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형사는 이 사건이 사고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고 한 곡조 뽑으려던 40대의 대기업 과장이 감전으로 인해 쇼크사한 현장에 그는 와 있었다. 

“어떻게 돼 가?” 추 경감이 어슬렁거리며 강 형사에게 다가왔다. 
“요즘 흔히 일어난 그런 부류의 사고 같습니다.” “그것참, 노래도 마음대로 부를 수 없는 세상이라니?” 추 경감이 혀를 쯧쯧 찼다.
“그거야 어디 모두 그렇습니까? 이런 일부의 기계 점검도 않는 곳이나 그렇지.”

“하지만 여긴 상당히 으리으리한 곳인데?” 추 경감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맞는 말이다. 강남 압구정동에 자리를 잡은 이 노래방은 그 규모나 시설 면에서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우선 노래방이 완전 자동 시스템화되어 있어 관리인이 없는 것이 첫 번째 특색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적당한 방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회원제로 관리되고 있어서 대금도 자동으로 월말에 계산되게 되어 있었다.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면 그걸로 만사가 해결되는 셈이었다. 아닌 말로 살인이 일어나도 모르게 되어 있다. 만일 기계에 문제가 있으면 방 안에 있는 버튼을 눌러 주면 그제야 관리인이 와서 손을 보게 되어 있었다. 

“이거, 노래 안 부르고 엉뚱한 짓 하는 양반들도 꽤 있겠구먼.”
추 경감이 실내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중해 어느 나라쯤에서 수입한 것 같은 침대 구실도 충분히 할 만한 가죽 소파가 방마다 놓여 있고 큼지막한 거울도 어울리지 않게 벽에 붙어 있었다. 방문은 닫으면 비록 작은 유리창을 붙여 놓긴 했지만, 관리인도 상주하지 않으니 들여다볼 사람도 없을 터였다. 

“같이 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지?”
“하청 업체의 사람들이었답니다. 두 사람이었는데 한복기 씨와 정일용 씨입니다.”

강 형사가 수첩을 뒤적이며 말했다. “여자는 없었어?” “예?”
강 형사가 어리둥절해서 반문했다. “아니야, 됐어. 여긴 무슨 일로 왔대?”
“무슨 일로 왔겠습니까? 노래 부르러 왔지.”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어떤 경로로 모여서 오게 되었느냐 이거야.”
추 경감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카메라를 집어 들며 말했다. 
“오늘이 대금 결제일이었다고 하더군요. 대금 결제를 하고 강 과장이 한턱낸다고 하며 데려왔답니다.”

“대금을 지불 받은 사람들이 오자고 한 게 아니고 돈을 준 사람이 오자고 했다고”
“예, 그 대금이 6개월짜리 어음이었다나요. 그래서 미안한 강 과장이 인심을 쓴 거지요.”

강 형사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종씨라고 감싸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봐.” 추 경감이 농담처럼 말했다. 

“반장님도, 제가 불의가 있다면 용납할 사람입니까? 그 대금이 원래는 3개월 어음이었는데 강 과장이 그걸 빼돌리고 6개월짜리로 바꿔 쳤다는 말이 있더군요.”

“대금 결제를 받은 사람은 오늘 이 자리에 온 두 사람뿐인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더 있었답니다. 이형식이라는 형식엔지니어링 사장이라고 하던데요.”
“그 사람은 왜 빠졌대?”

“기분 나빠서 빠진 거지요, 뭐.”
강 형사가 피식 웃었다. “사실 저라도 답답해서 이런 곳에 오고 싶지 않았겠습니다. 아무튼, 그 세 사람은 강 과장이 천벌을 받았다고 좋아할 겁니다.”
“그거야 알 수 없지. 그리고 이 카메라는 뭐야?”
추 경감이 만지작거리던 카메라를 강 형사에게 내밀었다. “필름도 안 들었던데. 이것도 서비스 품목인가?” “아닙니다. 강 과장이 기념사진이나 찍자며 가져온 거랍니다.”

“그래? 그 사람 대단한 짠돌이임이 틀림없군. 이 카메라는 자동 사진 찍기도 안 되는 구닥다리 아냐”
추 경감은 카메라를 다시 내려놓았다. “필름은 현상을 보냈습니다. 25분점에 맡겼으니까 금방 나올 겁니다.”

강 형사가 어깨를 펴며 말했다. 오랜만에 칭찬 한마디 나오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걸 왜 사비를 들여서 뽑나?” “예? 사비라뇨?”
“그럼 감식반이 뻔히 있는데 그걸 25분점에 보냈다면 그 돈이 어디서 나올 줄 알아?”

추 경감은 문제의 기계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래방 측에선 뭐라고 하나?”
“누군가 배선을 건드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으레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발뺌을 하려는 수작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여기에 와 있던 사람들은 모두 책상물림 출신이라 기계를 만질 줄 몰라요. 이형식 씨와 왔었다면 모를까?”
“그래? 사고는 언제 났지?”

“강 과장이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였답니다. 아마도 손을 씻고 물기를 완전히 닦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 조작할 시간도 있었다는 말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마는…….”
그 순간 순경이 사진을 가지고 들어왔다. 추 경감이 서둘러 사진을 보았다. 사진은 두 장밖에 되지 않았다.

첫 번째 사진에는 강 과장이 마이크를 잡은 모습과 한복기, 정일용 씨가 어깨동무를 한 모습이 찍혀 있었다. 두 번째 사진에는 한복기 씨가 마이크를 잡고 강 과장과 정일용씨가 들러리로 찍혀 있었다. 
“이형식 씨의 알리바이는 조사해 봤나?” “예? 아니요, 아직…….”
강 형사가 추 경감의 질문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대답했다. 
“조사해 봐, 이 사건은 세 사람이 모두 짜고 한 사람을 죽인 거야.”
“예, 예?”

무슨 뜻인지 파악을 못해 예만 연발하는 강 형사를 노래방에 남겨둔 채 추 경감은 악마의 소굴이라도 되는 듯이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퀴즈. 추 경감은 어떻게 세 사람이 공모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을까요?“

 


[답변 - 5단] 사진기는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 카메라인 데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노래방에 있던 세 사람의 모습이 동시에 찍힐 수가 없다. 따라서 사진을 찍은 사람은 이형식일 수밖에 없다. 추 경감은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에서 세 사람의 공모설을 알아낸 것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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