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요즘처럼 여의도에서 실수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각종 의혹으로 구설수에 오른 추미애 법무장관도 그렇고 지난해 전국을 뒤집어 놓은 조국 전 법무장관도 그랬다. 또 국회의원 후보 등록 당시 선관위에 제출한 재산이 수십 수백억 원 폭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실수' '몰랐다'라고 강변한다. 

의원들이 '실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고의성이 없었다. 법을 어길 의도가 없었다는 뜻일 게다. 실수는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을 뜻하는 행위 추상명사다. 법률적으로 해석하면 과실에 해당할 것이다. 과실은 '어떤 사실(결과)의 발생을 예견(豫見)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주의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심리상태'다. 

범죄 여부를 따질 때, 특히 판결에서 과실과 고의적 범죄는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고의적 상해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과실치상(실수)은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그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14일  "신규 등록 국회의원 175명(재등록의무자 21인 포함)의 당선 전후 전체 재산 및 부동산 재산을 비교·분석한 결과, 당선 후 이들의 신고재산은 평균 10억 원, 부동산 재산은 평균 9000만원 늘었다"고 밝혔다.

당선 후 재산증식 논란은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지난 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수진 의원이 재산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신고됐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민주당 김홍걸 의원의 분양권 누락과 부동산 쇼핑 등 여러 의원들의 재산폭증 사실이 드러났다.

경실련에 따르면 당선 전후 전체 재산 신고 차액이 10억 원 이상, 즉 전체 평균보다 컸던 이들은 15명이고 이들의 평균 차액은 111억7000만 원에 달했다. 이들은 '비상장주식의 재평가' '부동산 공시지가 상승' 등의 이유를 들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 '바빠서' '초선이라' '몰라서'라고 항변하지만 국민들로서는 4개월여 만에 1억도 아니고 10여억원 이상의 재산 증식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과연 이들은 정말 수억 원에서 수백억원의 재산 누락을 몰랐을까. 실수였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상상 속의 그대'가 되고 있지만 국가 지도층이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책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지도층일수록 솔선수범해 법과 도덕을 지켜야만 사회와 국가가 건강한 미래를 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은 버나드 케릭 전 뉴욕 경찰청장의 국토안보부 장관 지명을 철회했다. 그가 불법 이민자를 가정부로 고용했으며 이와 관련된 세금이나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린다 차베스 노동부 장관 지명자 역시 같은 이유로 지명을 철회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역시 첫 여성 법무장관으로 조 베어드를 발탁했지만 불법이민자 가정부 고용과 사회보장 세금 미납을 이유로 지명을 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동부장관으로 지명한 앤드루 퍼즈더 역시 불법이민자를 가정부로 고용한 사실이 밝혀지자 자진 사퇴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CIA 국장과 미국 공화당 차기 대선주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존 엔자인 상원의원은 혼외정사 문제로 스스로 사임했다. 현역 최다선(27선)인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은 성추행한 여직원에게 2만7천 달러의 합의금을 '임금' 형식으로 세비에서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사임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이들은 '실수'라고 해명하지 않고 문제점이 드러나자 법 이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키지 못한 도덕적 책임을 진 것이다.

경실련은 해당 의원들의 소명 내용을 확인한 뒤 문제가 있을 경우 검찰에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의원들은 검찰에 고발되기 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기 바란다. 특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새로운 지도층 도덕규범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는 여권에 맞서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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