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뉴시스
국회의사당, 뉴시스

세상이 변했다. 전직 국회의원이 행세하던 호시절은 지났다. 전직 국회의원은 어디 가도 현직 때처럼 대우해주지 않고 누군가 나서서 들고 나는 자리를 챙겨주지도 않는다. 스스로 운전해야 하고, 밀려드는 약속을 조정하던 호시절을 그리워하며 매일 아침 누구를 만날까 고민해야 한다. 연금도 없고 장, 차관 퇴직했을 때처럼 전관예우로 챙겨주는 곳도 없다. 스스로 알아서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떨어지면 끝이다. 

그나마 돌아갈 곳이 있는 전문직들은 나은 편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들은 갈 곳 없으면 유명 로펌에 몸을 의탁하거나 변호사 개업을 하면 된다. 의사 출신 전직이 다시 개업을 하는 경우도 흔하지는 않지만 김영환 전 의원처럼 몇몇 사례가 있다. 가장 행복한 유형은 자기 사업체를 가졌거나 재산이 많은 전직 의원들이다. 이들은 여의도 인근에 사무실을 내고 재기를 꿈꿀 여유가 있다.

전직 의원의 가장 바람직한 케이스는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등으로 발탁되거나 기관장으로 가는 길이다. 최근에는 최재성 전 의원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갔고, 배재정 전 의원은 정무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전현희 전 의원도 장관급인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국민연금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도로공사, 철도공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의 주요 기관장 자리도 전직 국회의원들이 심심치 않게 임명되는 복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정권 창출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주요 직책들은 여당 출신 전직 의원, 그 중에서도 대통령 주변에서 한 손을 거든 사람들만 욕심을 내 볼 수 있다. 박지원 전 의원이 국정원장에 발탁된 경우는 정치적 필요와 대통령의 결심으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인사라고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원내대표를 하면서 갈등을 일으켰던 이종걸 전 의원은 정치적 무게감에도 갈 곳을 못 찾다 지금은 민화협 상임의장을 하고 있다.

그나마 이종걸 전 의원 경우는 속빈 강정일망정 장관이나 기관장 자리에라도 이름이 언급되었지만 야당 소속 전직 의원은 말 그대로 국물도 없다. 누가 챙겨주지도 않지만 챙긴다고 해도 갈 만한 곳이 딱히 없다. 이런 전직 의원들은 주로 민간 영역에서 살 길을 찾는다. 조용히 로펌이나 대기업에 자리 잡고 드러나지 않게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정의당 추혜선 전 의원이 LG행이 문제가 된 것도 역할의 문제 때문이다.

추혜선 전 의원은 엘지유플러스에 비상임 자문직이라는 모호한 직책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당연하게도 이해상충 논란이 일었다.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 문제 등에 문제제기를 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정의당 출신 전직 의원이 재벌그룹에 취직하는 것이 정의당 당원들이나 일부 시민단체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 이해는 간다.

결국 추혜선 전 의원이 대기업 행을 포기하고 사과를 하며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이제 추혜선 전 의원의 생계는, 향후 정치적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당선 가능성 없던 지역구에서 낙선한 이후에 당내에서 활동할 공간을 마련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각개약진해서 살아남으라고만 하면 끝나는 것일까? 대기업에 가는 것만 탓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장래를 함께 고민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정당 구성원을 대하는 정당의 역할이 아닌가. 그런 의문이 텁텁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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