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 사이트 가입에 단 5분, 바람잡이 알바도

경찰에 확보한 불법 도박 자금 [뉴시스]
경찰에 확보한 불법 도박 자금 [뉴시스]

[일요서울ㅣ신수정 기자]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와 유튜브의 영향으로 ‘플렉스(FLEX, 힙합에서 유래된 사치품을 자랑하며 부를 과시하는 것)’ 소비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명품 소비가 늘고 있다. 명품을 자랑하며 명품 소유로 친구 관계를 가리는 등 교실 내 서열을 매기는 분위기도 한 몫 거두고 있다. 사실상 과거 노스페이스 패딩 열풍의 후속작인 셈이다. 청소년들의 명품 소비 열풍이 부는 가운데, 미성년자들이 스포츠 토토·불법 사설 토토·사다리 타기 등 ‘온라인 불법 도박’으로 명품 구입 비용을 마련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요서울은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8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수도권 소재 고등학교 재학생과 올해 2월 졸업생을 대상으로 취재를 진행했다. 

10대들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는 메종마르지엘라, 발렌시아가, 구찌, 발렌티노, 톰브라운 등이다. 위 브랜드들의 상품은 최소 40~50만 원 선이고 최대 200만 원까지 달한다. 웬만한 직장인들도 큰마음 먹고 구매를 시도하는 가격이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청소년들이 명품 구매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청소년들이 명품을 구매하는 방법은 총 네 가지였다. ▲용돈 중 일부를 저축 ▲부모님께 명품 구입 비용 전가 ▲직접 아르바이트해서 수익을 얻기 ▲불법적인 경로로 자금 마련하는 방법이다. 

‘명품 구매’ 위한 청소년들
절반은 ‘불법 도박’이 자금 마련책

청소년이 직접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용돈을 모아 구매하는 것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는 부모님께 비용 부담을 전가하거나 불법적인 경로로 자금을 마련하는 상황이라 문제가 되고 있다. ‘온라인 불법 도박’으로 명품 구매 자금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실정이다. 

취재에 응한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 A씨의 증언에 따르면 명품을 소비하는 청소년 중 절반은 불법 도박으로 자금을 마련해 구매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기자가 ‘토토로 명품을 구매하는 이유’를 묻자 학생 A씨는 “토토로 명품을 사면 본인 돈으로 사는 게 아니고 남의 돈으로 사는 거니까 이득이라는 생각에서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통계에 따르면 ‘온라인 도박’을 경험한 청소년은 최근 4년간 13배가량 급증했다. 이는 성인보다 3배나 높은 수치다. 청소년 도박이 증가하기 시작한 4년 전은 ‘명품 스니커즈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17년이다. 최근 몇 년 새 청소년들의 명품 소비 시장과 불법 도박 시장이 동반 성장했다고도 볼 수 있다. 

A씨의 증언을 토대로 명품을 구매한 학생 중 절반은 불법 도박으로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가정한다면, 청소년들 사이에 ‘명품 구매 열풍’이 가열될수록 불법 도박을 시도하는 청소년들도 많아질 것으로 추측된다. 

SNS, 사설 토토 ‘접근경로’ 악용
도박 빚 갚으려 ‘2차 범죄’ 가담

일요서울은 지난 9일, 미성년자로 가장해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에 접근했다. 접근에 성공한 기자는 운영자에게 ‘미성년자 가입이 가능한지’ 묻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입할 수 있다”며 가입 사이트를 안내했다. 불법 도박 사이트 가입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내외였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 사설 토토를 권유하는 SNS 댓글을 작성하는, 이른바 ‘바람잡이’ 알바도 있다. 나아가 만화·음란물을 취급하는 불법 사이트와 무료 앱 배너 광고로 노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SNS 3대장’이라 불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카카오톡 오픈채팅, 불법·무료 사이트를 거쳐 ‘불법 도박 사이트’로의 접근이 가능했다. 결국 스마트폰을 통한 잦은 노출과 쉬운 접근 환경은 청소년들을 ‘온라인 도박꾼’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불법 도박으로 빚진 학생들은 급한 대로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다가 이마저도 감당되지 않으면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사채를 빌려 쓰는 수순이다. 이 과정에서 십여만 원의 빚이 몇백, 몇천으로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나게 된다. 

궁지에 몰린 청소년들은 알바로도 감당할 수 없어지는 상황에 이르면 학교를 자퇴하고 잠적하거나 절도·사기부터 딥페이크 물 같은 성착취 영상 판매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어 갚게 된다. 작은 도박 빚의 시작이 ‘2차 범죄’의 가해자로 결말짓게 된 것이다. 

사기도박 의혹이 불거진 아프리카TV 리니지 유명BJ들의 사기도박 모습 [뉴시스]
사기도박 의혹이 불거진 아프리카TV 리니지 유명BJ들의 사기도박 모습 [뉴시스]

“학교에서 단속 없어요”
청소년 도박 관리 사각지대

청소년들의 온라인 도박이 빠르게 몸집을 불리며 이로 인한 피해도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학교의 단속도 없고 처벌도 미미한 수준에 그쳐 청소년 도박 범죄를 예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올해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민 B씨는 “기본적으로 한 반에 두 명은 인터넷 불법 도박을 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단속하는지 묻자 “학교 재학 중에는 안내문 정도만 나눠주고 단속은 따로 없었다”고 답했다. 

A씨의 답변도 같았다. A씨는 “학교에서 보통 모른다. 학생들이 학교에 알리지도 않을뿐더러 학교에서 알더라도 부모님한테 연락하고 해결하는 정도지 학교 차원에서의 징계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교사 C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도박을 한다. 사행성 게임을 잘 모르면, 아이들이 게임한다고 둘러댈 경우 알 수가 없다. 휴대폰을 걷어 확인하고 싶어도 인권 문제로 쉽지 않다. 표면화가 되지 않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경찰 당국에서 온라인 도박 사이트 및 SNS 광고 글, 배너 등을 일일이 관리하기도 어려움이 있다. 경찰이 조사에 착수할 만한 명확한 신고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감시와 관리의 부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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