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목사 [뉴시스]
김홍도 목사 [뉴시스]

[일요서울] 전광훈 목사의 스승,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금란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2일 오전 8시 5분, 김홍도 목사의 별세를 알렸다. 이어 ‘코로나19 상황으로 장례는 가족과 친인척만 모시고 진행한다. 일체 조문, 조의금, 화환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고인의 장례예배는 오후 5시30분, 입관예배는 지난 3일 오후 2시30분, 발인예배는 지난 4일 오전 10시에 진행됐다. 예배는 영상으로 중계됐으며 교회 홈페이지에는 김 목사의 온라인 추모관도 마련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애도를 표하는 교인들과 시민들의 추모글이 이어졌다. 

일요서울은 김 목사의 일생을 돌아봤다. 김 목사는 1938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나 조선 해방과 6·25 전쟁을 치르고 월남해 서울서 생활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3년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해 같은 해 3월 가평군 상천교회 담임 전도사로 부임하며 본격적으로 교계에 입문했다. 

4년 뒤, 1967년에는 광희문교회 부담임을 거쳐 1968년 목사 안수를 받아 1971년 3월 서울 중랑구 금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이후 2008년 담임목사 은퇴까지 금란교회에서 40여 년간 목회를 이어갔다. 그 결과, 고인은 금란교회를 세계 최대 규모의 감리교회로 성장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금란교회에서의 목회 운영 외에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회장(1996), 서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2006),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한국교회연합 명예회장 등 국내 기독교 협회들의 대표회장·명예회장직을 역임한 바 있다. 

한편, 김 목사는 은퇴하면서 아들인 김정민 목사에게 교회 담임목사직을 넘겨 교회 세습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외 교회 공금 횡령, 불륜 등의 논란을 겪은 바 있다. 교회 공금 31억 원을 횡령해 개인별장 신축 등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2007년 대선 당시 예배에서 이명박 대선후보 지지를 유도하는 발언, 2011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주일예배에서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를 비난하는 기사 신문을 교인들에게 배포하는 등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김 목사의 형제인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와 임마누엘교회 김국도 목사도 ‘감리교단 슈퍼 3형제’로 불리며, 교인 수 10만 명이 넘는 대형교회를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3형제 모두 아들들에게 교회를 세습했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 김 목사는 전광훈 목사와 같은 대표적인 극우성향 목사로 꼽힌다. 2004년 노무현 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하자 다른 대형교회들과 손잡고 ‘국가보안법 지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집회를 열고 교인들을 동원했다. 

이어 2011년 8월 전광훈 목사와 장경동 목사가 종북좌파들의 국가부정과 적화통일을 막아야 한다며 주도한 세미나 ‘3000대교회 초청 기독교지도자 포럼’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와 함께 초청받기도 했다. 

특히 근본주의 신앙관을 따르고 있어 ‘헌금을 하지 않으면 암에 걸린다’는 내용의 설교도 서슴지 않았다. 20만여 명이 사망한 2005년 동남아시아 쓰나미 대재앙을 두고는 ‘이교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1988년 타 종교와의 공존을 주장하고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한 감신대 학장 변선환 교수와 이를 지지한 홍정수 교수를 교단재판을 통해 감신대에서 제적하고 출교시켰다. 

전광훈 목사와 김홍도 목사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김홍도 목사는 전광훈 목사의 스승, 정신적 사부로 알려져 있다. 

고인은 전광훈 목사가 1998년 설립한 청교도영성훈련원의 총재를 역임했다. 또 전 목사를 금란교회 부흥회강사로 초청해 설교를 시키며 전 목사를 키운 대표적인 후원자로 꼽힌다. 김 목사와 전 목사는 반공, 친미, 극우 성향의 스탠스를 가진 대표적인 극우목사로 유명하다. 

이를 계기로 두 목사가 가까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전광훈 목사가 무명이었던 자신을 대형교회 부흥사로 키워준 고인을 ‘영적 아버지’라며 김 목사를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일화도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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