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뉴시스
국회의사당, 뉴시스

정치는 말로 하는 행위예술이고 정치인은 말로 먹고산다는 말이 있다. 우리 정치 현실과는 약간 동떨어진 말이다. 정치가 사회적 갈등과 대립, 분출하는 이해관계를 대화와 토론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를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이라면 이런 정의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말 잘하는 정치인으로는 대표적으로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전 의원을 들 수 있고, 노회찬 전 의원, 이제는 야인인 유시민 작가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말을 잘하는 정치인 축에 속한다고 꼽힌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특이하게도 이런 말 잘하는 정치인보다, 어이없는 말실수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를 더 자주 볼 수 있다.

최근에도 여당의 원내대변인인 박성준 의원이 군 복무로 논란 중인 추미애 법무장관의 아들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했다가 안팎의 비난을 받고 사과하는 소동이 있었다. 박 원내대변인의 진의는 그게 아니었다지만 단어 하나, 뉘앙스 하나가 어떻게 전달되고 왜곡될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정치적 언어의 기본이다.

박 원내대변인처럼 말을 매끄럽게 하기로 정평이 난 아나운서 출신들은 정치권에 들어오면 일단 대변인직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방송가 출신이라 외모가 수려한 편이고 발음도 정확해서 전달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다져진 순발력과 사회적 현안에 밝은 직업적 특성도 반영되는 것 같다.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으로는 현 박영선 중기부 장관, 신경민, 고민정, 배현진 의원 등이 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한때 KBS 영어방송의 아나운서였다고 한다. 전직 의원으로는 한선교, 민병욱, 박찬숙, 유정현, 변웅전 전 의원 등도 유명하다. 아무래도 아나운서 출신 중에 가장 유명하고 정치적으로 성공한 이는 정동영 전 의원일 것 같다.

승승장구하던 정동영 전 의원도 그 유명한 ‘노인 폄하 발언’을 일으키면서 말실수가 이슈가 될 때마다 소환되는 되는 신세가 되었다. 말 잘하는 직업을 거친 정치인들이 기름칠한 듯 부드러운 혀를 가지고 잦은 말실수를 하는 것은 좋은 정치인이면 반드시 갖춰야 할 치열한 사고와 정의로운 삶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현재 민주당 대표이면서 유력대권주자인 이낙연 의원도 이런 ‘말의 역설’에서 자유롭지 못한듯해 안타깝다. 이낙연 의원이 대표 취임 이후 보여주는 행보에서 총리 시절의 사이다 발언이 주던 희열을 찾는 지지자들이 이탈하는 것이 언뜻언뜻 보인다. 국정운영의 안정적 지지 확보를 위한 이 대표의 중도적, 안정지향 행보는 대권 지지율 답보로 돌아오고 있다.

이 대표가 지지세 확장을 위해 무차별적인 사이다 발언을 마다하지 않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언제까지 평상심을 유지할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말의 정치가 꽃 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다. ‘말이 많으면 공산당’이라는 풍토에서 그런 기대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가끔은 격조와 품격을 갖춘 말의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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