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이 사무실은 지금 텅 비어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아직 퇴근하지 않고 있을 줄이야. 그리고 내 모습을 보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 뭐라고 하든지 말을 해야만 했다.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안 부르셨나요?”

직원인 듯한 30대의 건장한 남자가 내 앞으로 왔다.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열려 있지 않았나요?” 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때야 나는 손에 드라이버를 아직 들고 있는 것을 알았다. 문을 따고 들어올 때 쓴 특수 드라이버를.

“문은 틀림없이 잠겨 있었다고요.” 그는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내 주위를 빙 돌았다. 나는 그에게 내 퇴로를 장악당하고 싶지 않아 비슬비슬 뒷걸음을 쳤다. 내 그런 모습이 더 수상함을 자아냈는지 사무실 안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며 내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뭐, 그저 벼, 별일 아닌 것 때문에, 뭐 이렇게….”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며 계속 뒷걸음을 쳤다. 등이 문에 부딪혔다. 나는 뒤로 손을 더듬어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니까 요새 우리 빌딩에 든 도둑이 사실은….”

30대의 건장한 사나이는 문고리를 잡은 내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내 얼굴은 금방 흙색으로 변했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난 그저, 그러니까 뭣이냐, 저….”
내 혀는 이미 굳어지고 내 팔다리는 떨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직접 내 눈으로 그걸 확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만이 메아리를 치며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도둑이 사실은 우리 빌딩의 직원이었다니! 내 참 기가 막혀서.” 사내는 내 멱살을 옥죄었다. “어디 한번 말씀을 해보시죠. 기술자 아저씨.”

그렇다. 나는 이 빌딩의 기술자였다. 그리고 이 건물에 3개월간 있었던 4차례의 도난 사건도 내가 한 짓이었다. 이런 거지 같은 실수만 없었더라면 나는 몇 번이라도 더 유유히 도둑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무실이 빈 시간만 골라 도둑질을 하고 꼭 현금이 있는 때만 귀신처럼 알고 턴다고 해서 이 사건이 내부에서 동조자가 있는 사건이라고 경찰도 말했었다. 그러나 강 형사라고 불리던 얼굴값도 못하는 형사는 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보일러실에 근무하고 있어 건물의 내부 사정에 밝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찰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을 뿐이었다. 그런데 범인인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잡히다니.

나는 처음에는 건물 지하의 레코드 집 미스 오를 심하게 원망했다. 아직 스물도 안 된 계집애가 이렇게 나를 골탕먹이다니. 나가기만 하면 단단히 보복해 줄 생각이었다. 강 형사가 추측한 것처럼 건물의 내부 사정을 정확히 모른다면 이 빈집털이 범행은 불가능하다. 나 역시도 공범이 있었다.

수위를 보는(이 빌딩의 수위는 모두 5명이었다) 한영구가 그다. 그는 빈 사무실을 체크해 두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맞춰 나에게 그곳을 귀띔해 주었다. 나는 내 공구들을 들고 태연히 그 사무실로 가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들고나오기만 하면 됐다. 그건 정말로 수지맞는 장사였다. 

이 일을 해내는 데 문제는 사소한 것 한 가지밖에 없었다. 
목표가 된 사무실의 호수를 내게 어떻게 알려줄 수 있는지다. 한이 내게 내려와 알려줄 수는 없다. (기계실은 지하에 있다.) 남의 눈에 띄게 되고 그것은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서가 된다. 왜 그런 말도 있잖은가?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사른다는.

내가 한에게 간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부적절하다. 이 경우는 역이 성립되는 명제이다. 우리가 합법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은 휴게실뿐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불필요하게 우리가 귓속말한다든가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평범한 인사나 나누는 정도였다. 아무도 한과 내가 각별한 사이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약속 시각을 정해 놓았다. 일이 있다면 그 시간에 한이 휴게실에 있게 된다. 물론 일이 없으면 그는 없을 것이다.

나는 지나가면서 그가 그곳에 있는지만 살피면 됐다. 그가 있으면 어떤 노래가 그 방에서 흘러나왔다. 휴게실에 있는 고물 카세트에서 나오는 것이었는데 바로 그 노래가 내가 주목해야 할 것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그와 내가 모두 음악엔 한 자락씩 한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 지하 레코드점으로 가서 그 음악 테이프를 살며시 살펴본다. 그곳에 바로 내가 털어야 할 호수가 나와 있다. 

내가 잡힌 그 한심한 날의 노래는 ‘낭랑 18세’였다. 나는 곧 지하로 내려갔는데 그놈의 노래가 워낙 오래되어서 그런지 영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나는 찾다가 지쳐 미스 오에게 그 테이프에 관해 물어보았고 그녀가 그걸 꺼내 들었을 때 그녀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생각에 그걸 물어보았다.

그녀는 뒷면을 살펴보고 대답해 주었는데 뉘 알았으리오. 그것이 요즘 랩을 가미해 리바이벌된 노래였다는 것을. 그 테이프가 너무 잘 나가 ‘낭랑18세’하면 그저 그걸 찾는다는 사실도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은 때에.
 

퀴즈. 범인은 어떤 방법으로 호수를 전달받은 것일까요?

 

[답변-4단] 범인은 노래의 길이로 호실을 찾아갔다. 노래의 길이가 5분 12초면 512호를, 4분 30초면 430호를 찾아가는 식이었다. 고충도 클래식 음악이 책임질 수 있으므로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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