기 대전시당 위원장, 양경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 등의 출마가 거론되지만 심 대표만큼의 인지도와 당 장악력을 보이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류호정, 장혜영 정의당 의원같이 젊고 참신한 인물들도 언급되고 있지만 정치 경험이 짧아 당내 다양한 계파를 아우를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지난 5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1대 총선 평가와 정의당의 과제 토론회’에 참석했던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정의당은 후진 양성에 실패했다”며 “비례대표로 당선된 현역 의원들의 인지도나 대표성도 좀 더 강화돼야 하며 여성, 청년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들이 더 발굴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진보 정당을 표방한 정의당의 노선이 불분명해 보인다”며 “야당의 일원으로 갈 것인지 민주당과 연대를 할 것인지 또는 이념 정당으로서 깃발을 들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의당이 극복해야 할 문제를 정리하면 심 대표를 대체할 인물, 뚜렷한 정의당의 정책과 노선, 계파 갈등 극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변화의 기로에 선 정의당의 선택이 주목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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