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욕정

장애숙은 웨이터를 따라가 자연스럽게 그들과 합석했다.

“이정수입니다.”

깔끔하게 생긴 사내가 장애숙에게 고개를 꾸벅했다.

“숙이에요.”

장애숙이 혀가 꼬부라진 말투로 대꾸했다.

“몇 살?”

“스물두 살?”

“나도 스물 두 살인데 야자 할까?”

“좋지.”

장애숙과 이정수는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들은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셨다. 장애숙의 동료와 다른 사내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들이 나이트클럽에서 나온 것은 새벽 6시였다. 이태원의 유명한 나이트클럽들이 모두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이정수는 장애숙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병을 더 마셨다. 그래도 시간이 7시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2월의 새벽 7시는 아직도 캄캄하게 어두웠다. 장애숙은 취해서 비틀거리며 이정수의 팔에 매달렸다.

“야, 우리 여관에 가자.”

이정수가 장애숙에게 말했다.

“여관에는 왜 가는데?”

장애숙이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잖아? 다 알면서….”

이정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우리 방 있으니까 우리 방으로 가자.”

“우리 방이라니?”

“내가 후배와 함께 살고 있는 방이 있거든. 거기로 가자.”

“후배가 있는데 어떻게 가니?”

“괜찮아. 따라만 와.”

이정수는 택시를 잡았다. 장애숙이 술이 너무 취했기 때문에 여관으로 끌고갈 수가 없었다. 택시는 장애숙이 방을 얻어 살고 있는 대림동까지 금세 달려갔다. 이정수는 택시비를 낸다면서 장애숙의 지갑을 열었다. 지갑에는 10만 원짜리 수표가 넉 장이나 들어 있었다. 그는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택시기사에게 주었다.

이정수는 운전기사가 거스름돈을 꺼내는 동안 수표 넉 장을 재빨리 숨겼다. 장애숙은 그것도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정수는 거스름돈을 받고 장애숙을 흔들어 깨웠다.

“야, 내려. 다 왔어.”

“다 왔어? 그럼 내려야지.”

장애숙이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장애숙이 방을 얻어 살고 있는 집은 2층이었다. 이정수가 장애숙을 부축하여 계단을 오르고 장애숙이 갖고 있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도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아무도 없나?”

이정수는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우리 후배는 자고 있을 거야.”

장애숙이 지갑을 탁자 위에 내던지고 소파 위에 쓰러졌다. 장애숙의 짧은치마가 위로 걷혀지면서 허벅지가 드러났다. 장애숙은 매일 같이 남자가 바뀌는 여자였다. 그녀는 남자들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는 대신 그녀의 방으로 데리고 와서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많은 돈을 벌었으나 대부분의 돈을 향락과 욕정을 푸는 일에 써버렸다. 처음 만난 이정수를 방으로 데리고 온 것은 그러한 습관 때문이었다. 이정수는 소파에 걸터앉아 잠을 자려는 장애숙을 보자 욕정이 일어났다. 그는 장애숙의 옆에 앉아서 장애숙의 봉긋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얹었다. 그의 한 손은 장애숙의 허리를 안고 있었다.

“뭐야?”

장애숙이 눈을 뜨고 소리를 질렀다. 눈이 싸늘한 빛을 뿌렸다.

“네가 좋아서 그래.”

“헛소리하고 있네. 나하고 하려면 돈부터 내?”

“뭐?”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

“돈독이 올랐구나!”

이정수는 장애숙이 말하는 뜻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장애숙이 단란주점 접대부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술에 취해서 떠드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리하여 다짜고짜 입술을 포갠 뒤에 옷을 벗기려고 달려들었다.

“비켜!”

그때 장애숙의 손톱이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이정수는 장난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장애숙을 완력으로 짓눌렀다. 그들은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때 장애숙이 발길로 그의 가슴팍을 내질렀다.

“이년이!”

이정수는 화가 나서 장애숙의 목을 꽉 움켜쥐었다.

“억!”

장애숙은 이정수가 목을 움켜쥐자 켁켁거리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집으로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앙탈이야. 사람을 갖고 놀려는 거야?”

이정수는 더욱 힘껏 목을 눌렀다. 장애숙의 눈이 커지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다리로는 그를 떼어내려고 필사적으로 발길질을 했다. 이정수는 그럴수록 더욱 세차게 장애숙의 목을 눌렀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장애숙은 소파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이정수는 땀을 흘리며 장애숙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었다. 숨 쉬는 것을 확인하려고 얼굴을 갖다 댔으나 숨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죽었어!”

이정수는 소름이 오싹 끼쳤다. 또 다시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에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다. 장애숙을 죽이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할퀴고 발길로 내질러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죽이게 된 것이다.

‘옆방에 후배가 있다고 했는데….’

이정수는 문득 옆방의 여자가 생각났다. 그 여자가 자신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옆방으로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방안은 기척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이정수는 문을 열고 살며시 옆방으로 들어갔다. 이정수가 장애숙을 살해하는 동안에도 조윤선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정수는 조윤선이 잠이 든 것처럼 위장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여 이불을 확 들췄다. 그러자 속옷만 입고 잠이 들어 있는 조윤선의 여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정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

조윤선이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재빨리 조윤선을 덮쳤다.

“왜 이래요?”

조윤선이 놀라서 이정수를 밀어내려고 했다.

“잠자코 있어. 잠자코 있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이러지 마세요.”

“닥치라고 그랬잖아? 한 번만 더 떠들면 네년을 죽여 버릴 거야.”

이정수는 조윤선을 윽박지르고 강제로 추행했다. 조윤선은 공포로 얼어붙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때 이정수의 뇌리로 조윤선을 죽여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이러 들어와서 그 짓을 하면 어떻게 해? 빨리 죽이고 달아나….

이정수는 조윤선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조윤선은 이정수가 목을 조르자 발버둥을 치다가 축 늘어졌다.

이정수는 장애숙의 방을 나와 허겁지겁 달아났다. 시간은 벌써 아침 10시가 되어 있었다. 날씨가 따뜻하여 지난밤에 내린 눈이 녹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레스토랑으로 출근했다. 지난밤에 한숨도 자지 않고 술을 마신 탓에 속이 쓰렸다. 그러나 두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공포가 엄습해 왔다.

‘내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돼.’

그러나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이정수는 두 여자가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장애숙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칼로 찌른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목을 졸랐기 때문에 살아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랫동안 벨이 울린 뒤에 소리샘으로 연결한다는 판에 박힌 메시지만 들려왔다. 전화를 받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면 죽은 것이 확실한 모양이었다. 이튿날 오후에는 장애숙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자신이 장애숙이 죽은 것을 모르는 것처럼 위장하려는 수작이었다.

장애숙과 조윤선이 죽었는데도 신문과 방송이 조용했다. 이정수는 점점 그녀들의 일이 궁금해졌다. 그녀들이 혹시 살아난 것이 아닐까. 장애숙과 조윤선이 살아서 병원에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녀들이 살아나서 경찰을 데리고 나를 잡으러 오는 것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이정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정수는 불안하고 초조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정수는 그날 아르바이트가 끝나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장애숙의 집으로 갔다. 장애숙의 집은 조용했다. 그는 계단으로 올라가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썰렁한 냉기가 돌고 있었다. 장애숙과 조윤선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그대로 있었다. 죽은 것이 확실했다. 이정수는 장애숙과 조윤선을 침대로 옮겨 나란히 눕혔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주유소에서 석유를 사다가 시체 위에 뿌린 뒤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대림동 주택가에서 일어난 화재는 소방차가 5분도 안되어 출동하여 불을 껐다. 소방관들은 침대 위에서 두 여자의 시체를 발견했고 강력계 형사들이 출동하여 수사에 나서게 되었다. 그들은 방안을 샅샅이 수색하여 장애숙의 핸드폰에 음성메시지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정수가 범인인 모양입니다.”

“핸드폰 번호가 찍혀 있나?”

“예.”

“범인이 핸드폰 번호를 남길 리는 없잖아?”

“일단 연행을 하죠.”

경찰은 이정수를 강력한 용의자로 보고 범행을 추궁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하던 이정수는 마침내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모두 털어놓고 말았다.

이정수의 연쇄살인사건은 신세대들이 살인자이고 신세대들이 피해자였다. 옥탑방에서 살해된 김미란은 성실한 여성이었으나 유흥비 마련을 위해 침입한 이정수에게 살해되었고 장애숙은 스스로 살인마를 집으로 끌어들인 측면이 있었다. 브레이크 없는 애정 행각이 채 피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게 한 것이다.
<끝>



제 13 화 제2차 세계대전을 예고하는 아베 사다의 광기

1936년은 일본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국력에 비해 너무나 비대해진 군부는 내각조차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져 일본은 군인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막강한 군부의 위세에 지식인 사회는 숨을 죽였고 국민들은 오로지 천황폐하 만세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국민들은 평화시인데도 육군만 40만이 넘는 일본 군부의 팽창주의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 군부는 좁은 일본 땅에서 벗어나 외국으로 뻗어가려고 갖가지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일본은 이미 중국 침략을 시작하려고 많은 군대를 양성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비대해지는 군부를 바라보면서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성기 절단사건이 발생하여 일본인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1936년 5월18일 아침, 도쿄 아라가와구의 요정 마사키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요정의 여주인은 이부자리 위에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남자의 시체를 보고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을 처음 신고 받은 사람은 아라가와구의 경찰 후쿠다 요시오였다. 후쿠다 요시오는 즉시 요정으로 달려갔다. 40대 남자가 죽어 있는 요정의 방 앞에는 게이샤들이 모여서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젠장 완전히 피로 도배를 했잖아?’

후쿠다 요시오는 남자의 시체를 보고 망연자실했다. 남자는 하복부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사체 옆에는 ‘사다와 기치 둘이서 영원히’라는 글자가 피로 씌어 있었다. 시체 옆에 피로 써놓은 글자는 광기로 가득차 있었다. 엽기적이고 끔찍한 장면이었다.

‘정사(情死)인 모양인데 여자는 어디로 간 거지?’

후쿠다 요시오는 이 사건을 자신이 수사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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