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북한인권국제연대 문국한 대표는 ‘장길수 가족’ 탈북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문 대표는 지난 1999년 문구 사업을 위해 중국에 진출했다가 알게 된 조선족 여성을 통해 길수 가족과 친척을 소개 받았다. 당시 15명이나 되는 길수 가족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했다. 문 대표는 지난 7월28일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20년째 북한인권운동을 해 왔지만 북한의 인권상황과 중국에서 떠도는 탈북자 인권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000년 문 대표는 길수 군과 그의 가족이 경험한 북한의 인권실태를 글과 그림으로 알리기 위해 ‘눈물로 그린 무지개’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현재 책은 절판됐다.

장길수 - 16세. 함경북도 화대군 출생.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와 군대에 간 형님을 남겨 둔 채 어머니와 작은형 등 일가족 3명이 탈북, 그 후 두 번에 걸쳐 가족을 구하려고 두만강을 건넜다.

정선미 – 장길수의 어머니. 45세. 북한에서 대학을 나온 그녀는 방송 작가가 꿈이었다. 1999년 1월 탈북 했으나 2000년 3월 강제북송 당해 함북 화대에 있는 보위부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에서 그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한 요구서를 유엔인권고등판무관(UNHCHR)과 국제사면위원회 등에 보냈으나 아직까지 생사 확인이 안 되고 있다. 그녀가 남긴 글은 1999년 3월부터 2000년 2월까지 기록한 것이다. 

-"우리 이제는 초식 동물이 되었다"

<장길수 스토리>
내가 온몸이 붓고 피투성이가 되자, 지도원은 “한 번 더 도망치면 그땐 다리 하나를 분질러 놓겠다”고 했다. 책임 지도원은 나를 데리고 교화서 근처의 논두렁으로 갔다. 그리고 흐르는 물에 세수를 시켰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도 세수를 하려 했으나 손이 너무 아프고 부은 다리 때문에 구부릴 수가 없었다. 내가 지도원에게 팔과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말하자 “그쯤 맞아서 엄살을 피냐?”며 팔을 강제로 굽히고 내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나는 앞으로 넘어졌다. 

나는 지도원의 뒤를 따라 지도원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으며 별이 아물거렸다.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얼마 후 깨어보니 내가 갇혀 있던 방이다. 나는 탈출만이 살길이라 생각하고 궁리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다 잡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밤 12시쯤이 되어서 문을 살짝 열고 복도를 빠져나와 출입문에 섰다. 문 앞에 경비원이 자고 있었다. 나는 있는 힘껏 문을 열고 뛰었다. 정신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뛰고 또 뛰었다. 마침내 나는 친척 아주머니 집에 도착했다.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 어떻게 된 것이냐 물으며 그날 집에서 재워주셨다. 

다음 날 나는 중국에서 물건을 팔러 온 아주머니에게 숨겨 놓은 달러를 북한 돈으로 바꿨다. 우선 그 돈을 들고 장마당으로 갔다. 바지 한 벌을 사고 배가 고파 강냉이를 하나 사 먹었다. 그런데 내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구호소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며 “너 어제 도망친 녀석 맞지?”라고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나를 붙잡아 끌고 갔다. 다행인지 그런 모습을 친척 아주머니가 보시고 북한 돈 300원을 주며 나를 풀어 달라고 하셨다. 친척 아주머니가 뇌물을 주자 그들은 나를 풀어 주었다. 

며칠 후 나는 외삼촌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나에게 중국으로 같이 갈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며 접근했다. 나는 “중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며 잡아떼자 그는 “삼촌에게 다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에 가기로 약속한 그날 나는 그 사람의 집으로 갔다. 그의 집은 아파트 4층이었다. 내가 왜 중국에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후에 일이 발각될 수 있어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방 안에서 내 말을 듣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고 중국에서의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 그곳에서 돈을 얼마나 가지고 왔으며 언제 중국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사복 차림을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리고 안전부로 끌려갔다. 내가 속은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말할 때 방 안에서 듣고 있던 사람은 안전원이었다. 외삼촌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이 방 안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존칭을 붙여 말하고 허리를 굽히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수갑을 차고 안전원들에게 장작으로 사정없이 매를 맞았다. 안전원들은 나에게 “중국에서 남한 사람을 만나지 않았나? 교회에 갔나?”물으며 발로 걷어찼다. 내가 중국에서 가져온 돈을 맡긴 이웃할머니는 잡혔다는 내 소식을 듣고 모든 돈을 안전원에게 내놓았다. 돈을 다 뺏긴 나는 구호소 구석에서 울기만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안전원이 목이 마르니 물을 가지고 오라며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이층에 올라가 심문을 받고 있는 사람과 물을 나눠 마시고 빈 주전자를 들고 내려가 물이 없다고 안전원에게 거짓말을 했다. 목이 마른 안전원은 마을에 내려가 물을 떠오라며 경비초소까지 통과시켜 줬다. 나는 이것이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주전자를 들고서 그 길로 달아났다. 

나는 그길로 강변에 사시던 할머니를 찾아갔다.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할머니에게 말하고 꼭 살아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결국 할머니는 돼지 한 마리를 경비대에 뇌물로 바치고 두만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북한에서 겪었던 열흘을 돌이켜 보니 치가 떨렸다.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그러나 북한에 남아서 굶고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리고 중국에서 강제 송환되어 어느 수용소에 갇혀 있을 이모도 생각났다. 또 10년 동안 잘 먹지도 못하며 군 복무를 하고 계실 형님도 생각났다. 헐벗고 굶주린 우리 북한 동포들도 불쌍했다. 지금 나는 마지막 중국으로 올 때 돼지 한 마리로 도와주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손자를 위해 그 귀한 돼지를 바친 할머니께 언제 신세를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선미 스토리> 
해마다 계속되는 식량 위기의 참혹한 현실 속에 인간의 이성을 읽은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야수처럼 변해 갔다. 여섯 식구의 끼니를 챙겨야 했기 때문에 나도 열심히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며 다녔다. 갑자기 굵은 비가 내려 옷이 흠뻑 젖었다. 찬바람에 온몸이 떨렸지만 나물 캐기는 그만둘 수 없었다. 늦은 저녁때가 되어 나물 캐기를 그만하고 일어났다. 

비에 젖으니 흙이 찰떡 같이 발에 붙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거운 족쇄를 끌고 가는 것 같았다. 얼굴에는 빗물이 줄줄 흐르고 눈물, 콧물 그리고 흙이 묻었다. 나는 내 몸보다 크고 무거운 나물짐을 짊어지고 산과 언덕을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다 보니 한 사람이 물웅덩이에 엎드려 개구리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쥐, 뱀 개구리 등 파충류를 잡아 생계와 목숨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집에 와서 나물 보따리를 풀어보니 양이 많았다. 나물이라도 집 안에 많이 쌓아 놓으니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 아이가 “어머니 우리가 일 년에 먹은 나물이 한 달구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내가 캐 온 나물 양을 계산했다. 막내아들은 “우리 이제는 초식 동물이 되었다”라고 푸념했다. 저녁상이 차려졌다. 상에 오른 것은 새까만 풀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세상 어떤 진미에도 비길 수 없는 우리 집 상차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