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은 그룹 재도약을 위해 기필코 인수해야 한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최종 실패했다. 정몽규 회장이 강행했던 모빌리티 종합그룹으로의 도약이 무산됐다. [이창환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최종 실패했다. 정몽규 회장이 강행했던 모빌리티 종합그룹으로의 도약이 무산됐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항공사 운영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10개월의 대장정을 달려왔으나 결국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올 초 발생한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에 따른 영향이 컸다는 풀이도 있으나, 코로나19가 불쏘시개였다면 인수받으려던 HDC현대산업개발과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나선 금호산업, 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과의 갈등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는 말도 나왔다. 2500억 원의 계약금을 두고 법적 공방이 예고된 상황이지만 일각에는 정몽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2조 원에 달하는 재무부담을 떨쳐낸 것이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앞두고 기업들 간 눈치작전이 치열했던 당시를 되돌아보면 재무적인 부담을 떨쳐냈다는 다행스러움 보다 이를 이뤄내지 못한 아픔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정몽규 HDC현산 회장, 이동걸 산은회장 직접 만나고도 인수 '실패'
HDC현산 vs 금호산업 인수 계약금 2500억 원 두고 법적 공방 예고

지난해 11월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 우선협의대상자로 결정되기에 앞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이 펼쳐지던 당시 정몽규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은 그룹 재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회사”라며 “기필코 인수해야한다”고 주문했던 바 있다. 특히 경쟁사가 제시한 금액과 최대 1조원 수준의 차이를 보이면서 일찌감치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의 운영권을 손에 쥐게 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업계에서는 안정적인 재무구조 속에 인수·합병 경험이 많은 미래에셋대우까지 동행하면서 일찌감치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으로 낙점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서 모빌리티 그룹으로의 도약을 꾀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기존에 이어온 건설업과 면세점, 호텔 사업 등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덧입히면 재계 서열도 33위에서 15계단 상승해 18위에 오를 수 있었다. 

HDC현산 내부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찬성하는 소리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반대의 목소리도 컸고, 업계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앞서 HDC 그룹이 면세사업에 뛰어들겠다고 결정했을 때도 한쪽에서는 반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정 회장은 과감한 추진력으로, 면세사업 경험이 많은 호텔신라와의 협력을 통해 시내면세점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렸다. 

모빌리티 그룹 도약도 항공사 운영도 ‘저 멀리’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 때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정 회장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언론들은 그의 승부사 기질이 시너지를 발산하면서 HDC가 모빌리티 종합그룹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HDC신라면세점과 더불어 국제선 여객 점유율 20%를 넘어서는 아시아나항공에 안정적인 자금이 투입되면 에어서울, 에어부산까지 이르러 기내면세점 사업이 확장되고 HDC그룹의 면세사업도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HDC의 해외물류 운송 분야도 가속화될 전망이었다. “기필코 인수”를 외친 정 회장의 의지대로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의 계획과 가능성은 원대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이후 코로나19가 국내를 비롯해 중국, 인도, 스페인, 미국 등 전 세계로 무섭게 확산되면서 물류와 여객을 포함한 항공 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98% 까지 국제선 수요가 하락했다. 24시간 불을 밝히던 인천공항은 말 그대로 암흑천지가 됐고, 롯데, 신라, 신세계 등 국내 대형 면세사업자들은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이미 그 규모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던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더욱 불어나기 시작했다. 유동성 위기가 도래하면서 산업은행으로부터 1조7000억 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HDC현산은 지난 6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계약 당시보다 4조5000억 원이 늘고 부채비율이 1만6000%를 넘어섰다”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재점검과 조건 재협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채권단의 1.7조 원 지원과 관련 차입 승인을 위해 아시아나항공에서 충분한 설명을 했고 이는 필수조치임에도 HDC현산이 반대해 동의 없이 진행했다”며 “특히 당시의 지원은 코로나19로 인한 계속기업 유지를 위한 대책이었는데 HDC현산은 인수 확정에 대한 의사표명도 없이 부채증가 우려만을 나타냈다”고 꼬집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만났는데 ‘계약 해지’ 통보

이 때부터 HDC현산은 산업은행과도, 매각 당사자인 금호산업과도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였다. HDC현산 측은 아시아나항공의 회계 관리에 대해 신뢰성을 의심하며 “재점검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기 시작했고, 산업은행은 “대면협상으로 나오라”며 맞대응에 나섰다. HDC현산이 요구하는 원점에서의 재점검은 막론하고 양측의 팽팽한 대립만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금호산업과 산업은행 측의 내용증명 등 최종 통보가 이어지자 HDC현산이 협상테이블에 나섰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 회장이 지난달 26일 직접 만났다. 양측의 갈등이 극적 타결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왔다.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이 정 회장에게 공동투자를 제시했다. 각각 1조5000억 원씩 총 3조 원을 투입하는 제안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의 품으로 오지 않았다. [이창환 기자]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의 품으로 오지 않았다. [이창환 기자]

HDC현산은 “협의 당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향후 논의할 수 있다며 산업은행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당사도 인수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며 “이후 지난 2일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논의사항’을 발송해 ’재무 및 경영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미래 존속가능성의 검토 이후 인수조건 논의가 필요할 것이므로 향후 진지한 논의를 기대한다’고 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11일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마지막 최고경영자 간 면담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아시아나항공 경영 리스크 분담 안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요구조건을 알려달라고 제안했으나 HDC현산이 이를 거절해 안타깝다”며 “현산 측은 재실사 후 거래 종결 논의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제안을 거절했다”고 최종 인수 무산을 선언했다.

아울러 “재실사 요구가 표면적인 이유지만 코로나19 리스크를 부담하기 어렵다는 게 근본적인 주 이유”라며 “금호산업과 HDC현산 모두 이번 딜브레이크를 상대방 귀책사유로 주장하므로 향후 계약금 반환소송 등이 진행될 것으로 보여 아시아나항공 재매각은 소송 등의 상황을 보고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규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한 모빌리티 종합그룹으로의 도약을 위한 의지와 10개월간의 꿈은 그렇게 끝이 났다. 향후 아시아나항공을 둘러싼 HDC현산과 금호산업 및 산업은행 등의 뜨거운 소송전이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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