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2기 비서관 ‘친정체제’ 구축

이상득 · 정두언 · 박형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이 조용하다. 지난 6월 17일 2박3일간의 일본을 방문할 당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2선 후퇴론’을 요구받았다. 이 의원은 출국 당시 ‘조용하게 지내겠다’, ‘오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 친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는 힘들 전망이다.

이 의원은 가만히 있지만 그를 둘러싼 각종 추측과 억측은 난무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청와대 2기 비서진이 출범한 뒤에도 이상득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한참 소장파들로부터 ‘퇴진론’ 요구를 받던 지난달 6월 돌연 일본 방문은 이 대통령이 7월 G8 확대정상회의 참석 전 일본 총리와 사전 조율을 협의하기 위해 대통령 특명으로 갔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소장파의 반격에 잠시 일본에 도피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친형 이상득의 질주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재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6월말에 단행된 청와대 2기 대통령 비서실 진용이 새롭게 갖춰졌다. 청와대 인적 쇄신의 기폭제 역할은 정두언 의원의 자처했다. 정 의원의 인적 쇄신 주장의 주 타깃은 ‘왕수석’으로 불리던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었다.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이력 때문에 각료 및 청와대 인선에 배후 역할했다는 의혹을 받은 인사다.


박영준 빈자리에 정다사로 제2 왕수석?

이런 박 전 비서관이 물러났지만 한나라당 소장파 진영에서는 여전히 이상득 파워가 느껴진다고 하소연이다.

청와대 비서진이 대폭 교체됐지만 정 의원이 지목했던 정다사로 민정1비서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 비서관은 이상득 국회부의장 시절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이 의원과 연을 맺었다.

소장파 진영에서는 정 비서관이 정무파트에 있을 당시 박희태 당 대표 선출을 위해 물밑작업을 해온 인사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런 정 비서관이 정무에서 민정1비서관으로 옮기면서 박 전 비서관처럼 ‘제2의 왕수석’이 탄생한 게 아니냐는 시각을 보냈다.

특히 박 전 비서관이 민정수석실에서 가져온 ‘감찰권’이 민정1 쪽으로 재차 넘어가면서 청와대 내 위상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감찰팀의 주요 업무는 청와대 직원 감찰이었지만 사실상 고위직 인사들의 뒷조사까지 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정 의원이 청와대 ‘인적쇄신’을 요구하기 전 청와대 안팎에서 “정두언 의원 아킬레스건을 잡고 조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정 의원이 청와대를 향해 ‘쓴 소리’를 내뱉은 배경이 됐다는 ‘카더라식’ 흑색선전이 횡횡했다.

이런 감찰권이 민정1로 이관됐고 이 의원 비서실장을 지낸 정 비서관이 책임자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민정비서관실은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와 고위 공직자 특별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이번 청와대 2기에서 ‘형님 라인’으로 의심받는 인사가 들어온 점도 주목된다. 바로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구 기획조정비서관)이다. 정 비서관은 박 전 비서관의 후임으로 들어온 인사다. 그는 박 전 비서관이 총괄했던 ‘선진국민연대’ 대변인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 당시 정 비서관은 국민연대의 중도개혁 노선을 기획하고 이 대통령의 외연 확대에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박 전 비서관의 소개에 이상득 의원의 입김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상득 라인의 ‘권력 사유화’를 비판했던 소장파 측에서는 ‘형님 권력은 끝이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정 의원이 청와대 인적쇄신을 요구하며 이 의원을 압박할 지난 6월 중순 이 의원은 돌연 일본으로 출국했다. 당시 당 안팎에서는 소장파의 ‘2선 후퇴’ 압박에 못 이겨 잠시 일본에 피해 있으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정두언 공격에 이상득 일본행 이유

하지만 이 의원은 지난 17일 출국 직전 기자간담회장에서 “개인적인 행사도 있고 대일 무역적자가 300억 달러인데 부품소재 부문이 가장 크다”며 “실제 업체도 방문하고 문제점이 뭔지 알아볼 겸 간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의원 일본 출국 배경에는 청와대로부터 받은 또 다른 특명을 수행하기위한 것이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 의원은 권철현 주일 대사와 함께 이 대통령이 G8(선진 8개국) 확대 정상회의 차 일본 방문 전에 일본 총리와 사전 조율을 하는 것이었다. 소장파의 공격 때문이 아닌 청와대 특명으로 일본에 방문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후 이 대통령은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만나 일본이 중학교 신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을 명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데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확대정상회의 직전 후쿠다 총리와 15분간 환담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고 일본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에 후쿠다 총리는 “한국 정부의 처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총리의 긍정적인 발언 뒤에는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막후 역할이 컸다는 게 당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참 소장파로부터 ‘2선 후퇴’를 공격받는 시점에 이 대통령은 형님에게 일본 특사 역할을 맡김으로써 힘을 확실하게 실어준 셈이다. 이 관계자는 “일본 방문의 배경을 모르고 소장파가 무서워서 갔느니 하는말은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이라며 “이상득 의원은 이명박 정권이 끝날 때까지 갈 인물”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장파 박형준 이상득 반격에 소외

한편 청와대 2기 인적쇄신에 소장파 몫으로 들어간 박형준 홍보기획관이 청와대 내 자리를 못 잡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지난달 말에 청와대에 들어간 박 기획관이지만 본관이 아닌 별관에서 근무를 하는 등 ‘홀대’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 배경에 ‘이상득 라인’이 정두언 의원의 반격에 재반격을 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소장파 일각에서는 정두언-이상득 파워 게임은 이제 1라운드 끝났을 뿐이라며 제2라운드
가 금명간 벌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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