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게임방, 모텔 주요 상품 격”

숙박앱에 올라온 게임방 모습. [야놀자앱 화면 캡처]
숙박앱에 올라온 게임방 모습. [야놀자앱 화면 캡처]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급속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따라 PC방 영업이 중단된 가운데, 모텔을 PC방 형태로 변형한 ‘게임텔’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모텔은 일부 게임 마니아층을 위해 고사양 컴퓨터 1~2대를 비치한 방을 소수로 운영했는데, 이제는 소규모 PC방처럼 한 방에 컴퓨터를 여러 대 설치해 게임족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게임족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만, 달갑지 않은 시선도 많다. 밀폐된 방 안에서 게임을 하는 만큼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와 함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PC방 업계의 목소리도 나오는 형국이다.

대실 시간 5~6시간 정도로 운영···가격은 2~3만 원대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 우려↑···PC방 업계 형평성 어긋난다

최근 숙박 시설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내 핫 키워드는 ‘게임’, ‘고사양 PC’ 등이다. 모텔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최고 사양’, ‘게이밍 장비 풀세트’, ‘커플 PC’, ‘그래픽카드 업그레이드’ 등을 내걸며 게임족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대실 시간은 5~6시간 정도로 운영된다. 가격은 2~3만 원대. 시간으로 따져봤을 때 PC방보다 비싼 금액이지만 게임족들에게는 희소식이다. 독립적인 공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 자유롭게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점, 흡연 제재가 없는 점, 피곤할 때 바로 침대에 누워 쉴 수 있는 점 등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밤새 게임을 하고 싶은 게임족들은 숙박을 이용하기도 한다.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 온라인 커뮤니티,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에서는 일명 ‘게임텔’에 같이 방문할 사람을 찾거나, 게임텔 후기 등을 묻는 게시물이 빗발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및 PC방 운영 중단으로 모텔에서 게임을 즐기는 행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모텔들, 일반방→게임방으로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 전에도 모텔에서는 고사양 PC를 내건 방을 운영했다. 그러나 일부 모텔에 한정됐고, 방도 소규모로 운영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PC방 운영 중단 조치가 이뤄지면서 갈 곳을 잃은 게임족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모텔들이 고사양 컴퓨터를 들이고, 일반방도 게임방으로 변경하는 추세다.

최근 게임텔을 방문했다는 20대 A씨는 “요즘 숙박앱에서 모텔을 검색하면 게임방들이 최상단에 위치해 있다. 게임방이 모텔의 주요 상품 격으로 변화한 것”이라며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전에는 일부 모텔에서만 게임방을 운영해 왔다. 아는 모텔 업주에게 물어보니 이전에는 넷플릭스(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서비스)방이나 특색 있는 커플방 등이 대세였는데, 이제는 컴퓨터 성능 등을 물어보는 전화가 계속 온다고 한다. 소규모 PC방처럼 컴퓨터를 4대 이상 놓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흡연자에게는 천국 같은 공간이다. 흡연자끼리 방문하면 하루 종일 게임을 하면서 눈치 보는 일 없이 담배를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하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PC방보다는 비싸지만 여러 측면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이용객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위생 측면에서는 못 미더운 게 사실이다. 키보드‧마우스 등에는 기름이 잔뜩 껴 있고, 코로나19 방역을 제대로 하는지도 의문이다. 충분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만 하다”고 말했다.

“이게 정부가 원하는 모습인가”

현재 모텔들은 방역과 소독을 철저히 하고 있고, 정해진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다며 게임족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그러나 밀폐된 방 안에서 게임을 하는 만큼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PC방 업계에서는 형평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게임텔이 성행하면서 PC방 영업 중지가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한 PC방 업주 B씨는 “정부가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를 내놓으면서 술집 등이 밤 9시 이후에는 포장‧배달로만 운영하도록 바꾸지 않았나. 이때 어떤 현상이 벌어졌나. 정부도 놀랐을 것이다. 편의점 외부 테이블, 포장마차 등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 급증했고 정부는 뒤늦게 금지 조치를 내렸다”면서 “이후 또 어떻게 됐나. 이제는 한강으로 사람이 몰렸다. 여의도, 반포, 뚝섬 등 한강공원에서는 사람들이 새벽까지 술판을 벌였다. 정부는 또다시 금지 조치를 내렸다. PC방을 막자 사람들이 어디로 몰렸나. 더 밀폐되고 방역 조치를 제대로 하는지도 모르는 모텔로 몰리고 있다. 이게 정부가 원하던 모습인가”라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PC방 영업 중지를 한다고 게임족들이 공중분해되는 것이 아니다. 분명 다른 데로 옮겨간다. 그게 지금 보이는 게임텔 방문 현상 아닌가”라며 “PC방 업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모든 조치에 대해 다 대처를 해 왔다. 칸막이도 있고, 환기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어 다른 다중이용업소보다 안전할 것이다. 근데 왜 영업 중지를 하는지 모르겠다.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영업 중지 조치가 이뤄지자 PC방 업주들의 생계 유지 노력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모양새다.

PC방 문을 열 수 없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음식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고, 고사양 컴퓨터를 집까지 배달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컴퓨터 배달 서비스는 PC방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와 게임 전용 모니터, 마우스, 키보드, 스피커 등을 제공한다. 당분간 PC방 문을 열지 못하게 된 만큼, 집에 고사양 PC가 없어 게임을 즐기지 못했던 게임족들을 겨냥한 전략이다.

생계가 어려워진 PC방 업주들은 이러한 서비스를 SNS에 올리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한편 PC방 업계 소상공인 단체인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PC방 영업중지 조치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PC방 영업중지 조치를 비판하는 청원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 밖에 충남 천안‧아산, 대전, 세종, 부산 등은 PC방 등 고위험시설 일부에 대해 ‘집합금지’ 조치에서 ‘집합제한’으로 완화했다. 집합금지는 사실상 영업중단 조치이지만 집합제한은 핵심방역을 철저히 준수하는 조건으로 영업할 수 있다.

정부는 영업 중단 조치가 내려진 전국의 PC방과 노래방, 뷔페 등에 200만 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PC방 업계는 200만 원이 성수기 한 달 전기값도 안 되는 금액이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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