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JM건설-유가족 ‘협박 공방’... 경동건설 ‘무대응’ 일관

모승원 한국비계기술원 팀장이 故정순규 씨의 산재 사망 사고 현장을 진단하고 있다. [KBS 방송 화면 캡쳐]
모승원 한국비계기술원 팀장이 故정순규 씨의 산재 사망 사고 현장을 진단하고 있다. [KBS 방송 화면 캡쳐]

[일요서울ㅣ신수정 기자] 경동건설 故정순규 씨의 건설현장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사고 당시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사건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변한 것이 없었다. 유가족이 원한 것은 원도급인 경동건설과 하도급업체 JM건설의 진정성 있는 사과였지만, 현실은 두 사측과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사건은 지난해 10월30일 오후 1시경 부산 남구 문현동에 위치한 경동건설의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故정순규 씨는 당시 하청업체 JM건설 소속 근로자로 현장을 대표해 진두지휘했다. 정 씨는 점심을 먹고 나서 옹벽에 박힌 철심 제거 작업 중에 공중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정 씨는 최초신고자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쳐 끝내 숨을 거뒀다. 

경동건설 유가족 호소에 
“무대응” 일관

유가족은 사고 당시 현장 증거가 될 수 있는 ▲CCTV 영상 ▲인근 차량 블랙박스 영상 ▲목격자 증언 모두 부재하므로 시공사 측이 주장하는 ‘단순추락사’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추락사고 이후 설치된 경찰의 폴리스라인을 무단 침범해 현장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는 등 현장 보존 법규를 위반했다. 유가족은 경동건설이 사고 축소 및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 씨의 아들 정석채 씨는 ‘경동건설의 변하지 않는 태도’를 지적했다. 사고 직후부터 보상협의와 재판과정을 진행하면서도 팽팽한 대립은 계속됐다. 

하도급업체인 JM건설 측은 “유가족이 폭력배를 동원해 강압에 못 이겨 2억 원 위로금 각서를 썼다”며 유족을 상대로 감금·폭행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유가족은 “지인이 오해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정 씨(子)는 “협박을 받은 것은 오히려 우리”라며 하도급업체 관계자로부터 “SNS나 언론에 사건을 알리지 말라. 그럴수록 당신들이 불리해지고 위험해질 수 있다”는 협박성 전화를 받아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일요서울은 제보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경동건설 측에 지난 15일과 16일에 걸쳐 연락을 취했지만, 담당자를 알아보겠다고 말한 뒤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사건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에게 자문을 구해 봤다. 

타 건설업 관계자 A씨는 “현장 전후 사진을 보아 산업안전보건법상 옹벽 부분을 작업할 때 이행해야 하는 최소한의 안전관리는 지킨 상태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근거하면 ▲안전난간대(중간 난간대) 누락 ▲발끝막이판 미설치 ▲벽이음 미설치 ▲쌍줄비계 이상 ▲추락주의 타포린 미설치 ▲생명줄 미설치 ▲안전망 미설치 등 사고 현장의 안전관리는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A씨는 “옹벽 작업은 금방 끝내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작업을 마치고 다른 작업으로 이동하려면 제시한 안전관리조치를 다 적용하기는 번거로워서 다른 안전장치는 생략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동건설 측에서 하청 JM건설에 안전관리 비용과 책임 권한을 넘겼다면, JM건설 측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경동건설로부터 받은 안전관리 가이드를 위반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동건설의 현장관리 부실을 지적할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 지적
정치권 ‘법제화’ 움직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건설업 사고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2017년에 506명, 2018년 485명, 2019년 428명이다. 매년 미미한 감소 폭을 보이지만, 사고가 감소한 것은 공공공사의 비중이 높다. 민간공사에서의 산재사고는 여전히 매년 400건가량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50대 기업에서 발생한 중대 사망 산업재해 사고의 처벌 결과 대부분 300~400만 원의 벌금형에 그쳤다. 이마저도 원청사가 처벌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원청사 대표는 단 한 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한 의원은 “대기업들이 산재가 예상되는 위험 작업을 외주화해 책임을 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는 직접적인 현장관리자에게 일차적인 책임을 묻고 원청사는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개선하고자 정치권에서도 개정안 제정 촉구 발언, 법안 발의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정의당에서는 21대 국회 정기국회 기간에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한 뒤 현재까지 국회 본회의장 앞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해당 법안은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정의당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만들어 기자회견과 국민청원을 함께 진행 중이다.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진행되는 국민청원은 지난 18일 기준 94,392명의 동의하며 94%를 달성했다. 오는 26일 전에 10만 명 이상의 청원인을 모으면 소관 상임위에서 해당 청원의 심의에 들어간다. 

이어 정 씨(子)는 오는 22일에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참석해 경동건설의 악행을 알리고 사건을 공론화해 진실 규명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사건을 공론화하고 동시에 국민청원 10만 명 돌파로 법사위로 넘어가 국회에서 논의된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영향력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13일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청 시공사 대표의 책임 규정이 포함된 ‘건설안전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발의안에 따르면 발생한 사고에 대해 원청 시공사는 물론, 발주자·설계자·감리자·근로자 등 관련 주체별 현장 안전 책임을 강화했다. 

특히 안전시설물을 원청사가 직접 설치하고, 건설현장 안전관리도 원청이 총괄하는 규정을 포함했다. 또 개인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 근로자는 작업에서 배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법령 위반 시 형량은 현 산업안전보건법(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 수준을 유지키로 했다. 

한편,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법 제정을 통해 안전관리가 강화되면 최종 책임자들은 현장지휘가 수월해지고 안타까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면서도 “원청, 하청과 각 업무 총괄자들의 책임을 강화했기 때문에 건설업 수주나 투자가 줄어들어 기업 경영에 영향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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