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욕정

옥탑방은 주방과 방 한 칸, 그리고 화장실과 욕실이 하나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방안에는 침대와 여자들의 자질구레한 옷가지들과 화장품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남자 옷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여자들이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이곳 저곳을 뒤졌으나 돈이나 패물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것들이 돈을 가지고 다니는 모양이군.’

이정수는 실망했다. 방에는 여자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도 하나 있었다. 가방을 샅샅이 뒤졌으나 역시 돈이 보이지 않았다. 이정수는 가방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비록 아무도 없는 빈방이었으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공연한 짓이었다. 여자라도 있었으면 강간이라도 했을 텐데…. 이정수는 몹시 아쉬워했다. 그는 얼마 전에 도둑질을 하러 빈집에 들어갔다가 여자 혼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강간을 했었다. 두 명은 실패를 했다. 여자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던 것이다.

‘소리를 지르기 전에 목을 졸라 죽였어야 했는데….’

그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의 옷을 벗기고 올라탄 뒤에 목적을 이루지 못한 일이 너무나 아쉬웠다. 이정수는 여자의 가방을 집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다이어리만 빼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이어리에는 여자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달이 바뀌어 6월이 되었다. 이정수가 홍은동의 여자들 방에 침입했다가 아무 것도 훔치지 못하고 다이어리 하나만을 가지고 나온 지 20일이 지났을 때였다. 날씨는 본격적인 장마철로 접어들고 있었다. 낮에 몇 번씩 소나기가 퍼붓다가 그치고는 했다. 이정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자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홍은동까지 택시를 탔다.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으로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것이 벅찼으나 버스나 지하철이 끊어져 어쩔 수가 없었다.

‘저기는 분명히 여자들만 있을 텐데….’

택시에서 내려 홍은동 주택가 고갯길을 오르던 이정수는 얼마 전에 도둑질을 하기 위해 침입했던 여자들의 옥탑방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문득 하체가 뻐근해 왔다. 여자들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뇌리를 엄습해 오자 하체가 팽팽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정수는 주위를 살폈다. 밤이 늦은 시간이라 주위에는 인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현관문과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난번에 도둑이 침입했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들이 문단속을 제대로 한 것이 틀림없었다. 창문을 깨트리면 여자들이 깨어나서 소리를 지를 것이다. 그는 실망했으나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자들이 스탠드를 켜놓고 있어서 방안의 풍경이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였다. 침대 위에 두 여자가 속옷 차림으로 잠들어 있었다. 누가 언니이고 누가 아우인지 알 수 없었으나 자매인 것은 분명했다. 그녀들은 침대 위에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군.’

그는 옥탑방의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그쪽은 창문이 열려 있었으나 벽이 가로막혀 창문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여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창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1층에서부터 가스 배관이 창 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약간 위험스럽기는 해도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면 될 것이다. 이정수는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골목에는 여전히 인적이 없었고 또 다시 성긴 빗발이 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정수는 가스 배관을 타고 다람쥐처럼 옥탑방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가스 배관을 타고 그가 올라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간신히 배관을 타고 옥탑방의 창문에 이르는데 성공했다. 빗발이 뿌리는데도 온몸에서 구슬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한여름인 탓이었다.

이정수는 창문을 넘어 들어갔다. 여자들은 잠자기 전에 참외를 먹었는지 방바닥에 과도와 참외 껍질이 담긴 쟁반이 놓여 있었다. 그는 쟁반 위에 있는 과도를 집어들었다.

“누구… 세요?”

그때 인기척을 느낀 한 여자가 깨어나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도 깨어났다.

이정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재빨리 침대로 뛰어 올라가 두 여자에게 과도를 겨누었다.

“소리 지르지 말아! 소리를 지르면 이 칼로 네년들을 죽여 버리겠어!”

여자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처음에 깨어난 여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두 여자에게 과도를 휘둘러 침대 위에 눕게 했다. 여자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는 여자들이 얌전하게 침대에 눕자 자신의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여자들을 다시 위협했다.

“조용히 해! 내가 누군지 알아? 난 너희들이 누군지 다 알고 있어. 소리 지르면 죽여 버리겠어. 죽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그는 여자들을 위협한 뒤에 한 여자의 속옷을 벗겨냈다. 그리고 그녀를 추행하기 시작했다. 속옷을 벗기고 체중을 실으려고 하자 여자가 완강하게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자의 목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쏴아아아. 창밖에서 굵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정수는 그 여자의 목을 누른 채 추행했다. 그러는 동안 동생은 흐느껴 울고 있었다. 언니도 울었으나 몇 번 발버둥을 치다가 그가 두 손으로 힘껏 목을 누르자 조용해졌다. 그 동안 오른 쪽에 있는 여자는 공포에 질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울고 있었다.

‘이것들이 신고를 하지 않게 하려면 둘 다 해치워야 돼. 나머지 계집도 먹어 치우고….’

이정수는 왼쪽 여자, 언니에 대한 추행을 마치자 동생을 추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언니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이정수는 조용해진 언니를 팽개치고 동생에게 다가가서 속옷을 벗기려고 했다. 그러자 동생이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잠자코 있어!”

이정수는 동생을 윽박질렀다.

“사람 살려. 강도야!”

동생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정수는 동생의 목을 누르려다가 소스라쳐 놀랐다. 그는 재빨리 옷을 주워 입고 옥탑방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이정수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비를 흠뻑 맞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금방이라도 경찰이 쫓아올까 봐 겁이 덜컥 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무도 뒤쫓아 오지 않았다. 이정수는 방에 돌아와 벌렁 누웠다. 두 자매가 자고 있는 방에 침입하여 한 여자를 강간한 일이 무슨 신기루처럼 여겨졌다. 잠이 오지 않았다. 여자를 강간할 때의 흥분과 야릇한 기분, 그리고 촉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그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홍제동 옥탑방의 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슴으로 찬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죽은 여자의 이름은 김미란(가명)이었고 25세였다. 동생 김미숙은 21세였다. 김미란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동생 김미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목을 졸랐을 때 죽은 모양이야.’

그는 그때까지도 여자가 죽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만 여자가 항거 불능 상태로 기절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정수는 그날 저녁 미아리 텍사스촌으로 달려갔다. 사람을 죽였다는 공포감이 뇌리를 엄습해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술을 마시고 허겁지겁 여자를 안고 욕정을 풀었다. 살인을 한 뒤의 초조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레스토랑의 동료에게 돈을 빌려서 텍사스촌에서 여자를 안았으나 공포와 불안은 여전했다.

홍은동 주택가에 형사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형사들이 길거리에서 배회하는 우범자들을 연행하여 조회하고 여기저기서 목격자 탐문수사가 벌어졌다. 그러나 목격자는 전혀 없었다. 이정수는 가능한 한 형사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했다. 여러 날이 흘러갔다. 경찰은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수사는 장기화되었다.

‘그래. 경찰은 이제 나를 잡지 못할 거야.’

이정수는 8개월이 지나도 경찰이 자신을 검거하지 못하자 안심했다. 그는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곳 저곳에서 도둑질을 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의 아르바이트로는 나이트클럽 술값과 여자들에게 선물을 사주면서 여관에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장애숙(가명)은 단란주점 접대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22세고 날씬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열아홉 살 때부터 단란주점을 돌아다니며 접대부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남자들에 대해서는 이골이 나 있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여자 혼자 사는 것이 경제적인 부담도 많이 들어서 전에 있던 단란주점에서 만난 조윤선과 함께 살고 있었다. 조윤선은 스물한 살로 장애숙을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같이 남자들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남자들 쪽에서 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녀 쪽에서 돈을 벌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자들을 불러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짓도 젊어서나 하는 거야. 몇 년 지나면 처녀막 수술하고 결혼할 거야.”

장애숙은 조윤선에게 그렇게 말했다. 조윤선은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단란주점 접대부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장애숙은 생활 방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일만 힘들고 봉급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녀는 수입이 훨씬 많고 남자들과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접대부 생활을 선택했다. 접대부 생활은 술과 담배에 젖어 사는 것이었다. 장애숙은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남자들과 2차를 나갔다. 그렇게 하여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갖게 되었다. 남자들은 젊은 남자들에서 중년 남자들까지 다양했다. 그녀는 많은 남자들과의 관계를 즐겁게 했다. 그러나 단란주점 접대부 생활을 오랫동안 하게 되자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었다. 그녀는 그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두 번씩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을 추고 호스트바에 가서 술을 마셨다. 나이트클럽에서는 부킹을 하여 남자들을 사귀었고 호스트바에서는 돈을 주고 남자를 샀다.

장애숙이 이정수를 만난 것은 그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2월이었다. 아침나절부터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더니 저녁이 되자 발목이 묻힐 정도로 눈이 수북이 쌓였다. 월요일인 탓인지 장애숙이 일을 나가는 단란주점에는 그날 따라 손님이 많지 않았다. 장애숙은 대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이태원에 춤이나 추러 갈까?’

장애숙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11시쯤에 눈을 잔뜩 맞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사내가 혼자서 단란주점에 들어왔다. 장애숙이 룸에 들어가 인사를 하자 그녀를 옆에 앉히고 술을 마셨다. 그는 2시가 되어 술값을 계산하기 전에 그녀에게 팁을 40만원이나 주었다.

‘술이 취하니까 10만 원짜리 수표가 만 원짜리로 보이나?’

장애숙은 수표를 팁으로 받아 기분이 좋았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단란주점은 2시30분에 문을 닫았다. 장애숙은 동료 하나와 함께 이태원의 나이트클럽으로 술을 마시러 갔다. 웨이터가 언제든지 찾아오면 부킹을 시켜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새벽 3시의 나이트클럽은 광란의 분위기였다. 젊은 남자와 여자들이 어울려 테크노댄스를 추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부킹 하시죠?”

그녀들이 어느 정도 술에 취했을 때 웨이터가 장애숙에게 다가와 물었다.

“당근이지.”

그녀는 단란주점에서부터 취해 있었다. 그녀에게 부킹을 청한 남자는 그녀와 비슷한 또래였다. 그들도 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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