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지역 방송국에 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께서 마스크 너머로 유심히 보더니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시에서 기존 신고 수입의 20% 밑으로 떨어진 개인택시 기사 분들에게 150만 원씩 보조금을 준답니다. 코로나19 와중에도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서 20% 조금 넘는 수입이 되는데 대충 그만 일하고 지원금을 받는 게 나을런지요?”

1961년 이후 59년 만에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편성되었다. 이로써 올해 추경만 67조 원에 달하게 되었다. 서울시 1년 예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국가채무는 1년 새 106조 원 넘게 불어나며 공식적인 국가채무 즉, 나랏빚만 847조원으로 GDP 대비 국가 채무비율은 44%에 육박하게 되었다. 

신종 코로나19 재확산이 주범이라는건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여기 덧붙여 이런저런 정치적인 이유가 덧붙여지면서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에 초비상이 걸린 건 틀림없다. 아직 국가의 재정수지와 국가채무가 적절한 수준으로 작동하도록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재정준칙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대에 커다란 짐을 지우는 것만은 분명한 일이니, 억지스러운 정치 논리로 누더기가 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다.

이번 4차 추경안에는 7조8천억 원이 투입되는데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격상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영업 자체가 중단됐던 PC방과 학원, 독서실, 스크린골프, 피트니스 등 ‘집합금지업종’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그리고 고용 취약계층을 집중 지원해서 경기 회복을 도모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 어렵고 취약한 이웃을 먼저 돕기 위한 추경을 연대의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당부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선별 지원’ 원칙을 갖고 있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통신비를 지급하는 사실상 ‘보편적 지원’과 유사한 대책도 있다.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이미 폐업한 소상공인에게 ‘폐업점포 재도전 장려금’을 지급한다거나 코로나19로 취업난에 직격탄을 맞은 청년층에게 특별 구직지원금을 지급하는 데 1천억 원을 배정한 것 등은 세심하게 배려하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더 어렵고 취약한 이웃을 돕는다는 추경의 취지와는 무관하게 차후 경제적 효과 검증 자체가 어려운 포퓰리즘에 가까운 정책이라며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도 있다. 13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이동통신요금을 2만원씩 지급하기로 한 부분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자 정부가 이를 보조하겠다는 취지라고는 하지만, 저소득층 생계지원 예산은 4천억 원에 그치는 점에 비추어보면 나도 받는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으로 지지세를 확산해 가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와의 TV 토론에서,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전 국민에 수혜가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부자 정당이자 기득권 정당인 국민의힘이 선별지급을 주장하는 것은 부자들의 조세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일부러 쏟아붓는 독설 느낌이다. 

또한, 이 지사는 “가구당 100만 원가량 줬더니 만족이 높았던 재난지원금을 1년에 두 번 정도 주자. 주로 부자들이 받는 연간 50조 원의 조세감면을 절반 정도 줄이면 국민 전원에게 50만 원을 줄 수 있다.”라고 했다. 한쪽 편에 서서 보기에는 시원한 면이 있는지 몰라도 왠지 허술한 느낌이다.

원희룡 지사가 지적한 대로 찔끔찔끔 얼마씩 쥐여줘서 국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저런 정치논리로 쪼개다 보면 효과를 알 수 없는 ‘N분의 1’이 되기 십상이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잔뜩 지우는 제약된 예산이니, 절대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돈이다. 철저하게 계산된 사회안전망과 복지 사다리 확충에 써야만 하는 무거운 돈이다. 반드시 국민이 동의하는 조세 부담을 갖고 써야 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지 않으면, 오늘도 택시 기사님은 아른거리는 지원금 앞에서 엑셀레이터를 좀 더 밟을까 말까를 고민하며 종일 마스크에 찌든 얼굴로 아스팔트 위를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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