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 공기업 대출규제 우회로 사내대출 활용? 부동산 규제 ‘구멍’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공기업 직원들은 사내 대출을 통해 주택구입자금을 빌릴 수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급등하면서 공기업 내부에서는 사내대출도 함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공기업 직원들이 받는 사내대출이 대출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일명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출 사각지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소식에 국민들도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공기업 직원들, 강남3구 등 집값 급등 지역 대출로 구입

국민들 “형평성 맞지 않아… 더 많은 혜택에 씁쓸함 느껴”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사내 대출 요건은 무주택자이면서 국민주택규모 85㎡(아파트 약 33평) 이하 충족 시 1억 원 내에서 직원 누구나 빌릴 수 있다. 지난 7월 한전 직원들은 한 달간 50건의 주택구입자금 사내 대출을 받았다. 이는 지난 6월 월평균 24.5건을 기록한 것에 2배가 넘는 대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한전뿐만 아니라 한국가스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 8개 에너지 공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빌려준 주택구매자금만 올해 들어서 360건이며 금액만 316억 원이다. 이는 3년 만에 대출액이 3배 가까이로 뛴 것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경우 적용 없이 최대 2억5000만 원까지 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은 직원들에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등을 대출규제 한도에 포함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규제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
2억5000만 원까지 대출

사내대출은 주택구입자금과 생활안정자금으로 나뉜다. 하지만 생활안정자금 역시 자금 사용처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주택구입 자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두 가지 자금을 한꺼번에 빌려주는 공기업 기관은 15곳으로 나타났다. 이 외 나머지 5곳만 중복 대출을 금지하거나 한 가지만 운영하고 있었다. 20개 기관 중 가장 많은 자금을 빌려주는 기관은 앞서 언급했던 HUG였다. 주택구입자금, 생활안정자금을 합해 2억5000만 원까지 빌릴 수 있다.

이처럼 공기업들의 사내대출에 LTV, DSR 등 대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기관 예산이나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재원(재화나 자금이 나올 원천)이기 때문이다. 주택구입자금 대출 시 근저당권을 설정하면 LTV 규제가 적용되지만, 이 같은 규정을 둔 기관은 한국주택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조폐공사, IBK기업은행 등 겨우 5곳뿐이다. 그러나 이 기관들에서도 생활안전자금은 보증보험서만 제출하면 대출이 가능했다.

사내대출 금리는 적게는 2%에서 많게는 6.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시중은행보다 비싼 이자를 내고 사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사실 없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동산 규제가 강화돼 대출 자체가 옥죄이고 있다. 특히 12·16 대책으로 인해 돈줄 자체가 막히면서, 공기업들이 대출 규제를 피할 수 있는 합법적인 우회로로 사내 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10억 이상 아파트 구입 시 금융기관에서는 빌릴 수 있는 대출금이 최대 3억6000만 원인데 반면, 공기업 사내 대출을 받으면 LTV 한도보다 많은 주택구입 자금을 빌릴 수 있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실제 올해 들어 세종이나 서울 강남3구 등 집값이 급등한 지역의 주택도 공기업 직원들이 대출로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 구입 시 대출 규제가 적용되지 않은 사내대출을 받는 것은 매우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대다수 공공기관 사내대출 규정이 사실상 느슨하다 보니 15억 원 초과 주택을 사내대출을 받아 구입하거나 신규 전세보증금 대출이 막힌 9억 원 초과 주택 보유자가 전세 보증금에 보태도 막을 수 없는 실정이다. 여기서 주택구입자금 대출이 가능한 공공기관 가운데 고가 주택(9억 원 초과) 구입을 막는 규정이 있는 기관은 신용보증기금과 HUG 단 두 곳뿐이었다.

예정처, 공기업 직원
대출금리 혜택 지적

이 같은 문제는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예정처는 공공기관 임직원이 시중금리보다 현저히 낮은 주택관련 대출금리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일반 국민의 경우 3%대 이상 이자를 납부하며 대출을 받는 반해 공기업 임직원들은 특혜를 입고 있다는 의견이다. 예정처가 지난해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92명의 임직원에게 0.5~1.5%의 금리로 주택 임차·구입 대출을 해 줬다. 총대출 규모만 80억86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 말 기준 시중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인 3.19% 대출평균금리 3.72%를 감안하면 최대 2.7~3.2%포인트 낮은 것이다. 특히 석유공사는 2018년 1조159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 이에 석유공사 측은 지난해 6월부터 내부 규정을 개정해 코픽스를 기준으로 금리를 조정한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한국남동발전은 2018년 44명의 임직원에게 주택 임차·구입 대출을 연 1.6%의 이율로 해줬다. 대출액만 73억6600만 원이다. 남동발전도 2018년 당기순이익 296억7200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1460억2400만 원(83%)이 급감했다. 이 외에도 한국관광공사는 87명에게 73억6600만 원을 1.6%(임차·구입) 금리로, HUG는 24명에게 31억3600만 원을 임차는 1%, 구입은 2% 금리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14명에 7억6500만 원을 2%(임차·구입)를 대출해 줬다. 특히 지방근무 직원 중에는 비연고자에게 무이자로 대출을 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은행은 81명에게 40억 원의 임차 기준으로 1.83%를 대출을 해 줬다.

공기업의 이 같은 규제 없는 대출에 국민들도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강동구에 거주 중인 A씨는 “일반 국민은 대출을 받아도 저금리로 받기 힘들고 대출이 나오는 것 자체가 힘든데 공기업 직원들은 규제가 없고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가 않다”고 말했다. 강서구에 거주하고 있는 B씨는 “좋은 직장에 좋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낀다”며 “일반 시민들도 규제를 제한해 주거나 아니면 공기업의 혜택을 줄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