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 본청 간판이 '질병관리청'으로 새롭게 교체되고 있다.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뉴시스]
지난 1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 본청 간판이 '질병관리청'으로 새롭게 교체되고 있다.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뉴시스]

[일요서울] 국민들의 기대를 업고 출범한 질병관리청(질병청)이 문을 연지 2주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상온 노출이라는 흔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통제 가능한 상황까지 잡히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와 달리 질병청으로 개편되면서 인력과 권한이 확대된 만큼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12일 정식으로 출범한 질병청은 25일 기준 정확히 13일이 지났다. 아직 출범 후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신생 조직이다.

질병청은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국민들의 보건 역량 강화 기대가 반영된 조직이다. 전신인 질병관리본부 내 국립보건연구원이 보건복지부로 이관한다는 소식에 여론이 들끓자 정부의 조직개편 계획이 수정돼 그대로 질병청으로 편입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충북 오송 질병청에 직접 가서 차관급인 정은경 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질병청으로 개편되면서 1청장, 1차장, 5국, 3관, 41과 규모로 확대돼 인력이 기존 907명에서 1476명으로 재배치 인원을 제외하고 42.3%인 384명이 증가했다.

또 감염병 감시와 대응, 조사 업무를 기존엔 보건복지부로부터 위임 받아 수행했으나 감염병 예방법 등 법률을 직접 소관하는 등 질병청에게 업무의 권한이 주어진다.

정 청장도 이러한 기대를 의식한 듯 지난 14일 질병청 개청 기념식에서 "질병청 개청은 코로나19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발생할 신종감염병에 대해 더 전문적으로, 더 체계적으로, 더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철저하게 대응하라는 국민들의 준엄한 뜻과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결과"라며 "질병청은 건강한 국민, 안전한 사회를 지키기 위한 최일선 전문 중앙행정 조직으로써 전 직원들과 함께 맡은 바 사명과 책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인플루엔자 백신 운송 과정에서 일부가 상온에 노출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22일부터 국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이 중단됐다.

인플루엔자 관리의 경우 정 청장이 코로나19와 함께 강조했던 부분이다.

그는 지난 14일 "상시적으로 인플루엔자, 결핵, 항생제 내성감염 및 의료감염, 인수공통감염병 등 감염병 대응의 총괄기구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백신 수급 및 안전 관리 등 일상적인 감염병 예방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질병청 개편과 함께 의료안전예방국을 신설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송 과정의 상온 노출이라는 단순한 사고로 백신 사업 일정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최악의 경우 500만 명분에 달하는 백신을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코로나19와 관련해서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2주간 일평균 국내발생 신규 확진자 수는 101.2명으로 여전히 100명대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17일 이후 5일 연속 이어진 신규 확진자 수 감소세도 23일부터 오히려 증가해 24일엔 5일만에 100명대를 넘어선 110명이 확인됐다.

종교시설과 방문판매 같은 익히 알려진 집단감염 발생 장소에서 여전히 감염이 확산되고 있고 서울을 중심으로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집단감염이 새로 추가되고 있다. 정신요양시설, 요양병원 등 코로나19에 취약한 고령층·기저질환자가 밀집한 시설에서도 집단감염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2주간 발생한 1598명의 확진자 중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의 비율은 24.7%로 목표치인 5%를 약 5배 초과한 상태다.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질병청이 꺼낸 카드는 두 가지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품질검사를 실시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엔 고령층, 임신부 등 고위험군을 우선적으로 접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취약시설 대상 선제 검사 계획을 수립 중이다. 특히 요양시설과 같이 감염 시 피해가 예상되는 장소에서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질병청은 25일 브리핑을 통해 인플루엔자 백신 사고와 관련한 현장조사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인플루엔자 백신 운반 사고로 야기된 예방접종 혼란을 종식시키지 못한 채 코로나19가 또 다시 대규모 재유행을 하게 될 경우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 결핵과 같은 감염병 대응 외에 정책 수립 및 연구개발, 미세먼지·흡연 등 기후변화·건강 관련 사업까지 추진하려고 했던 질병청의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김우주 고려대학교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인원이 적고 인사나 예산, 법률 제정권이 없었지만 이제는 이런 권한을 갖춘 조직이 됐다"며 "이제부터 진짜 시험대에 올라섰다. 이런 일(인플루엔자 백신 사고)이 자꾸 생기면 무언가가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고 말했다.

<뉴시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