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된 취업 길… 대기업 10곳 중 7곳 “신규 채용 불가능”

[뉴시스]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올해 하반기 공개채용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은 막막함이 더 앞서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시험과 면접을 보는 것도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들은 정기 공채를 연기 또는 축소 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언택트(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인해 채용 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그 속도도 빨라지면서 취준생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경연, “하반기 신규 채용 시장, 상반기보다 더 악화될 것”

코로나19 촉매, 인재상 변해… “신입 발 붙일 곳 없다”

올해 하반기 청년 고용시장이 ‘시계제로’ 상태에 진입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이 가중됐고 고용 여력도 위축되면서 올해 하반기 대기업 채용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6일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0년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 74.2%는 ‘올해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한 명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 중 신규채용 계획 미수립 기업은 50%, 신규채용이 아예 없는 기업은 24.2%였다. 반면 올해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한 대기업 비중은 25.8%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마저도 채용 규모가 지난해보다 감소하거나 비슷한 기업이 대부분(77.4%)이었다. 신규채용 예정인 기업 중 전년 대비 채용을 늘린 기업은 22.6%에 불과했다.

대기업들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국내외 경제 및 업종 경기 악화’를 이유로 대졸 신규채용을 늘리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어 유휴 인력 증가 및 TO 부재 등 회사 내부 수요 부족,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른 인건비 부담 증가, 정규직 인력 구조조정의 어려움, 필요한 직무 능력을 갖춘 인재 확보 어려움 등을 꼽았다. 한경연 측은 “지난 2월 실시했던 상반기 신규채용 조사에는 채용 계획 미수립 기업이 32.5%, 신규채용 ‘0’인 기업은 8.8%로 나타났다”며 “이를 감안하면 하반기 신규채용 시장은 상반기보다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정부와 국회가 대졸 신규채용을 늘리기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노동, 산업 분야 등 기업규제 완화(29.0%) ▲고용 증가 기업 인센티브 확대(28.6%) ▲신산업 성장동력 육성 지원(16.9%) ▲정규직, 유노조 등에 편중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14.3%) ▲진로지도 강화, 취업정보 제공 등 미스매치 해소(10.4%) 순으로 꼽았다.

대기업 절반
‘디지털 직무’ 채용 늘려

대기업 절반은 하반기에 AI, 데이터 분야 디지털 직무에서 대졸신입 채용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일 취업포털 기관에서 530곳 상장사를 대상으로 ‘2020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트렌드’에 대해 조사한 결과 36.8%는 ‘하반기 신입 채용 시 AI 데이터 분야 디지털 직무 채용을 예년보다 확대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기업별로는 대기업이 51.8%, 중소기업 32.2%, 중견기업 31.3%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들 중 39.5%가 ‘업무 디지털화, 비대면화’가 늘고 있다고 답했으며, 16.4%는 ‘신사업을 위한 R&D인재 확보 차원’에서도 해당 직무 수요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코로나19를 촉매로 기업 경영환경은 물론 나아가 ‘인재상까지 변했다’고 답한 기업이 28.7%나 돼 이목을 끌었다.

실제 이달부터 대기업들은 일제히 디지털 직무 대졸 채용에 돌입했다. 포스코의 경우 스마트 팩토리 추진, IT인프라 기획 및 운영 등을 담당할 ‘AI/빅데이터 직무’를, 포스코건설은 AI, 빅데이터, 텍스트마이닝을 담당할 IT직무를 모집한다. 신한은행의 경우 디지털 ICT 직원을 수시채용 중으로, 신기술(인공지능/빅데이터) 활용 서비스 발굴 및 개발, 인공지능(AI) 엔진 기반 서비스 개발, 빅데이터 기반 데이터 분석, 데이터 엔지니어링 업무 등이 있다.

경력자에 유리한
수시채용 늘고 공채 줄어

한편 코로나19로 대기업들의 채용 자체가 줄어든 가운데 공채보다 수시채용을 선택한 기업이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기관에서 상장사 530곳을 대상으로 올해 채용 규모를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을 뽑겠다’고 확정한 곳은 57%로 지난해보다 10% 가까이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은 채용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채용 비용을 줄이고 필수 인력만 뽑기 위한 수시채용이 더 확대됐다.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의 경우 아예 정기 공채를 폐지하고 상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개 채용을 하겠다는 기업은 39.6%, 분야별 수시채용을 택한 기업은 41.1%로 수시채용이 공채 비율을 처음으로 역전했다.

한경연에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 역시 대기업의 52.2%는 대졸 신규채용에서 수시채용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2.5%는 공개채용이 없고, 30.0%는 수시채용과 공채를 병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시채용을 활용하는 기업의 공채 비중은 평균 28.5%, 수시채용 비중은 평균 71.5%로 수시채용이 공채에 비해 2.5배 높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 같은 채용 방식은 결국 경험이 많은 경력자가 유리하고 채용 시점은 불규칙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취업 준비 중인 한 취준생은 “신입은 발 붙일 데가 없는 상황이다. 수시채용이 늘어난다고 해 ‘괜찮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실망감만 더 컸다”고 말했다. 신입 채용 규모는 줄어들고 수시채용은 확대되면서 취준생들에게 올해 하반기는 더욱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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