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화교회 살인자

도널드 파언은 낙심했다. 그는 계속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헛바퀴가 돌면서 진흙탕은 점점 깊게 파였다. 그때 천만다행으로 인근에 있는 농부가 차를 끌고 왔다. 도널드 파언은 농부의 도움으로 진흙탕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갔다.

마침내 엘리스 포터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경찰과 주민들이 대대적으로 수색을 한 결과였다. 도널드 파언은 주민들과 함께 자신이 죽인 엘리스 포터의 시체를 찾는 일에 참여했다.

우물에서 건져 올린 엘리스 포터의 시체는 토막이 나 있었다. 전신에는 채찍질을 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인근에 있는 사람을 모두 조사했는데 도널드 파언의 알리바이가 불분명했다. 그때 도널드 파언의 차를 진흙탕 속에서 꺼내준 농부가 도널드 파언이 교회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도널드 파언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면서 차와 집을 수색했다. 그 결과 도널드 파언의 차에서 피 묻은 채찍과 엘리스 포터의 혈흔이 묻어있는 주방용 칼이 발견되었다. 도널드 파언은 그때서야 자신이 엘리스 포터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도널드 파언은 사형이 선고되어 가스실에서 처형되었다.

도널드 파언은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평생을 콜로라도주의 푸에볼로로에서 지냈고 엘리스 포터라는 17세의 소녀를 교회에서 처참하게 살해했다.

그는 왜 하필이면 교회에서 엘리스 포터를 살해했는가. 그의 살인은 왜 거룩하고 성스러운 교회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이 사건은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교회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미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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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화화성 연쇄살인사건

경기도에서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0건이나 되는데도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어서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사건은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크게 화제를 불러 일으킨바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들이 모두 여성들이고 성폭행을 당한 뒤에 잔인하게 살해되어 한동안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한 건국 이래 최대의 미스터리. 화성은 밤이 되면 유령의 거리…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은 조심하라는 유행어까지 남길 정도로 화제가 되었으나 범인은 끝내 검거되지 않고 어느덧 무심한 세월 속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대략을 살펴본다.

1차사건 : 1986년 9월19일 오후 2시 발견, 이순분(가명 71세·태안읍 안녕리)이 마을 앞 목초 밭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됨. 하의가 벗겨져 있었으나 별다른 폭행 흔적은 없음. 일주일 전 쯤 살해된 것으로 추정.

2차사건 : 1986년 10월23일 오후 2시50분 발견, 박순애(가명 25세·직장인. 송탄시 신장동)가 진안리 농수로에서 알몸의 시체로 발견됨.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살해되고 강간 흔적 있음. 등과 하체에 심한 상처. 양손이 뒤로 묶여 있음.

3차사건 : 1986년 12월21일 낮 12시30분 발견. 이정애(가명 23세·정남면 관항리)가 약혼자를 만나고 귀가하다가 살해된 뒤에 관항천에서 시체로 발견됨. 옷이 입혀져 있고 하체에 심한 상처. 강간 흔적 있음. 시체는 일주일 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됨.

4차사건 : 1987년 1월11일 오전 10시30분·홍미경(가명 18세·고등학생. 태안읍 황계리)양이 병점읍 외곽을 흐르는 황구천 둑에서 피해자의 목도리로 목이 졸린 시체로 발견됨. 양손은 스타킹과 브래지어로 뒤에서 묶여 있고 입에 재갈이 물려 있음. 피해자 국부에서 B형 혈액형 검출. 1월10일 밤 8시30분쯤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됨.

5차사건 : 1987년 4월23일 오후 2시 발견, 권숙경(가명 26세·직장인. 태안읍 안녕리)이 공장 옆의 울타리 넝쿨 밑에서 시체로 발견됨. 양손이 묶인 채 하의가 벗겨져 있음. 시체가 부패되어 몇 달 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됨. 현장에 도장이 떨어져 있고 피해자의 옷으로 겨우 신원을 확인함.

6차사건 : 1987년 5월9일 오후 3시 발견. 박혜정(가명 29세·주부. 병점읍 진안리)이 진안리 야산에서 하교하는 초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시체로 발견됨. 시체는 브래지어, 내의 블라우스로 각각 세 차례 목이 졸리고. 목 어깨 등에 돌로 찍은 듯한 상처. 팬티, 청바지는 입은 채로 살해되어 있고 폭행 흔적 없음.

7차사건 : 1988년 9월8일 오전 9시 발견. 안영자(가명 54세·주부. 팔탄면 가재리)가 블라우스로 목이 졸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됨. 입에 재갈. 양손 뒤로 묶여 있고 강간 흔적. 먹던 복숭아가 국부 안에서 발견됨.

8차사건 : 1988년 9월16일 오전 6시30분 발견. 박지영(가명 14세·중학생. 태안읍 진안리)이 집에서 잠자다가 목이 졸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됨. 폭행 흔적. 남자의 체모 발견. 감정 결과 B형 혈액형 발견. 체모에서 티타늄원소가 분석됨.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여섯 번째인 박혜정씨의 사체가 발견될 때까지 일반적인 개별 살인사건으로 여겨져 그다지 국민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관할 경찰서인 화성경찰서가 병점지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자체 수사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딸이 셋 있는 주부 박혜정씨 사건이 발생하면서 매스컴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80년대 중반에서 말경의 화성은 수원과 오산 사이에 있는 평범한 농촌으로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이 들어서기 전에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그러나 공단이 생기면서 갑자기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 필연적으로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게다가 경기도 남부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수원과 인접해 있어서 당시에 1년 평균 강간 사건이 40여건이나 발생하는 등 문제가 많은 지역이었다.

매스컴에서 두 번째 연쇄살인사건으로 꼽히고 있는 박순애 살인사건은 그녀의 사체가 농수로에서 알몸으로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그 동안의 단순 강간살인에서 범인의 범행이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희롱할 정도로 점점 대범하게 발전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경찰은 박순애 살인사건 현장에서 범행의 단서가 될 만한 유류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필자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설로 쓰기 위해 화성을 3개월 정도 걸려서 취재했다.

살인사건 현장을 직접 답사했고 수사본부에도 찾아가 보고 피해자 가족들도 만나보았다.

나중의 일이기는 하지만 감식전문가 이삼재씨, 8번째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최상규 박사도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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