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대기업 총수 일가는 추석을 어떻게 보낼까. 지난해에는 '민족 대명절' '더도 덜고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등의 표현처럼 들뜬 분위기였다면 이번 추석은 차분하게 보낼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은 데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가 휘청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재계 총수들은 임직원들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위기 극복을 위해 함께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 맘 편히 못 쉬는 재계 총수들 '대내외 악재' 산적… 대부분 자택 체류
-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현장 찾기 쉽지 않아...추석은 가족과 함께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웅렬 전 코오롱 회장...재판 대책 마련
-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계열사별 현안 고심

대부분의 총수들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집콕'하며서 코로나19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명절마다 해외 현장을 찾아 현지 직원을 독려하거나 하반기 경영을 구상하던 총수들의 모습을 올 해는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일 관계 경색 등 경영 환경이 급변한 데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방문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SK, LG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은 추석 연휴 기간 특별한 공식 일정이 없는 가운데 자택에서 경영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을 앞둔 오너들

명절 연휴 때마다 가장 활발한 해외 현장경영 행보에 나섰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 추석엔 국내에 머무를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함에 따라 향후 재판에 대한 대응전략 등도 연휴 기간에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에 대한 이번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에서 맡는다. 

오는 10월 14일 2차 공판준비기일을 준비하는 이웅렬 코오롱 전 회장도 이번 추석만큼은 조용히 지내면서 재판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회장은 인보사케이주(인보사) 성분 변경 사태에 연루 돼 형사재판을 받게 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해외 현장 방문이 어려워진만큼 올해 추석에는 국내에 머물며 사업 챙기기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이번 연휴 기간 국내에서 보낼 전망이다. 최 회장은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SK하이닉스의 소재 수급 문제부터 LG와의 배터리 분쟁 등 계열사별 현안과 산적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 모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2일 최 회장은 이메일을 통해 추석을 앞 둔 임직원들에게 '생각의 힘'으로 '코로나19' 경영 환경을 극복해 나가자고 독려했다. 또 사회적 책임 이상의 공감과 감수성을 더하는 것이 기업의 새로운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바뀐 환경을 딥체인지를 위한 새로운 기회로 삼아 발상을 전환하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코로나19에서 비롯된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환경 변화와 새로운 생태계의 등장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이 낯설고 거친 환경을 위기라고 단정짓거나 굴복하지 말고 우리의 이정표였던 딥체인지에 적합한 상대로 생각하고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타운홀 미팅 방식의 '행복토크'를 100회 완주하는 등 대면방식으로 경영철학을 공유해 왔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바뀐 환경을 감안해 이메일이나 사내 인트라넷을 활용하고 있다.

이날 최 회장은 기업 경영의 새로운 원칙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축으로 하는 파이낸셜 스토리 경영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방법론을 구상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또 추석인사로 이메일을 마무리하면서 "ESG에 대한 영감을 얻길 바란다"며 추석연휴 중 볼만한 다큐멘터리로 '플라스틱 바다(A plastic ocean)'를 추천했다. 지난 2016년 제작된 플라스틱 바다는 인류가 쉽게 소비하는 플라스틱이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담았다.

최 회장은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같은 숫자로만 우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며 "사회적 가치에 연계된 실적, 주가,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역설했다.

취임 이후 줄곧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고 있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추석 연휴를 집에서 가족과 함께 조용히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취임후 1년여간 그룹의 사업구조 개편에 많은 공을 들여온 만큼, 이번 연휴가 끝난 후 어떤 개편과 사업 비전을 내놓을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평소 미래 먹거리 확보와 신성장동력을 강조해온 만큼, 연휴 기간에 이와 관련된 구상도 다듬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 회장도 지난 22일 추석을 앞두고 열린 비대면 화상회의로 진행된 사장단 워크샵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발 빠른 대응을 해달라고 임직원들을 향해 주문했다. 또 올해는 '코로나19' 장기화와 글로벌 경기침체, 미·중 무역분쟁 격화에 따른 경영 환경 악화로 국내외 기업들이 위기에 몰린 만큼 선제적 대응에 적극 나서달라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앞으로의 경영환경은 더 심각해지고 어려움은 상당기간 지속될 걸로 보인다"며 "어려움 속에도 반드시 기회가 있는 만큼 발 빠르게 대응해 가자"고 말했다.

지난 5월 귀국해 3개월가량 한국 롯데 사업을 챙겼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일본으로 출국해 한 달째 머물고 있다. 신 회장은 한일 양국에서 한 달씩 체류하며 셔틀 경영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올해 들어 코로나19로 입출국이 까다로워지면서 이번 추석 연휴는 일본에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경영서적 읽으며 하반기 경영구상 나서기도

SNS활용으로 친숙함을 이어가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올 추석에 무엇을 할 지 알려 화제가 됐다.

지난 7일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 "추석 연휴 때 읽을 도서 구입"이라는 글과 함께 전(前)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인 권오현 삼성전자 상근고문의 ‘초격차: 리더의 질문’, 글로벌 사모펀드 블랙스톤 창업자 겸 CEO인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의 ‘투자의 모험’, 그리고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가 쓴 ‘빅체인지, 코로나19 미래 시나리오’ 등 총 3권의 표지를 첨부했다.

세 권 모두 경영 관련 서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묘안을 찾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올 추석에는 대부분의 그룹 총수들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경영구상에 몰두하며 보낼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에 이어 미·중 무역 분쟁이 계속되고 있고, 한일관계 경색이 여전한 한편 코로나 장기화로 경영 환경이 위기를 맞고 있고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의 현장을 찾는 것도 어렵다"고 밝혔다. 대부분 ‘집콕’하면서 하반기 경영구상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 셈이다.

 

[박스] 삼성·롯데·신세계·CJ 등 '협력사 지원 행렬'

추석을 맞아 재계가 협력사에 대금을 조기 지급하며 상생경영을 실천하고 나섰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 SK, 롯데, 현대중공업, 신세계 등 주요 대기업 그룹들이 추석 전 협력사 대금의 조기 지급을 결정했다. 삼성은 지난 9일 협력사와 지역 내수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대표 김기남·김현석·고동진), 삼성디스플레이(대표 이동훈), 삼성전기(대표 경계현), 삼성SDI(대표 전영현), 삼성SDS(대표 홍원표), 삼성바이오로직스(대표 김태한), 삼성물산(대표 이영호·고정석·정금용), 삼성엔지니어링(대표 최성안), 제일기획(대표 유정근), 삼성웰스토리(대표 정금용) 등 10개 계열사가 당초 지급일에 비해 6~7일씩 앞당겨 협력사에 대금을 조기 지급하기로 했다.

SK는 SK하이닉스(대표 이석희)가 지난 11일 추석을 앞두고 협력사 대금 1500억 원을 조기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5일 현대중공업(대표 한영석)과 현대미포조선(대표 신현대), 현대삼호중공업(대표 김형관)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3사가 협력사 1680여곳에 자재대금 1100억 원을 추석 전에 조기 지급키로 했다.

롯데는 지난 8일 협력사들의 자금 운용에 도움을 주고자 6000억 원을 조기 지급키로 했다. 롯데백화점(대표 황범석), 롯데e커머스(대표 조영제), 롯데정보통신(대표 마용득), 롯데건설(대표 하석주) 등 35개 계열사가 1만3000개 파트너사에 대금을 조기 지급한다.

신세계그룹은 신세계백화점(대표 차정호)과 이마트(대표 강희석) 협력업체 2000여곳에 1920억 원의 대금을 추석 전에 지급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14일 현대백화점(대표 김형종), 현대홈쇼핑(대표 강찬석) 등 6개 계열사의 중소 협력업체 1만800여곳에 5225억 원을 5~20일가량 앞당겨 지급한다고 밝혔다.

CJ는 통상 추석 2주 전에 협력사 대금 조기지급을 결정해 왔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빠르게 3주 전인 지난 7일 일찌감치 지원계획을 알렸다.

CJ제일제당(대표 강신호), CJ대한통운(대표 박근희), CJ ENM 오쇼핑 부문, CJ프레시웨이(대표 문종석), CJ올리브네트웍스(대표 차인혁) 등 6개 주요 계열사가 협력업체 약 7400여곳에 평상시보다 한 달 앞당겨 총 3700억 원의 결제 대금을 지급한다.

BGF리테일(대표 이건준)도 9일 협력사에 1000억 원 규모의 이달 대금을 조기에 정산하기로 했다.

포스코(대표 최정우)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포항과 광양에서 121억 원어치 상품권을 구매했다. 상품권은 임직원 8600여명에게 1인당 50만 원씩 지급한다. 협력사 임직원들에게도 43억 원 규모 상품권을 준다. 포스코 관계자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경영방침에 따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14일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으로 맞는 명절을 앞두고 방역 당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한편, 협력사와 농촌과의 동행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상생 활동을 요청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