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고 이명희 명창
고 이명희 명창

 

[일요서울] 안녕하십니까?

필자는 우리나라 전통음악 장르인 가야금병창을 연주하는 국악인 입니다.

저는 경상북도 예천 금당실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적 향수에 젖으며 지내던 중 얼마전 'TJB 화첩기행' 이라는 방송 촬영차 안동에 갔다가 근처 고향 할머니댁에 방문했었답니다.

오랜만에 할머니 품에 안겨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바로 옆 마을, 제가 나고 자란 용문면 금당실 마을에 잠시 다녀 왔습니다.

제가 태어났던 금당실은 세종때 4대 명당으로 손꼽힐 정도로 터가 매우 좋다고 합니다. 그 덕분인지 제 40회 전주대사습놀이 가야금병창부문 장원 수상과 제 29회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니 정말 금당실 제 태자리가 명당이긴 한가 봅니다.

국악의 불모지인 경상도 예천에서 태어나 9살때 대전으로 이사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라도 광주로 대학교를 갔습니다. 그리고 전남 진도에서 국악원을 다니며 연주단원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대전으로 가서 연주자로 국악 강사로서 방송리포터 활동 등을 하다가 경기도 용인에서 대학원을 다니기도 했답니다. 현재 출가하여 서울에 둥지를 터 살고 있으니 전국 팔도가 다 필자의 고향 같습니다.

그럼 강원도와 제주도는 혹 연관이 없냐구요?

물론 있죠!

저희 아버지는 강원도 평창 출신이시고 제 본관은 강원도 정선이랍니다. 그리고 제주도는 제가 사랑하는 섬이라 자주 여행이나 공연으로 가곤 합니다.

이처럼 전국을 제 집 드나들 듯 오가며 살아온 저로써는 영호남을 나누지 않고 좌익우익을 나누길 거부하며 흑백논리에 얽히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의 음악가 입니다.

얼마전 SNS에 이슈가 된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 이명희 명창의 이름을 지울 수 없다..' 라는 대구시 남구청의 신청서류 명칭이 헤드라인이 연일 이슈가 되어 국악을 하는 저로써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옛 속담이 생각나 제 생각을 커뮤니티에 적어 올린 바 있습니다.

그날 이후, 예술가의 호와 이름이 후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짧은 식견이지만 국악계의 좋은 예가 있어 잠시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먼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음률가인 박연선생과 영동지역의 인연을 첫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박연 선생은 충북 영동 출신으로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한국 3대 악성으로 추앙되고 있는 인물입니다.

세종 당시 불완전한 악기 조율의 정리와 악보편찬의 필요성을 상소해 자작한 12율관에 의거 음률의 정확성을 기하였으며 궁중음악을 전반적으로 개혁하고 정통적인 아악을 정리하여 확립하였습니다.

후세에 고향인 영동 지역에서는 그의 업적과 그 뜻을 드높이기 위하여 '난계'라는 호를 따서 <난계예술회관>, <난계국악당>과 <난계국악기제작촌> 등을 건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 19세기 조선후기 전북 고창지역에서 활동했던 '광대가'의 창시자 동리 신재효 선생의 예를 들어 볼까 합니다.

신재효선생은 소리 사설을 정리한 이론가이자 비평가이면서 판소리 여섯 바탕 사설을 집성한 인물입니다. 그 외에 판소리 창자들의 교육 및 예술 활동을 지원한 후원자이기도 했는데요, 남자들만 판소리를 하던 당시 진채선을 비롯한 여성소리꾼을 최초로 교육하고 양성함으로써 오늘날 여성소리꾼이 사회의 제약없이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초를 마련해 준 고귀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전북 고창 지역에서는 동리 신재효 선생의 판소리 사설, 이론, 비평 등과 관련한 고귀한 업적을 기리고 진정한 소리꾼 광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예술 교육과 활동을 장려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동리' 라는 호를 따서 <동리국악당>을 만들어 다채로운 국악공연과 예술교육 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근현대에 와서는 두 예인의 예를 들어보면 먼저 가야금병창의 어머니라 불리우며 국악교육의 선구자로 생전 중요(국가)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 보유자였던 박귀희 명창의 고향인 칠곡에서 그녀의 가야금병창 사랑 정신과 예술혼을 기리고자 생가터에 그녀의 호인 '향사'라는 명칭을 따 <칠곡 향사아트센터> 공연장 및 전시 교육관을 짓고 <향사가야금병창 전국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다양한 기획 · 초청 공연 및 교육사업 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희귀 국악자료 및 국악기 2만여점을 전국을 누비며 수집하고 소장해 온 연정 임윤수선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임윤수 선생은 경북 영천 출신이지만 대전과의 인연으로 살점 같던 그의 국악 애장품들을 1981년 대전시에 기부하여 그의 호를 딴 <대전시립연정국악연구원>이 창립되었고, 오늘날 <대전시립연정국악원>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으며, 1997년 공주시에서도 임윤수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공주시 충남연정국악원>을 건립하여 그 의미를 더하였습니다.

한때,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은 일부 공무 제안자들에 의하여 시립국악원의 명칭에서 '연정' 을 지우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었는데 대전지역 국악인들이 들고 일어서 서명운동 등의 투쟁을 하여 이름을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 자연음향을 살린 크고 작은 국악전용 공연장과 국악기 및 자료 전시실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립국악단 단원 양성은 물론 대전 · 충남지역의 많은 국악인들의 연주활동과 일반 국악애호가들의 국악 교육 및 보급 지원에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 전후기와 근현대의 국악 위인들의 업적을 후대에 기리 남기고 선조 음악가들의 이름이 널리 빛날 수 있도록 지역의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전승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 준 아름다운 사례들이 있어 공유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국가 혹은 지방의 우수한 무형문화재 분들을 비롯 전국의 수 많은 예술인들과 전공생들을 위한 행정 및 지원에 국가 및 도시군구 지자체 문화예술 관련 부처에서는 진심어린 관심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시길 바라며,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하여 더이상 예술활동을 못 하게 된 명인명창들이라 할지라도 역사 속 뒤안길로 뭍히지 않고, 그 혼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COVID-19로 인해 전세계가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 많은 곳에서 우리 국악인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종식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각자 자리에서 우리 전통음악의 보급 및 전승 발전을 위한 노력을 언택트 상황에서 온라인을 통한 온택트 활동 등으로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공연 및 교육활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전국의 국악인들과 학교, 학원, 개인 교습 등을 통해 국악을 공부하는 전공생들 모두 많은 제약 속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비대면 공연 및 수업을 열심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필자는 거듭 문화체육관광부 혹은 산하 관련부처 그리고 전국의 도시군구 지자체 문화예술 관련 부서에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음악을 배운 것이 헛되지 않도록 예술가들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시길 바라며 그 이름을 후대에 널리 알리고 변함없이 지켜 낼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문화예술계의 적재적소에 아름다운 해피바이러스를 퍼트려 주시길 간곡히 청하는 바입니다.

전해옥

국가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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