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선시대의 ‘상소문 형식’을 빌어 문재인 정권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과 신적폐를 꼬집고 있는 진인(塵人) 조은산의 ‘시무(時務) 7조’에 온 국민이 폭발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 형식을 차용한 글이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겉으로는 현 정부를 비판한 ‘조은산’을 꼬집고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문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 중 올곧은 선비들은 삼국시대로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고뇌에 찬 시대의식과 서릿발 같은 기개로 왕에게 상소(上疏)를 올렸다. 벼슬을 내놓은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군주에게 직간(直諫)을 했다. 그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었다.

상소문은 대부분 국정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국리민복과 부국강병에 이로운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활용됐다.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 탁월한 경륜, 뛰어난 지혜, 고도의 문장력이 동원되다 보니 상소문도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처럼 정치 문학의 경지에 올랐다.

역사상 지금까지 전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소문은 신라 진평왕 때 병부령(兵部令) 김후직(金后稷)이 쓴 상진평왕서(上眞平王書)다. “사냥을 중지하시고 정사를 돌보십시오. (중략) 지금 전하께서는 날마다 놀이에 미친 사람 아니면 사냥꾼과 더불어 매나 개를 풀어놓고 꿩이나 토끼를 쫓으며 산과 들을 달리면서 스스로 그칠 줄을 모르시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신라 발전에 큰 밑그림을 그린 진평왕의 업적은 왕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소임을 다한 김후직의 간언에서 비롯된 것이니, 후세는 그를 충신의 전범으로 삼고 그의 충간을 ‘묘간(墓諫)’이라 하며 칭송했다.

고려 후기에 들어와서는 목숨을 건 ‘지부상소(持斧上疏)’가 상소의 새로운 장르가 되었다. 그 시조는 우탁(禹倬)이다. 이후 지부상소의 전통은 조선의 조헌-최익현으로 이어진다. 우탁의 ‘지부상소(持斧上疏)’는 우리 역사상 목숨을 걸고 직간(直諫)한 최초의 사례로, 대쪽 같은 선비의 지조와 서릿발 같은 기개를 잘 보여준다.

“(전략) 전하(충선왕)께서는 부왕(충렬왕)이 총애하는 후궁을 숙비에 봉했는데, 이는 삼강오륜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종사에 전례가 없는 폐륜이옵니다. (중략) 군왕이 나라의 흥망을 가늠하는 것은 오직 인(仁)과 불인(不仁)에 달려 있사옵니다. ‘신하는 간언을 할 때 목숨을 건다’고 했는데, 오늘 소신에게 터럭만큼의 잘못이 있다면 신의 목을 치시옵소서.” 개혁군주로 무도하지 않은 충선왕은 윤상을 무너뜨린 자신의 패덕(悖德)한 행위를 극간한 우탁을 징치(懲治)하지는 않았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양성지-조광조-이황-이이-조헌-최명길-채제공-정약용 등 기라성 같은 선비들의 주옥같은 상소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조식(曺植)이 제수 받은 단성현감 직을 사직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명종에게 올린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는 압권이다.

“(중략) 전하의 정사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해버렸습니다. 천의(天意)는 이미 가버렸고 인심도 떠났습니다. 비유하자면 백년 된 큰 나무에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다 말라버렸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 까마득히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중략) 소관(小官)은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면서 주색이나 즐기고, 대관(大官)은 위에서 어물거리면서 오직 재물 불리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중략) 자전(紫殿,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일 뿐이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의 한 고자(孤子, 고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백천 가지의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인심을 무엇으로 감당하고 무엇으로 수습하시겠습니까?”

이 상소는 명종을 고아로 대비(문정왕후)를 과부로 표현해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명종은 “공손하지 못한 말이 대비에게 관계되는 것은 매우 통분(痛憤)하다. 임금을 공경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고 싶으나 빼어난 선비라고 하므로 내버려 두고 묻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역사속의 상소문’에서 그 시대의 세상인심과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다. 불의와 일체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선비정신’은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이고 한류를 확산시킬 수 있는 자랑스러운 자산으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중단 없이 이어질 것이다.

최근 조은산의 시무7조로 촉발된 대한민국판 상소문은 현 정권의 국정운영 난맥상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줬다. 집권세력은 민초들의 소리 없는 절규를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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