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8월20일 국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 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장에게 국정 전반을 이양해 ‘위임 통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김여정이 “결정권은 갖고 있지 않다”며 김정은이 “여전히 모든 권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대남·대미 전략은 김여정, 경제분야는 박병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군사부문은 최부일 당 군정지도부 부장에게 각각 맡겼다고 했다. 그러나 독재 권력하에서 ‘위임 통치’란 있을 수 없다는데서 국정원의 ‘위임 통치’ 주장은 객관성을 상실한 자의적 재단으로 보인다.

첫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김여정이 국정 전반을 이양 받아 ‘위임 통치’에 들어갔다면서도 정책 “결정권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책 결정권을 이양 받지 않았다면 ‘위임 통치’가 아니다.

여정·박병주·최부일에게 전담 분야 관리를 각기 나눠준 데 불과하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위임 통치’라고 했다. 언론매체들은 ‘위임 통치’ 단어에 화들짝 놀라 대서특필했다. 새로 취임한 박지원 원장의 자기 존재감 부각과 여론몰이에 언론이 말려든 듯 싶다. 코로나19 공포와 부동산 실책으로 분노한 국민의 심기를 북으로 분산시키려 했는지 의심된다.

둘째, 국정원은 김정은의 위임 통치 이유로 “통치 스트레스 경감, 정책 실패에 따른 책임 분산에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그러나 김은 36세밖에 안 되는 혈기왕성한 나이다. ‘통치 스트레스’를 받아 통치를 위임하기엔 너무 젊다.

또 정책실패에 따른 책임을 분산키 위한 조치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김에게 책임을 추궁할 사람이 북엔 없다. 책임 추궁하는 자는 공개 총살당한다. 김일성·김정일도 독재하면서 ‘통치 스트레스’나 정책 실패에 따른 책임이 두려워 권력을 이양한 적은 없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셋째, 독재자는 권력을 무덤까지 끌고 갈 뿐, 죽기 전에 결코 이양하거나 위임하지 않는다. 권력을 위임하게 되면 자신에 대한 우상화가 깨지고 권력기반이 흔들린다는 걸 두려워한다. 김정은은 지난달 7월27일만 해도 인민군 고위 지휘관들에게 직접 권총을 나눠주며 충성을 다짐 받았다.

이어 8월7일엔 황해북도 은파군 일대 홍수피해 지역을 일본제 렉서스 자동차를 직접 몰고 시찰하며 수재민들을 위로했다. 김은 자주 백마를 타고 달리며 건강과 호기도 과시한다. 독재자로서 권력기반 유지를 위해 요구되는 개인 우상화 굳히기 쇼이다. 김은 독재권력 구축을 위해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 그런 사람이 권력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릴 ‘통치 위임’이나 이양을 할리는 없다.

넷째. 김정은은 독재 권력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도전에 과민반응하며 잔혹하다. 고모부 장성택을 권력 도전자로 의심, 처형했다. 이어 해외에서 유랑하는 이복형 김정남마저 같은 의심 속에 말레이시아에서 독살해 버렸다.

김정은이 얼마나 주변의 권력 도전을 두려워하는가를 실증한다. 그런 사람이 권력을 여동생이나 관료에게 위임하거나 이양할 리는 없다. 다만 김은 170cm 정도 키에 130kg의 초고도 비만, 심혈관 질환과 복부비만으로 인한 수면 장애, 심근경색증 등으로 일과를 줄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을 ‘위임 통치’ ‘통치 스트레스’라고 침소봉대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김이 권력을 ‘위임 통치’한 걸로 단정했다. 김의 권력 이양과 ‘위임 통치’ 속단은 북에 대한 오판을 자아낼 수 있다. 김이 권력을 이양할 정도로 도량이 넓고 합리적인 인간으로 간주케 하며 김여정에게 정말 권력을 ‘위임 통치’한 걸로 착각, 헛 발짓 할 수있다. 모든 정보 분석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정치적 계산이나 집권자에게 충성키 위해 재단·가공돼선 아니 된다. 국가적 재앙을 불러온다는 데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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