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대공수사권 전면 개정안, 국가안보 보다 文에 대한 충성 아닌가”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일요서울은 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모처에서 26년간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한 유성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직접 만나 저녁까지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과거 국정원 재직 시절 유 前 원장은 남북회담 실무요원으로 북한 핵 협상을 수차례 이끌어 왔던 인물로,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으로 대공(對共)전선에서 밤낮없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특집을 맞이해 이번 호에서는 최근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대공수사권(對共搜査權) 문제’와 ‘2007년 북핵 협상 後談’, ‘對北 심리전 후폭풍’ 등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20여 쪽에 달하는 그와의 인터뷰 전문(全文)은 일요서울 홈페이지(관련 기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원리는 ‘견제·균형’···지금 군사정권 시절보다 혹독한 것 같다”
 

일요서울은 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모처에서 26년간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한 유성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직접 만나 저녁까지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2020.09.22 [조주형 기자]
일요서울은 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모처에서 26년간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한 유성옥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직접 만나 저녁까지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2020.09.22 [조주형 기자]


-최근 9.19 합의 2주년을 맞이했지만 한반도 사정은 매우 위태롭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공수사권(對共搜査權)을 경찰로 넘기겠다는 법안을 내놨는데, 어떻게 보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김병기 의원의 후견인으로 있다 보니 안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겠다는 법안 이름이 벌써 국가정보원법 전면 개정안인데, 개혁보다 문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위한 일종의 ‘충성심’을 보이려는 측면이 강하다는 느낌이다. 지난 60년간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북한과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안보활동이란 본질보다 정치적 후견인의 공약이라 안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사정도 짐작이 된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제아무리 대통령 공약 사항이라고는 하지만 그걸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보는가?
▲북한은 그들이 추구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전 한반도 공산화)로 가기 위한 통일전선 책략 차원에서 우리 공안기관의 무력화를 꾀한다. 당연히 지금까지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토대인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무력화 할 것이다. 여당은 그걸 ‘국정원 개혁’이라고 내세운다. 문 대통령의 공약을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보이는 게 많다.

-이걸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인가? 실제 사례가 있었는가?
▲어떤 조직이든지 가능하다. 설사 그게 대통령 지시라도 안 된다고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대통령을 상대로 안 된다고 공무원이 반대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특히 국가안보 관련 사항에서 말이다. 지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준비 당시에 10.4 합의서 초안을 제가 만들었다. 당시 지휘부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는데, NLL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못함과 동시에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일부러 관련 조항을 합의문 초안에 명시했다. 정상회담 준비 중 잠도 거의 잘 수 없었다. 하지만 옷 벗을 각오로 일해 소신을 관철시켰다. 바로 합의문 초안에 비핵화 조항이 들어가자 정상회담 사전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매우 강하게 반발했다. 끝까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자세한 말씀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항이라 언급하기 어렵다. 부디 양해해 달라. 국정원 재직 26년간 “요원은 자랑도,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는 모토로 일했다. 퇴직 후에도 지켜가고자 한다. 역사 의식이랄까, 사명감·애국심, 이런 마음으로 대통령 지시라고 해도 거부했다. 비록 당시 일개 3급 처장 신분이었지만 역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정의롭게 일하려고 했다. 이런 기개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마음을 먹겠는가. 세월이 흐른 후에 언젠가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관장 최재희)은 오는 12일부터 대통령기록관 기획전시실에서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역대 남북정상회담 기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주요 문서, 사진, 동영상, 행정박물 150여 점을 선별하여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2007.10.4.) 모습. 2018.12.11. (사진=대통령기록관 제공)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관장 최재희)은 오는 12일부터 대통령기록관 기획전시실에서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평화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역대 남북정상회담 기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주요 문서, 사진, 동영상, 행정박물 150여 점을 선별하여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2007.10.4.) 모습. 2018.12.11. (사진=대통령기록관 제공)

 

-‘관료는 영혼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열정을 바친 이유가 특별히 있는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직에서 일하더라도 깨끗한 영혼이 충만해야 한다. 그 영혼은 애국심과 정의감, 역사 의식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개인의 출세나 명예를 위한 것이라면 ‘더러운 영혼’으로 전락한 셈이다. 공직자의 진정한 자세는 퇴직을 하고, 역사가 흐른 후에도 떳떳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정치관여’라는 명분으로 이번 정부에서 고초를 겪었는데, 어떻게 봐야하는가?
▲ 제가 그런 일을 겪었다. 법원에서는 검찰 기소 내용에 따라 판결했다. 2008년에 있었던 광우병 사태 기억나는가? ‘미국산 수입 소고기 먹으면 죽는다’는 괴담이 우리 사회를 흔들었다. 그게 다음 포털 아고라에 등장했다. 북한이 우리 사회에 그 같은 유언비어를 조작·살포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남 심리전 목적의 ‘흑색선전 공작’의 사례다. 이를 지휘하는 부서는 北 통일전선부이다. 1000여 명이 넘는 北 사이버 대남공작 요원들이 활동 중인데, 안보전선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뀐 것 아닌가. 빨리 대응해야 하는데, 국가안보를 최전선에서 지킨다는 국정원이 그걸 넋 놓고 앉아서 구경할 수는 없지 않는가? 북한이 우리 체제를 흔들기 위한 대대적인 심리전 공작에 대응하는 방어차원의 대북 심리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그게 문제가 됐던 것인가?
▲국정원은 정보기관 특성상 세계 여타 정보기관처럼 ‘비노출 간접 활동’ 방식을 통해 외부 활동을 수행한다. ‘비노출 간접 활동’은 국정원 교본에도 나와 있듯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핵심 활동 ‘원칙’이다. 그런데 북한의 선전 선동을 막기 위한 대북 방어 심리전 활동에 친북(親北) 인사들의 협조를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반(反) 북한 인사들이 수행하게 된 것이다. 즉 보수 성향의 일반인들이 협조자로서 北 인해전술 식 댓글 공작을 무력화하기 위한 대응 심리전 활동을 수행한 것이다. 이들이 1년 10개월 동안 총 5천만 건의 댓글 활동을 했다는데, 그중 검찰이 ‘정치관여’ 댓글로 특정해 제시한 것은 2200건이다. 전체의 0.0045% 수준이다. 그마저도 절반은 국정 홍보와 PI(President Identity, 대통령 이미지 제고)였다. 심지어 그건 노무현 대통령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하던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국정원 심리전단이 대통령 자서전을 제작·배포했다. 당시 심리전단 업무내규에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검찰은 이걸 대통령에 대한 지지라며 ‘정치관여’라고 갖다 붙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했다고 하니까 ‘물타기 하지 말라’면서 ‘옛날 일은 말하지 말고, MB(이명박 대통령)때부터 말해보자’라고 한다. 검찰은 대통령도 정치인이므로 이미지 제고·홍보 또한 정치관여라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정치관여’로 판결했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국정원 페이스북]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국정원 페이스북]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인데, 그마저도 ‘정치관여’라고 한다면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는...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하라고 한 데다 대선 공약이니 그와 같은 해석대로 본다면 대통령과 관련된 국정원의 어떠한 일도 ‘정치관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에 대한 수사 촉구나 개혁 의지 피력 모두 ‘정치관여’가 되는 셈이다. 그만큼 ‘애매모호’한 사항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김병기 민주당 의원 발의안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의 ‘정치관여’ 시 국정원 직원에 대해 공소시효(현재 10년)를 5년 추가하자고 한다. 어떤 직원도 퇴직 이후 까지도 투옥될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보다 더 혹독하다고 본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상대방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생’하는 거 아닌가. 근데 지금 그게 아닌 것 같다.

-지금 국내 사정은 어떤 상태라고 보는가? 거의 매일 이상한 일들이 나오는데...
▲ 매우 우려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견제와 균형인데, 도리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정권은 어떠한 실효적인 견제도 없이 치닫고 있다. 과연 우리 내부적으로 민주주의를 회복시킬 수 있는 동력을 키워낼 수 있을지···
 

국가정보원 페이스북 캡처.
국가정보원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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