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이 중에 있습니다.”
강 형사가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말에 사무실 안에는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누가 범인일까?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건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강 형사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군가가 전자제품 대리점 소장실에 들어가 금고를 털어간 것이다. 오전 10시에 일어난 사건이라 사무실 직원 말고는 화장품 외판원밖에는 없었다.

소장은 소장실에 딸린 화장실에 잠깐 들어갔는데 그사이에 도둑이 들었다. 소장은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금고문이 열린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다가갔다. 그런데 전날 입금되어 아침에 은행에 보내려고 한 500만 원이 없어진 것이다. “도둑이야.”

소장이 소장실을 나오며 외쳤다. 직원들이 깜짝 놀라 소장을 바라보았다. 
“누가 들어왔었나?” 소장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직원들에게 물었다. 
“아니요, 아무도….” 정형일이 말했다. “자넨 어디 있었나?”

“저는 오늘 배달 나갈 냉장고를 트럭에 싣고 있었습니다.” 정형일이 목장갑을 낀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소장은 눈길을 돌려 회계를 보는 강미나를 바라보았다. 

“전 화장품 샘플을….”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 하얀 크림이 묻어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소장인 신경질적으로 떨며 서 있는 여인을 보고 말했다. “저는 화장품 외판원인데요. 뭐 살 것도 있고 해서….”

“정말 아무도 안 들어왔단 말이야?” 소장은 외판원에게 신경 쓸 거 없다는 듯이 다시 직원들을 채근했다. “예, 정말이에요.”
“이런, 젠장! 그럼 이 중에 누가 도둑질을 했다는 거 아니냐” 소장은 책상을 쾅 내리쳤다.

“셔터 내리고 경찰에 신고해!” “예? 예!”
형일이 뛰쳐나가 셔터를 내리려 했다. “그럼 저는 가, 갈게요.” 외판원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 아줌마가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요!”
소장이 화를 내며 팔을 붙잡았다. “어머, 왜 이러세요!”

외판원은 팔을 뿌리치며 화를 냈다. “지금은 갈 수가 없다고요.” “뭐예요? 그럼 내가 도둑이라는 거에요?” 외판원이 쌍심지를 돋우며 말했다. 
“누가 댁이 도둑이라고 했어요?” “그럼 왜 바쁜 사람 붙들고 시비를 거는 거예요?”

외판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몸들 돌려 나가려고 했다. “야. 잡아!”
소장은 형일에게 소리쳤고 형일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길목을 막았다. “비켜요!”

외판원은 거칠게 형일을 떠밀었다. 형일은 보도로 그만 나가떨어졌다.
“아니, 이 여자가”

형일이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지르더니 그대로 외판원의 뺨따귀를 올려붙였다. 외판원의 볼이 순식간에 벌겋게 부어올랐다.
“왜 때려! 네가 뭔데 날 때리는 거야!” 외판원도 손을 들어 올렸다. 외판원의 하얀 손가락 끝이 햇빛에 반짝였다.

“어유, 이걸 그냥”
형일이 다시 주먹을 치켜드는데 누군가가 손목을 탁 잡았다. “누구야!”
형일이 돌아보자 그 사내는 얼른 팔을 꺾어버렸다. “난 시경의 강 형사라고 하는데, 당신은 누구요?” 강 형사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사건은 간단합니다. 극히 짧은 시간에 방에 들어왔던 범인은 얼른 금고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열릴 줄도 몰랐을 겁니다. 그런데 잠겨 있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 안에는 현찰 500만 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돈은 어디에 갔을까요? 여러분의 몸수색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제일 편한 곳은 어디일까요? 간편하게 사서 나갈 수 있는 물건, 아마도 전기밥통이나 커피포트 안에 들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범인의 공모자가 나중에 들어와 그 밥통을 사서 나가면 되니까요. 문제는 금고 손잡이에서 나온 지문이 소장님 것밖에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소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소장님이 범인일까요?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요. 그럼 다음으로 남는 가능성은 범인이 지문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형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난 아냐! 형일이 외쳤다. “그렇지요. 냉장고를 나르다 말고 범행을 저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남는 사람은 둘 중 하나인데 저로서는 화장품 가방 안에 어떤 단서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두 여성분은 손을 좀 내밀어 주시겠습니까?“

강 형사는 외판원이 범인이라는 점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퀴즈 .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요?



[답변 - 4단] 화장품 외판원의 손가락에는 모두 무색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었다. 그것 때문에 지문이 남지를 않았다. 강 형사는 햇빛에 손가락이 반짝일 때 그 점을 간파했다. 돈 역시 강 형사의 추리대로 전기밥솥 안에서 발견되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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