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일이 자기 아내 정숙을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원하지 않던 정략결혼을 하던 바로 그 날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형일의 부친은 정계의 누구라 하면 알 만한 거물이었고 아내 정숙의 부친은 재계에서 그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결혼할 때부터 온갖 잡지들이며 신문들까지 정경유착의 산물이라느니, 금권 정치의 시발이라느니 하는 입방아가 상당했다. 그들의 결혼은 그때부터 이미 상처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형일은 다른 사랑이 있었으며, 그것은 정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둘 다 부모의 뜻을 거스르며 결혼하기에는 마음이 굳세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불행을 잉태하å고야 말았다.

형일의 살인 계획이 구체적으로 떠오른 것은 정숙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였다. 그의 친구 일남이 정숙과 정숙의 옛사랑인 민호가 만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날 형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 사실을 넌지시 떠보았다.
“그 민호라는 친구, 지금은 뭘 하나?”
정숙은 움찔하는 것 같았다. 최소한 형일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글쎄, 뭘 하겠지요. 굶기야 하겠어요?” 정숙은 시치미를 뚝 떼고 그렇게 말했다. 형일은 속으로 치미는 불같은 분노를 초인적인 의지로 삭이며 계속 찔러 보았다.

“듣기론 흥일실업에 있다고 하던데?” “어마, 홍일실업이면 우리나라에서 몇 번째 가는 재벌 그룹이잖아요. 잘됐네요.”
“그렇지. 산산그룹보다는 처지지만.”

산산그룹은 정숙의 부친이 이끄는 재벌그룹이다. 그 날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형일은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고 굳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나와 있을 때도 수시로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가 집에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안심이 되었다. 아내가 받으면 슬그머니 전화를 내려놓았다. 할 말도 없었고 주위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공연히 다정한 부부니 하는 소리라도 한다면 그 역겨움을 참기 어려우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행여 정숙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집에 돌아가 꼭 어디 갔었는지를 물어보았다. 물론 전화를 걸었었다는 소리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떤 때는 어디에 갔었는지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일은 보복적인 차원에서 자신도 옛 여자인 영임을 만나 밀회를 즐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도대체 속 시원한 보복이 되지를 못했다. 영임을 만나 즐길수록 민호가 정숙을 그렇게 어루만지고 그렇게 쓰다듬으리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고 그럴수록 자신은 비참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형일은 자신을 그런 비참으로 몰아넣고 있는 원인은 정숙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정숙을 제거하는 것만이 자신이 다시 인생의 즐거움을 되찾는 길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게 되었다.

그는 날마다 아내를 죽이는 꿈을 꾸었다. 목을 조르기도 했고 칼로 찔러보기도, 총으로 쏴보기도 했다. 길을 걷다가 질주하는 차량 앞으로 떠밀어 넣어보기도 했고 한강을 건너가다가 다리 난간 위로 번쩍 들어 집어 던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꿈들의 결과는 언제나 교수대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는 진저리를 치며 꿈에서 깨어났고 정숙은 자신의 초췌하고 놀란 모습에 아랑곳없이 단잠을 즐기고 있게 마련이었다. 그때마다 형일은 살의로 불뚝거리는 자신의 팔을 이성의  힘으로 억눌러야 했다.

기회는 그의 편이었다. 그들은 분당의 50평 아파트에 당첨되어 살던 집을 팔아야 했다. 그러나 입주 시기가 한 달 정도 맞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형일과 정숙은 오피스텔에서 한 달간 생활을 해야 했다. 그것은 집이 넓어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형일의 계획에 불을 댕기는 결과가 되었다. 그는 먼저 자명종 시계를 샀다. 그것은 최근 많이 나오는 전자음의 알람 시계가 아니라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자명종 시계였다. 추가 바깥에 나와 있는 두 개의 종을 때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정숙은 그 소리를 품위가 없다고 싫어했지만, 그는 고전적인 소리가 얼마나 좋으냐고 반박했다.
오피스텔에 들어온 지 1주일이 지난 후 그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일요일 아침에 낚시를 간다며 새벽 4시에 자명종 시계를 맞춰 놓았고 자명종 시계에 맞춰 4시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 일요일인 데다 남편마저 집에 없으니 정숙이 9시가 넘도록 잠을 잘 일은 뻔한 일었다. 그는 자명종 시계를 9시에 맞추고는 슬그머니 침대 밑에다 내려놓았다.

낚시터로 연락이 온 것은 11시나 되어서였다. 그의 오피스텔에서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형일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계획대로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완전범죄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경찰의 과학적인 수사 방식과 추 경감의 끈질긴 추적으로 형일의 살인은 드러나고 말았다.

 

퀴즈. 그의 살인 계획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답변 5단] 형일은 가스레인지를 틀어 가스가 바닥에 고이도록 했다. 다음에 시계 자명종이 울리는 벨 위에 아들의 딱총 화약을 붙여놓았다. 그 결과 9시가 되자 종이 울리며 딱총 화약이 터졌고 그 작은 폭발은 가스 폭발의 도화선으로 안성맞춤의 역할을 해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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