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님, 그게 좀 어렵답니다.”
수사 요원이 보고했다.
“무슨 소리야?”

“기지국 전파 송신을 당장 중단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답니다.”
사복 경찰관이 다시 말했다.
“아니, 전국 기지국을 영영 안 쓰자는 것도 아니고 이 지역만 잠시 중단하라는 건데 왜 안 된다는 거야?”

“이 지역 기지국의 최소 단위 서비스를 중단하려면 최소 3개의 셀을 폐쇄해야 하는데 3개의 셀을 중단시키면 광범위한 지역의 핸드폰도 함께 먹통이 된다고 합니다. 불편이 크게 되지요.”
“이 사람아, 그 정도 불편이야 감수해야지. 핸드폰 잠깐 사용 못 할 수도 있지.”
경찰청장이 짜증을 냈다. 

“셀이 뭡니까?”
옆에 있던 폭발물 처리반 소령이 물었다.
“기지국의 최소 단위를 셀이라고 합니다. 핸드폰이 연결되려면 최소 3개의 셀이 움직여야 합니다.”

“음, 그래서 핸드폰을 셀룰러폰이라고 하는구나.”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거야?”
경찰청장이 다시 재촉했다.

“전기통신사업법 55조에 서비스를 중단시킬 수 있는 이유가 나와 있는데 전시나 천재지변 같은 비상사태의 경우에만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서 중단할 수 있습니다.”
“뭐야? 그까짓 핸드폰 잠깐 중단시키는 데 대통령 허가까지 받아야 한다고? 통합 방위법, 원자력시설 방호법, 국가보안목표 관리지침은 다 어디에 쓰라고 있는 건데?”

경찰청장이 불만을 터뜨렸다. 
“대통령의 허가라... 수능시험 때 핸드폰을 시험장에 못 가져가게 할 게 아니라 전파 서비스를 중단하자는 의견이 나왔었는데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요.”

이종문 본부장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차피 핸드폰으로 폭파시키는 구조가 아닐 거야. 시한장치가 달려 있을 수도 있으니 빨리 가지고 나오게 해야겠군.”
경찰청장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러면 작업 실시하겠습니다. 우선 로봇을 들여보내 들고 나오게 하겠습니다. 터지더라도 건물 밖에 나와서 터질 테니 피해가 적을 것입니다.”
소령이 결심한 듯 말했다.
“지금 저 로봇이 바로 폭탄을 들고 나옵니까?”
이종문 본부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로봇이 들어가서 우선 엑스레이로 폭탄 내부를 투시합니다. 어떤 구조로 되어 있고, 어떤 종류의 폭약이 있는지 알아내는 겁니다.”
소령의 설명에 경찰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일단 건물 안으로는 외부 전파가 못 들어가니까 시한장치가 달려 있지 않다면 폭발은 없을 것입니다만.”
김승식 부장이 물었다.

“20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누가 로봇을 따라가서 카드키로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김승식 부장이 목에 걸고 있던 카드키를 처리반 군인에게 넘겨주었다.
소령이 명령을 내리자 로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리반이 트럭에서 모니터를 작동시켜 로봇을 조종했다. 건물 안에선 전파가 차단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로봇은 유선으로 조종해야 했다.

로봇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가는 모습이 상황실 모니터에 비쳤다. 로봇 앞에 달린 눈으로 보기 때문에 로봇 자체는 보이지 않았다.
로봇이 검은 물체 앞에 멈추자 엑스레이 투시 작업이 시작됐다. 처리반의 전문가들이 모니터를 이리저리 살폈다. 

“장치는 아주 간단합니다. 셀룰러폰 칩으로 보이는 게 장착돼 있고, 전파를 받는 즉시 뇌관에 있는 화약에 불이 붙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니터를 분석한 장교가 보고했다. 시한장치가 아니라 리모컨을 이용한 폭발물인 것 같았다.

“폭탄의 종류는 무엇인가? C4인가?”
소령이 물었다.
“아닙니다. 이건 아주 드문 케이스인데 RDX인 것 같습니다.”
장교가 다시 대답했다. 

“뭐야? RDX라고? 하얀 색깔이야?”
“예. 그런데 약간 다른 물질이 섞인 것 같습니다.”
“순수한 RDX라면 질소 냉동이 잘 안 될 텐데.”
폭발물 처리반 장교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경찰청장이 갑자기 말을 자르고 물었다.

“저게 콤포지션 C4보다 강력한 것입니까?”
“예. 그리고 훨씬 민감합니다. 너무 민감해서 보통 그것만으로 폭탄을 제조하지 않는데 다른 수용성 물질을 조금 혼합한 것 같습니다.”
“질소 냉동이란 무엇입니까?”
이종문 본부장이 물었다.
“정확하게 액체질소 냉동이라고 합니다. 액화질소로 마이너스 196도까지 냉동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소령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폭약도 냉동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이 본부장이 신기한 듯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RDX는 비수용성이라 완전히 냉동시키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C4보다 더 강력하고 더 민감하며, 얼리기도 쉽지 않은 폭탄이라는 말이군.”
경찰청장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폭약 자체는 얼지 않더라도 전파 수신을 받는 데 필요한 배터리나 칩이 얼어붙기 때문에 작동하기 어려울 겁니다.”
소령이 웃음을 띠고 설명했다. 

“이상하군. 작동하기 어려운 폭탄을 전파 수신도 안 되는 장소에 뭣하러 설치했단 말인가?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경찰청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몰라서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파가 차단된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을 겁니다.”

문동언 경위가 대답했다. 
로봇은 계속 천천히 움직였다. 바닷가재 집게처럼 생긴 기다란 팔을 뻗어 약 25센티미터 정도 돼 보이는 검은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서 입구로 나오기 시작했다.
“저 로봇이 나온 뒤 폭탄을 냉동차에 집어넣을 때까지만 범인이 핸드폰 전화를 걸지 않으면 됩니다.”

소령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이종문 본부장이 물었다.
“한 40초 내지 45초 정도입니다. 설마 그 사이에 폭발 리모컨을 누르진 않겠지요.”

소령이 낙관적으로 말했다. 몇 초를 두고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폭발물 처리 전문가답게 행운을 믿는 것 같았다.
“자, 나옵니다!”
소령의 말이 떨어지자 로봇이 검은 상자를 들고 건물 입구에 나타났다. 그에 맞춰 군복 색깔의 냉동차가 후진해 로봇을 마중 나갔다. 

“자, 빨리, 빨리.”
로봇을 조정하는 폭탄 제거 요원의 이마에서 진땀이 흘러내렸다. 이 짧은 시간에 누군가 리모컨 버튼을 누른다면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모든 요원들이 터질 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꼼짝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로봇이 긴 팔을 뻗어 냉동차 안으로 들고 온 상자를 집어넣었다. 곧이어 냉동차의 뒷문이 닫혔다. 로봇이 건물에서 나와 냉동차에 상자를 넣기까지 꼭 40초가 걸렸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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