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기조 변화 없을 것” vs “새로운 대화 물꼬”

사임 발표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뉴시스]
사임 발표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직접 사임을 표명하면서 장기간 경색국면을 지나온 한일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큰 틀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으나, 새로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제기된다. 

포스트 아베유력 스가 관방장관’···자수성가형 정치인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총리직을 사임하겠다고 공식으로 밝혔다.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재발 때문이라는 게 아베 총리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 6월 정기 검진에서 재발 증상이 있었고, 지난 8월 상순 재발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또 지난 7월부터 체력 소모가 심각해졌다고 부연했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차기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 총리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다시 조기 사임을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는 노무현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9월에도 지병 악화로 조기 퇴진한 바 있다.

‘아베노마스크’라는 조롱까지 들었으나 코로나19 확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 각종 정치 스캔들 의혹에도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 온 점 등으로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한 것이 아베 총리 사임의 실제 이유라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韓 여야, “새 총리

전향적 모습 기대”

아베 총리가 전격 사의를 표명하자 한국 여야 정치권은 곧바로 “새로운 총리가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지은 더불어민주당 국제대변인은 “한국과 일본의 교역과 경제를 위해서도 양국 간 대화와 소통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보다 전향적이고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새로 서게 될 일본 정부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김은혜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아베 총리의 재임 기간 한일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았다”면서 “새로 선출되는 일본 총리는 한일 관계에 보다 전향적인 시선으로 임하는 각료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역사의 아픔을 인정하는 참회와 화해의 토대 위에 양국 간 협력과 미래를 도모하는 새로운 길이 열리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아베 총리 사임이 한일 관계에 있어 새로운 기대를 해 볼 수 있다는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총리가 교체되더라도 한일 갈등의 기저에 있는 강제징용 해법을 놓고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것.

다만 역사 수정주의 행보를 강화하며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라는 이미지마저 갖고 있는 아베 총리가 물러나고, 정부가 새로운 총리와 마주앉으면서 관계 개선의 새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화의 장 열릴까

아베 총리는 그동안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부정했고, 역사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죄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또 독도와 군함도 등 역사 왜곡을 이어가며 한일 갈등을 부추기고, 지난해에는 강제징용 판결을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정책을 강행하는 등 한일 관계 악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가 이어온 강경 행보가 중단되고, 새로운 총리가 나오면 아베 총리 개인의 정치적 리더십이 끼친 부정적 요소는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다만 한일 관계의 근본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의 입장이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018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관계는 수출 규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을 놓고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 보상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을 보이지만, 우리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한일 양국 관계, 피해자 권리 실현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 계기로 한일 정상이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에 공감했으나 진전은 없는 모양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한국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상태다.

자민당 7대 파벌 중 5개

스가 관방장관 ‘지지’

아베 총리 사임과 더불어 누가 후임 총리 자리에 앉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총리 후보로는 고노 다로 방위상,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자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고노 방위상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내에서는 이시바 전 간사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아베 총리의 최대 라이벌로 꼽히고, 역시 우파이지만 주변국과 관계에서는 아베 총리보다 온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과거 그는 한일 과거사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내는 등 아베 총리처럼 역사 수정주의적 행보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반면 스가 관방장관은 아베 총리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일 관계에 대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잇따르고 있다.

세습 정치인이 즐비한 일본 정계 핵심부에서 스가 관방장관은 부모 배경, 파벌, 학벌이 없는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그는 아키타현의 딸기 농가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도쿄로 이동해 경비원, 어시장 짐꾼, 주방보조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호세이대 정치학과 야간학부를 졸업했다. 중의원 의원 비서관으로 시작, 1996년 자민당 공천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현재는 8선이다.

7년 8개월 동안 관방장관직을 맡으며 행정부 2인자로 있던 스가 관방장관은 아베 총리를 보좌하면서 관가를 지휘했다. 지난 2014년 내각관방 조직 아래 내각인사국을 설치해 간부 공무원의 인사권을 쥐었다.

현재 유력 후임 장관으로 스가 관방장관이 거론된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차기 총재 경선이 사실상 스가 관방장관 추대 분위기로 흘러가는 모양새이기 때문.

최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여야는 오는 16일 임시 국회를 소집해 후임 총리를 선출한다. 자민당 7대 파벌 가운데, 5개가 스가 관방장관을 지지하기로 밝혔다. 이 때문에 스가 관방장관은 당내 국회의원 표의 70%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추산된다.

스가 관방장관은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아베 총재가 전심전력을 쏟아 추진해 온 대응을 계승하고 더욱 앞으로 나가기 위해 내가 가진 힘을 다할 각오”라고 밝힌 바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