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리바이어던(Leviathan)”. 감히 그 누구도 맞서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수중 괴물이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이상적인 국가상으로 누구도 반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국가를 상정했다. 무시무시한 국가가 필요한 이유로 홉스는 국가가 생기기 전의 인간 모습을 들며서 “자연 상태”를 설명한다. 

자연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본능적으로 경쟁자를 누를 힘이 있어야만 하고, 상대보다 더 큰 힘을 보이기 위해 싸움을 거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계속한다. 

이런 투쟁 상황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다 보니 계약을 어기는 자를 엄하게 처벌하여 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도록 하는 힘, 홉스는 그것을 ‘국가’라고 봤다. 강력한 국가는 리바이어던 같은 괴물이어야만 사람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재확산으로 국민들의 공포심도 커지고 있다. 단순히 공포심만 커지는 게 아니라 이러다 사람 잡는 코로나가 국민 갈등까지 극대화시킬 판이다. 억지로 핑계처를 찾거나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특정 집단이 매도되기 시작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코로나 초기에 이만희 총회장의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이 그랬다. 또한, 이슬람 중앙회의 자제 권고에도 불구하고 열린 청주의 야외 집회에서 6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SNS상에는 특정 종교를 비난하는 댓글 일색이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자제를 권하는 댓글도 일부 있지만, 사람들의 공포심은 이미 혐오감으로 변질되어 있다. 

이번에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가 논란의 중심이다. 기독교 단체 내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해칠 권리는 아니다.”라며 자중을 촉구하는 목소리부터 이단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종교 내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이에 더해 그들이 주도한 광화문 집회 참석자들이 매도되고 있다. 이는 SNS 상의 각종 매체와 가짜뉴스 등을 타고 번지면서 상반되는 정치 진영 간의 갈등과 혐오로 변질되고 있다. 

정치 진영 대결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또 있다. 의사 파업에 따른 정부의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그것이다. 코로나 초기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온몸을 바쳐 온 의료인들에게 고마워할 때는 언제고, 하필이면 코로나 한복판 와중에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과대학 설립 논란으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냐는 의료계 측과 그래도 국민을 위해 공공 의료인력 확충과 지역의사 양성이 필요하다고 맞서는 정부 측의 갈등이 국민을 더욱 가슴 졸이게 만들고 있다.

마치 종교전쟁 뒤의 혼란 상황처럼 모든 사람들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는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본능에 충실한 저잣거리 민심은 진인 ‘조은산’이라는 사람의 “시무7조 상소문”에 열광하고 있다. 저잣거리 민심을 적나라하게 반영했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 진영은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상승하자 “외부의 어려움이 닥칠 때에는 대통령 위주로 국민의 힘을 결집하자.”며 “랠리 어라운드 더 플래그(Rally around the flag)” 효과를 강조한다.

코로나19의 전면적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당국의 총력 대응에 많은 국민들이 협조하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단으로 특정되는 종교를 제외한다면, 그 어떤 종교가 코로나 확산을 무시하고 집회를 하겠으며, 특정 직업군이나 정치진영이 방역 총력 대응에 소홀히 임하겠는가.

세월이 흘러도 홉스 사상의 본질이나 현대 정치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최선의 정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극복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방역 당국의 고군분투에 박수를 보내고, 무시무시한 경고가 아닌 국민의 총의를 모아 사람 잡는 코로나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국민 갈등도 봉합하는 ‘슬기로운 총력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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