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자르기’ 단행에도 ‘고질’...부패척결 노력은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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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정부 차원의 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으로 자리 잡아 온 제약 리베이트 논란이 또다시 수면 위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 10년여 간 쌍벌제와 투아웃제 등을 앞세워 제약업계 불법 리베이트 행위에 대한 ‘꼬리 자르기’를 단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규제를 벗어난 ‘변종’으로의 진화를 막을 수는 없던 모양새다.

숱한 여론의 비판에도 일부 중소규모 제약업체들은 구조적 문제를 이유로 리베이트 영업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분위기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하다는 대형 제약사도 이 런 의혹으로 경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을 조짐이다. 뿐 만 아니라 제약사를 중심으로 국내 대형병원 및 상당수의 의료진까지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제약‧의료계에 긴장감이 나도는 상황이다.


- JW중외제약 수사 본격화...“터질 일 또 터졌나” 여론 비판 확산
- 반부패경영 인증마저 불신...약사회 ‘리베이트 프리 선언’ 제안



JW중외제약이 리베이트 의혹에 휩싸였다. 경찰은 지난달 7일 JW중외제약의 서울 서초동 본사와 충남 당진 전산시설을 압수수색하고, 최근에는 수사관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JW중외제약은 자사 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의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JW중외제약은 홈페이지에서 보도 내용 일부를 반박하기도 했다. 사측은 경찰청에서 의약 리베이트 혐의로 JW중외제약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부분은 맞다면서도 상당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사측은 “오래전부터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영업환경의 정착을 위해 CP 강화 및 회사 내 각종 제도 개선에 매진해 왔다”며 “현재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오해와 억측에 기인한 것으로 객관적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회사의 입장이 향후 경찰 수사과정에서 충분히 소명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 추산하는 JW중외제약의 리베이트 금액은 2016∼2019년 기준 400억 원대 수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전국 수백여 명의 의사에게 자사 의약품을 환자들에게 처방하도록 하고, 수익금의 일부를 금품으로 지급한 것이다. 일부 의사에게는 야유회나 해외여행 비용까지 지원했다는 주장도 나온 상태다. 경찰청은 구체적인 규모 파악을 위해 회계자료와 장부 등을 분석하고,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관계자들과 의사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특정 社 문제 아냐”
반부패경영 인증 ‘의아’


JW중외제약의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지자 제약업계는 물론 의료업계에는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이다. 제약 리베이트는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돼 왔던 만큼 비단 특정 제약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여론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와 함께 연루 의혹을 받는 의사들 대부분이 서울 주요 대형 병원과 공공의료기관, 지방 유명 병원에 속한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파급력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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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관련 국제 규범 연혁 [ISO37001]


특히 제약업계에서는 몇 년 사이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부패척결에 앞장서기 위한 대외적 움직임을 보여 왔던 만큼 비판의 강도는 이전보다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다수 제약사들은 ‘ISO37001’ 인증을 획득하는 등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에 힘써왔다. ISO37001는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반부패경영시스템으로, JW중외제약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약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ISO37001 인증을 획득한 제약사는 JW중외제약을 비롯해 한미약품, 유한양행, 코오롱제약, GC녹십자, 대원제약, 일동제약, 대웅제약, 동아에스티, 동아쏘시오홀딩스, 동구바이오, 명인제약, 보령제약, 안국약품, 종근당, 휴온스, 제일약품, 엠지, 영진약품 등 족히 19곳이 넘는다.

이렇다 보니 획득한 인증 시스템마저도 불신으로 이어져 한 편의 ‘보여주기식 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도 이어졌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데 따른 신뢰가 하락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전직 제약 업계에 종사했다는 정모씨는 “근무 당시 의사들은 리베이트를 자신들의 ‘헌신’에 대한 정당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며 “잘못됐다는 생각을 못할 정도로 의사들 사이에서는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질적인 제약사 리베이트에서 자유로운 의사가 몇 명이나 있을까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약사회는 최근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논란이 화두로 떠오르자, 근절을 촉구하며 정부 차원의 규제 강화 방안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면서 그간 정부가 시행해 온 쌍벌제 도입, 처벌 강화의 노력에도 제네릭 의약품 난립 방치와 불법 제약영업 대행사(CSO) 관리 소홀이 제자리 걸음의 원인이라는 진단도 내렸다. 권혁노 약사회 약국이사는 “불법 리베이트 제공방식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진화하고 있어 처벌규정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의 보다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의 근원인 제네릭 난립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약사회는 정부·제약·유통·의약단체 공동 ‘리베이트 프리 선언’을 제안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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