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라인 책임론 급부상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전 청오대에서 새 정부들어 첫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금강산 솬솽객 피격사망 사건과 일본의 독도영유권 왜곡 기도 문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 오리무중이다. 현대아산 측이 금강산 현지를 방문해 피격 경위를 북측으로부터 설명을 받았지만 오히려 의문점은 더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 북측의 처음 설명한 사건 경위와는 차이를 보였다. 피격 시간, 피해자 발견 지점, 피격 지점 등이 달랐다. 가장 큰 의문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새벽에 50대 여성이 혼자서 왜 군사구역인 경계 펜스를 넘었느냐는 점이다. 두 번째 의문은 북측 초병이 처음 피해자를 발견할 당시 금강산 관광객인지를 인지여부다. 금강산 피격 사건의 미스터리 증폭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의 총체적 책임론도 대두됐다.

이번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외형상 금강산 관광객이다. 50대 여성인 고 박왕자씨가 홀로 경계 펜스를 넘어 북측 초소 앞까지 왜 갔느냐는 것이다. 호텔 출발 시간대를 보면 당초 4시 31분으로 설명했던 북측은 4시 18분으로 앞당겨 수정했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북측 해변을 ‘나홀로 산보’를 할 정도로 여성 박씨가 대담할 수 있느냐는 의문점이 남는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실향민이 아니냐’, ‘북한 주민으로 오인한 게 아니냐’, ‘관광객으로 위장한 국정원 직원이다’는 각종 억측마저 나돌았다.


실향민, 북한 주민, 정보원 억측 난무

현재 유족들은 일체 언론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고 국정원은 ‘공식 입장’ 자제한 채 함구로 일관하고 있어 진위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50대 여성이 새벽에 경계 펜스를 넘어 군사구역으로 진입한 것을 단순한 새벽 산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에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두 번째 의구심은 북측 초병이 금강산 관광객 인지 여부다. 북측의 설명대로 새벽 4시 18분에 출발한 박씨가 처음으로 발견한 시각은 4시 50분으로 밝히고 있다. 이에 3번의 ‘서! 움직이면 쏜다’ 3회 반복 후 4시 55분에서 5시 사이에 공포탄 1발과 실탄 3발을 발포해 이중 2발이 박씨를 관통해 숨지게 만들었다.

북한에 현지 조사차 다녀온 현대 아산 윤만준 사장은 “귀국 당일이던 15일 오전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측이 군 조사보고 문건을 가져와 직접 읽어준 내용에 북측은 유감을 표하면서 ‘관광객인 줄 알았으면 총을 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수차례 밝혔다”고 전했다.

북측은 박씨가 관광객이 아닌 스파이로 오인해 공포탄 발포 후 사격을 가했다는 말이 된다. 아니면 북한 주민이 제한 구역에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또 다른 의문점이 남는다. 박씨가 초병의 멈춰서라는 신호를 무시하고 왜 도망갔으며 왜 박씨는 북측 초병에게 ‘관광객이다’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냐는 점이다. 거꾸로 박씨가 관광객임을 밝혔지만 북측 초병이 관광객으로 인지했으면서 ‘고의로’ 사살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또한 경계 초소와 피격지점이 300m뿐이 남지 않은 거리에서 굳이 조준 사격을 했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50대 여성 못 잡아 조준 사격?

이와 관련 윤 사장은 “초병이 사고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사고자가 정지 요구에 불응하고 오던 길을 황급히 되돌아 뛰어가기 시작해 경고 사격 한 차례 한 뒤 조준 사격 3발을 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피격 시각이 4시 55분에서 5시라는 북측의 설명을 보면 충분히 사람의 식별이 가능한 시간대이고 초병이 박씨를 보고 ‘움직이면 쏜다’는 경고를 할 정도면 어느 정도 근접한 거리였을 것이라는 점에서 북측의 해명이 명확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밖에도 발포 횟수 관련 북측에선 처음에는 3발이라고 했다가 다시 4발을 발포했다고 수정한 점 그러나 남측의 목격자가 2번으로 들었다는 주장과 차이 역시 의문점이다. 남측 목격자와 피격 거리가 길어야 2Km가 내이기 때문에 차이를 보이기가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피격 지점을 북측이 당초 경계 펜스 200m에서 300미터로 수정한 점도 수상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젊은 북측 초병이 50대 여성을 붙잡지 못해 ‘조준 사격’을 했다는 북측의 해명도 쉽게 믿을 수 있는 대목이 아니다.

북측에서는 “박씨가 도주 시 평지처럼 다져진 해안가를 달렸고 초병은 발이 빠지는 모래사장 위로 추격하다 보니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고 조준 사격 배경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측은 구체적으로 북측 초병이 박씨를 처음 봤을 때 둘 사이 거리와 초병이 도망가는 박씨를 얼마나 추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하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다. 이렇듯이 북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명쾌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의문점만 더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정보위 소속 한 보좌관은 “통상 이런 사건은 진실이 알려지기가 쉽지 않다”며 “국가정보원이 침묵하고 북측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실체적 진실은 영원이 묻힐 공산이 높다”고 관측했다.


외교안보 아닌 현대아산? 책임공방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해 현대아산 측의 책임을 거론한 뒤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 주재로 현 정부 들어 첫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및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한 대책을 집중 논의했다.

우선 이 대통령은 “금강산 피격 사망사건은 진상조사 뿐 아니라 향후 재발방지책 마련이 중요하다”며 “현대아산의 책임소재에 대해서도 종합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 주목받고 있다.

이날 NSC회의 참석자들은 금강산 피살사건과 관련, 북한의 신변 안전보장 조치가 없다면 관광을 재개할 수 없다는 기존방침을 확인했다. 또한 남북한 공동조사 및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이 없다면 개성 관광을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현대아산 측의 책임론 관련 야권 일각에서는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 첫 번째 책임은 국가기관이고 당연히 주무부처인 국정원 및 외교안보 라인의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현대아산 측의 ‘관광객 관리 소홀’ 책임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대통령의 인식 전환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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