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김종인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보수 개혁·쇄신 작업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총선 이후 보수세력의 구원투수로 나선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이달초 취임 100일을 맞아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다만 2% 부족하다. 21대 총선 참패의 원인이었던 당의 지나친 우경화를 해소하지 못했다. 핵심은 아스팔트 우파 또는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극우세력과의 관계 단절이다. 극우세력과의 손절없이는 정치적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한나라당 시절부터 오랜 기간 이어져왔던 골수 강경 지지층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중도층으로 당의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적 계산 때문이다. 이는 보수진영의 혁신과 쇄신 없이는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상 보궐선거 승리는커녕 차기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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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우파와 단절김종인 당무감사 피의 대숙청역풍
- 당무감사 따라 황교안·김진태·민경욱 정치적 운명 풍전등화

종인표 개혁작업의 최대 관문은 당무감사. 국민의힘은 전국 253개 국회의원 선거구 중에서 현역 의원을 포함해 원외 인사가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조만간 특별·일반 당무감사에 나설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연말까지 당무감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당무감사는 뒤집어보면 피의 대숙청이다. 특히 당무감사가 본격화될 경우에는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와 태극기부대 세력과의 손절을 둘러싼 정치적 득실을 놓고 극심한 갈등과 내홍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의 실험은 상대적으로 이들 세력과 거리가 가까웠던 황교안 체제의 미래통합당을 환골탈태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만 김진태·민경욱 등 보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강경파 의원들의 퇴출이 현실화될 경우 국민의힘 안팎에서 전면적인 내부 파워게임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주도하는 피의 대숙청의 성공 여부에 따라 내년초 여야의 정치지형도 크게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기본소득·무릎사과·당명교체, 김종인표 개혁 순항?

김종인 위원장은 21대 총선 이후 난파 위기에 처한 보수진영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여야를 넘나든 노정객의 광폭행보는 위기에 처한 보수를 구해냈다. 김 위원장의 취임 초기 당 안팎에서 불거졌던 크고작은 불만은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탁월한 정치적 감각과 시대를 앞서가는 정치적 이슈 선점은 물론 능수능란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보수의 체질개선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지율은 20%대에서 30%대로 10% 포인트 가까이 수직상승했다. 한마디로 보수진영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확 바꿨다. 특히 진보진영의 이슈였던 기본소득을 꺼내들면서 정책정당의 면모도 과시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에는 이른바 무릎사과를 통해 신선한 감동을 줬다. 내친김에 미래통합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명까지 교체하며 정강정책도 일정 부분 좌클릭을 선보였다. 김 위원장의 개혁작업에는 라이벌인 더불어민주당조차도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김종인 체제 100일을 정리하면 총선 이후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급한 불은 일단 끈 셈이다. 다만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나치게 강경보수로 자리매김한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8.15 광복절집회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광복절 직전만 해도 정당 지지율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앞서는 등 총선 이후 최대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광복절집회를 주도하면서 코로나 확산 책임론이 일었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의 연루설이 불거지면서 어렵게 벌어놓았던 점수를 다까먹었다. 당 안팎에서 전광훈 목사와의 연관성을 강력 부정했지만 백방이 무효였다. 과거 황교안 전 대표 체제 당시 장외투쟁 국면에서 전광훈 목사와 지나치게 밀착했던 정치행보의 여파였다.

이 때문에 광복절 이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강경보수와의 선긋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속출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 석방과 문재인 대통령 탄핵·퇴진을 외쳐온 아스팔트 우파 및 태극기부대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는 곧 과거 황교안 체제의 미래통합당이 적극적인 장외투쟁을 통해 정권퇴진을 외친 것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였다.

좌고우면 없는 직진피의 대숙청 현실화하나

김진태, 민경욱 전 의원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반갑게 악수하는 사진, 뉴시스
김진태, 민경욱 전 의원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반갑게 악수하는 사진, 뉴시스

개혁의 시작은 진솔한 반성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우리당은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당, 약자와 함께 하지 못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정당, 이념에 매몰된 정당, 계파로 나눠 싸우는 정당으로 인식돼 왔다. 후퇴하지 않을 변화와 혁신의 DNA를 당에 확실히 심겠다.”

김 위원장은 93일 취임 100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당의 변화와 체질개선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명시적 언급은 없었지만 당 안팎의 최대 관심은 당무감사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후퇴하지 않을 변화와 혁신의 DNA’는 당무감사를 통한 인적쇄신으로 집약된다. 지역구 당 조직을 정비하는 당무감사의 핵심은 당협위원장 교체 여부다. 김 위원장의 전략은 당무감사를 통해 국민의힘 인적구성을 강경 보수가 아닌 중도층으로의 외연확대가 가능한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로 바꿔내겠다는 의지다.

앞서 김 위원장은 20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친노좌장격인 이해찬 전 대표와 친노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 등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면서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끈 바 있다. 김 위원장 주변에서는 내년 재보선 정국과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강경보수에 대한 청산과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인적쇄신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안팎에서 극심한 반발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정치적 성장통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메스를 들이댈 것으로 전망된다. 당내 여론도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그동안 김 위원장의 외연확장 행보가 위기극복과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기 떄문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우리 사회에서 소위 극우라고 하는 분들과 통합당은 다르다고 지원사격에 나섰다. 하태경 의원도 우리 내부의 잘못된 과거는 다 폐기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특별감사는 9월 중순 이후, 정기감사는 10월부터 시작해 연말께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당명과 정강정책 개정에 이어 조직정비에 들어가는 셈이다. 현역 의원은 안정권이지만 전국 253개 지역구 당협위원장 중에서 최대 150여명 이상의 물갈이가 예상된다.

최대 관심은 황교안 전 대표의 운명이다. 황 전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이낙연 전 총리에 패배한 이후 두문불출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보수진영의 차기 1순위 대선 주자였지만 총선 패배 이후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며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 만일 당무감사에서 황 전 대표가 종로 당협위원장 자격을 상실할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또 김진태(강원춘천화천철원양구갑), 민경욱(인천 연수을) 전 의원의 정치적 운명도 관심사다. 이들 전직 의원들은 당무감사 진행 과정에서 광화문집회 참석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당협위원장 교체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가야 할 길은 첩첩산중이다. 당내 반발도 속출하고 있다. 김종인 체제 출범 이후 저격수로 활약해온 장제원 의원이 나섰다. 장 의원은 김 위원장이 주도하는 당무감사에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당무감사를 명분으로 정치적 동지에 대한 숙청에 나선 격이라는 지적이다.

장 의원은 아직은 위로가 필요한 시기에 누구를 위한 당무감사인지 참 잔인들 하다낙선의 아픔을 겪은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피의 숙청대상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장 의원은 특히 진정으로 개혁의 칼을 휘두르고 싶다면 시스템 공천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며 공석인 당협들부터 정비하라고 반기를 들었다.

인적청산의 1순위 타깃인 김진태·민경욱 전 의원도 반발했다. 김 전 의원은 이렇게 의리가 없으면서 무슨 정치를 하겠나독재에 맞서 싸우려면 다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같이 돌을 던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 전 의원 역시 어디서 굴러먹던 김종인 따위가 당으로 들어오더니 날더러 극우란다정통 우파 통합당 당원들이 그냥 말랑말랑하게 보이느냐라고 비난했다.

당무감사 성공 여부에 따라 정치지형 요동

당무감사가 본격화될 경우 인적청산의 대상이 되는 의원들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직진을 외칠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기회있을 때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 무시하면 된다며 극우세력과의 절연 의지를 내비쳐왔다. 지난 총선에서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차명진 전 의원의 세월호 막말과 관련해 제명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리는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김 위원장의 이러한 인식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일반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극우적 행보에 몰두했던 정치인들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당의 미래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199615대 총선 당시 이른바 YS키즈를 대거 배출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개혁공천이나 200016대 총선을 앞두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단행했던 대규모 중진 물갈이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의지다.

김 위원장은 이미 4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 시절 친노 강경파의 반발을 진압하면서 물갈이에 나선 바 있다. 당무감사로 물갈이되는 빈 자리에는 개혁보수 성향의 참신한 정치신인을 대거 수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통해 보수야당이 무조건적인 국정발목잡기 세력이 아니라 차기 정권을 담당할 대안세력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의 파격적 실험이 성공할 경우 내년초 재보선 정국을 앞두고 여야의 정치지형도 요동칠 수 있다.

국민의힘 내부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여야를 넘나들면서 구원투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실적으로 이를 증명한 바 있다당무감사를 통한 극우세력의 선긋기는 해당 의원들의 반발 때문에 내홍이 적지 않겠지만 김 위원장의 의지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물론 일부 핵심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김 위원장 체제 흔들기에 나설 것이라면서도 총선, 대선, 지방선거, 총선으로 이어지는 전국단위 선거 4연패를 기록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강경보수세력과 결별하는 인적청산이 없이는 정치적 미래가 없다는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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