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개발 30년 간 희망 고문 ‘체제보위론’은 “탁상공론(卓上空論)”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9·19 평양공동선언’이 2주년을 맞이했지만, 정작 ‘북한 비핵화’는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의) 시계가 멈췄다. 대내외적인 제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19일 SNS 발언을 통해 확인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군사 분야에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합의를 이뤘다(9.19 남북군사합의)”며 “남북 간 무력충돌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렇다면  북한 핵(核)은 우리에게 위협이 아닐까. 일요서울은 지난 6월 국가정보원에서 30년간 북한분석관을 역임한 곽길섭(60) 前 대북정보실장을 만난 이후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그의 분석을 알려왔다. ‘9.19 평양공동선언 2주년’을 맞은 19일, 그와의 통화에서 북핵(北核) 문제 해결을 위한 현답(賢答)을 찾아봤다.

- 국정원 前 북한분석관 “북핵(北核), 이제 체제보위용 아니다”
- “北 비핵화 사기극 주연, 김정은 아닌 한국 정부”
 

문재인 대통령과 北 김정은의 모습. 18일 오전 평양 시내에서의 퍼레이드 장면. 2018.09.18.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北 김정은의 모습. 18일 오전 평양 시내에서의 퍼레이드 장면. 2018.09.18. [뉴시스]


-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9·19 평양공동선언’이 2년을 맞이했나. 어떻게 보는가.
▲ 근원은 바로 북핵(北核) 문제다. 지금 북핵 문제는 오히려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2년 전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에서 北 김정은과 카퍼레이드를 하고 합의문을 채택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지난 16일 이날을 기념한다면서 판문점을 방문하고 남북 대화를 촉구했다. 그런데, 9.19 평양공동선언은 이미 휴지조각이 됐고 북한의 핵 능력은 더욱 고도화됐다. 이제 미북대화는 장기 협상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북한 비핵화가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핵 군축협상 개념으로 전환 중이다. 이제 우리는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북한 핵 문제는 30년 동안 거론돼 왔다. 그런데, 현 정부의 책임이라고만 볼 수 있나?
▲ 역대정부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현재 문재인 정부 또한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해도 아무 대응도 없다. 어쩌다 거론하는 ‘개별관광’이나 ‘물물교환 수준의 교류’ 등 행사나 회담에만 집착하는 모양새다. 특히 6.15 20주년 다음날인 지난 6월16일, 북한은 개성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서 “핵을 자손만대에 물려줄 것”이라고 천명했는데 그대로 넘어갔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강화에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을 상대로 또다시 ‘희망고문’ 하는 셈이다.
 

북한의 김정은. [뉴시스]
북한의 김정은. [뉴시스]


-그렇다면 북한 핵의 ‘용도’는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대외 공격용’이 아니라 ‘체제보위’ 용도라는데?
▲ 일명 ‘우문(愚問)’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내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해 상당수가 북한 핵을 자위용, 내부용으로 믿었거나 믿고 싶어 했다. 문제는 그런 인식이 현재 북한 상황과 함께 맞물리지 않고 15년 전 인식 그대로라는 점이다. 핵무기 숫자가 ‘제로(Zero)’로 나타났던 지난 15년 전과 최대 100여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지금의 북한에 대해 똑같은 논쟁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핵과 ICBM을 보유한 북한이 언제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데,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겠느냐”면서 자위적 성격을 강조한다. 용도와 목적을 하나로 국한시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북핵의 용도가 ‘체제보위’ 목적이 아니라는 뜻으로 보이는데, 그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가?
▲ 북한이 미국의 군사 공격에 대한 맞대응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한다는 전제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이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선제 타격을 받으면 과연 즉각 보복 공격을 할 수 있을까. 만약 北 김정은이 미국을 상대로 즉각 보복 공격을 감행할 시 전면전이 된다. 북한 전역이 초토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北 김정은 입장에서는 전부를 잃지 않으려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앞서 그는 집권한 이후 두 번이나 그런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15년 8월, DMZ 목함지뢰 도발 시 준전시상태까지 선포하며 밀어붙였다가 우리에게 굴욕적인 합의를 제의한 바 있지 않았나. 그리고 지난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당시 대남 강경도발 국면에서 갑자기 ‘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라는 듣도 보도 못한 회의를 열어 중지시키지 않았나. 이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北 김정은은 가진 게 많아 한번에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을 가능성’에 있다. 결국 ‘자위용은 맞대응’이라는 등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진희 기자 =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2018.09.19. /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제10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소장과 북측 수석대표인 북한군 중장 안익산이 자리했는데, 당시 국방부 대북정책관(이성 장군, 소장)이었던 김도균 소장은 이후 수도방위사령관(삼성 장군, 중장)으로 영전했다. 2018.10.26. [뉴시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진희 기자 =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2018.09.19.  [뉴시스]

 

-북한 핵이 자위용(체제 보위용) 무기가 아니라면, 어떤 용도라고 봐야 하는가?
▲ 바로 ‘상대가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는 수단’이라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핵 균형’ 중에서도 ‘피동성’이 담긴, 다소 의미가 축소된 전략 무기라고 보는 게 맞지 않겠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더욱이 우리는 핵무기가 없기 때문에, 북핵은 대남용으로 엄청난 위력을 가진 공세적 전략 무기다. 북핵 사태 초기에는 자위용이었을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역량이 강화되면서 그 용도가 확장 변화 중이라고 보는 게 순리 아닐까 한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북핵의 용도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다고 봐야하는가.
▲ 문제는 北 김정은이 핵을 미사일과 결합해 ‘정권 안정용’을 넘어 ‘대남-대미 위협용’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최악의 수는 ‘SLBM 혹은 ICBM’을 시험 발사한 후 실전배치 완료를 선언하는 것이다. 

-북핵의 개발 단계와 실전 배치하는 단계의 차이에서 벌이질 수 있는 상황이 많이 다른가?
▲ 그렇다. 2년 전 ‘9·19 평양공동선언’은 북핵을 대상으로 했다. 그런데, 앞으로 비핵화 협상은 한반도 비핵화, 즉 주한미군 철수를 통한 핵우산 철거까지 포함하는 최악의 수로 바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北 김정은은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의 목을 잘라 전시했다는데, 주한미군이라는 대북 인계철선이 사라질 경우 그런 끔찍한 일을 우리가 겪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나...
 

북한 조선중앙TV는 24일 대규모 '반미대결 전 총궐기 군중집회'가 평양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미국에 대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열린 것으로 풀이된다. 2017.09.24. (사진=조선중앙TV) [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는 24일 대규모 '반미대결 전 총궐기 군중집회'가 평양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미국에 대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열린 것으로 풀이된다. 2017.09.24. (사진=조선중앙TV) [뉴시스]

 

-곽 실장이 말한 ‘SLBM 혹은 ICBM 시험 발사 후 실전 배치’ 시 어떤 일이 벌어지나?
▲ SLBM 혹은 ICBM 도발 성공 시 주도권이 북한으로 넘어간다. 협상 대상은 ‘북한 비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문제’로 전환된다. 그럴 경우, 우리는 모두 북한에 의한 핵 인질이 된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비핵화 사기극’을 친 게 아니라, ‘핵을 보유하려는’ 차원에서 ‘복합적 전략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北 김정은은 단 한 번도 북한 핵을 포기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그는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한 게 전부다.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를 언급했다. ‘한반도 비핵화’란, 핵 능력을 가진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뜻한다. 즉, 한미동맹이 깨지고 난 후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인데, 그것도 “비핵화를 한다”가 아니라 “전제가 충족되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18년 3월, 방북한 우리 정부 특사단이 김정은의 말을 자의적으로 왜곡 및 과장해서 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도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근원적 이유 중 하나다. 결국 핵을 자위용으로 판단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순진하게 믿은 현 정부는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다소 절망적으로 들리는데,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우리 정부도 변해야 한다. 세상이 다 변하는데 처음 생각과 목표를 고집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정부는 김정은의 선의(?)에 기대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소망이나 상대방의 뜻에 기댄 평화는 가짜다. 대북정책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곧 있을지도 모를 북한의 전략도발 저지에 만전을 기하면서 ‘비핵화의 개념과 대상에 대한 명확한 합의’부터 최우선적으로 도출해야 한다. 이제 북한 핵은 자위용의 단계를 넘었다. 현재 북핵 문제를 다룰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로 접어들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의 임기말 정상 회담이나 ‘Again 2018(9·19 평양공동선언)’ 같은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모래 위에 집을 지어선 안 된다. 급할수록 원칙과 정도에 충실해야 한다. 북한과의 교류협력도 중요하지만 지금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 핵문제가 우선이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어야 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격 개시 명령에 "하늘땅을 뒤흔드는 요란한 폭음 속에 섬멸의 방사탄들이 목표를 향해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고 밝혔다. 2020.03.03. (사진=노동신문 캡처) [뉴시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격 개시 명령에 "하늘땅을 뒤흔드는 요란한 폭음 속에 섬멸의 방사탄들이 목표를 향해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고 밝혔다. 2020.03.03. (사진=노동신문 캡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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