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알겠습니다.”
“범인은 벌써 이곳을 빠져나가 어딘가에서 폭탄을 터뜨릴지 모릅니다. 장 안토니오 일당이라면 전번처럼 리모컨을 이용할 것입니다. 이곳 외곽 어딘가에 범인이 있을 것입니다.” 김승식 부장이 말했다.

“우리 사단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 1킬로미터를 물샐틈없이 봉쇄했습니다.” 소령이 자신있게 말했다. “잠깐. 소령님, 로봇 투입을 잠깐 중지하고 생각을 좀 해봅시다.”
갑자기 문동언 경위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 사람이... 지금 왜 중지한단 말이야. 저 안에 지금 우리 직원이 있단 말이오. 1초가 급해요.”

이종문 본부장이 벌컥 화를 냈다.
“전번에 그 리모컨이 사실은 핸드폰이었습니다.”
문동언 경위의 설명에 말에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수신기능이 없는 특수하게 제작된 핸드폰이었습니다. 물 속의 폭발물에도 핸드폰이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한수원 박사가 번호를 눌렀을 때 그 핸드폰이 작동되면서 뇌관을 건드렸던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때 한수원 차장이 누른 번호는 핸드폰 번호가 아니고 다섯 자리 숫자 아닙니까.”
김승식 부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맞습니다. 87452 다섯 자리지요.”

“그런데 보통 핸드폰 번호는 열 자리 아니면 열한 자리 숫자 아닙니까.”
김승식 부장이 다시 말도 안 된다는 듯 반박했다. 모두 어리둥절해서 문동언 경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리모컨에 앞자리 숫자가 숨어 있었습니다. 무슨 번호를 누르든 앞자리에 010 88이 입력되도록 저장돼 있었지요. 그러니까 한수원 박사가 87452를 눌렀지만 수신 쪽 핸드폰에는 010 888 7452로 발신된 것이지요.”

문동언 경위의 설명을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단축키와 같은 기능이었다.
“그러면 이 지역 기지국에 연락해서 핸드폰 전파를 중지시켜야겠군.”
경찰청장의 말이었다. 경찰청장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수사 요원들이 바쁘게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전파 중지 조치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폭발물 운반 작업을 잠깐 중지시키는 게 우선입니다.”

“무슨 소리요?” 
“제가 알기로...”
문동언 경위가 말을 하면서 김승식 보안부장을 쳐다보았다.
“터빈실과 주제어실은 핸드폰용 무선 전파가 차단됩니다. 건물 자체가 워낙 두텁고 단단해 전파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는 핸드폰을 쓸 수가 없어요. 맞습니까, 김 부장님?”

“예, 그렇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범인이 아무리 핸드폰을 눌러대도 폭탄에 장치된 수신기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말이지?”
경찰청장이 무릎을 쳤다.

“그렇습니다. 방사선 물질 차단을 목표로 설계된 건물이기 때문에 통신 전파도 차단됩니다. 지난번에 한수원 박사가 리모컨을 누른 곳은 사무실이기 때문에 폭발되었던 거고요.”
문동언 경위가 설명했다.

“그러나 핸드폰 전파와 다른 주파수를 쓴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설마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에 핸드폰으로 터뜨리는 폭탄을 장치했겠어?”
경찰청장이 우려를 나타냈다.
“어쨌든 기지국에서 발신 차단을 한 후에 폭발물을 운반하는 게 좋겠습니다. 폭발물을 가지고 나와 분해할 때 터질 수도 있으니까요.”
문동언 경위의 말에 이종문 본부장이 결론을 내렸다.

“알았어. 즉시 통신 전파 차단을 요청해.”
주제어실에 갇혀 있는 수원과 영준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유선으로 작동되는 시스템 외에는 모두 중지시키고 발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만 가동시켜 놓았다.

수원이 비상대책실에 유선 전화를 걸었다.
“상황실장 임영규입니다.”
임영규는 행정실장인데 비상시에는 상황실장을 겸했다.
“한수원입니다. 발전기는 이상 없이 가동 중입니다. 폭탄은 제거되었나요?”
“수고하십니다, 한 박사님. 제거했다면 구출하러 갔겠지요. 모두 한 차장님 걱정하느라 간이 닳을 지경입니다. 조금만 버텨 주십시오.”

“제 걱정은 말고 빨리 수습해 주세요.”
수원은 전화를 끊었다. 공연히 자원을 해서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은 문득 절해고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참 동안 영준이 곁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영준은 터빈 비상정지 버튼 앞에 서서 꼼짝 않고 계기판만 보고 있었다.
“주 차장님!”
수원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놓였다.
“예?”

영준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대답만 했다.
“만약 폭탄이 터지면 여기도 열 폭풍이 몰려들겠지요?”
“우리는 바비큐가 되겠지요.”
영준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바비큐라면 형체라도 남겠지만 우리는...”
수원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폐연료봉 저장소에는 영향이 없을까요?”
“폐연료봉이 노출된다 해도 방사능 물질 피해는 심각하지 않습니다. 핵 보일러가 손상을 입지 않는 한 방사능 오염을 겁낼 것은 없지 않습니까?”
영준이 진지하게 말했다.

“폭발이 일어나면 IAEA 카메라 작동이 중지되겠죠? 폭발 후 혼란을 틈타 폐연료봉이나 발전용 핵연료를 다른 데로 빼낼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군요. 누군가 그런 것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핸드폰 기지국 전파 중단은 어떻게 되었나?”

경찰청장이 수사요원들에게 재촉했다. 그 사이 폭발물을 운반하기 위해 로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황실에 모인 사람들은 모니터를 통해 로봇의 움직임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긴 팔을 가진 조그만 괴물이 느리지만 절도 있게 움직였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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