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갉아먹는 ‘악질 범죄’, “사람 믿기 힘들다” 피해 호소… 대책 시급

본 기사와 무관함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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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기획부동산 영업방식이 갈수록 다양하고 교묘해진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피해자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실제 기획부동산은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도 끼침으로써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획부동산 피해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아 지적을 받고 있다. 기획부동산이 잠적할 경우 피해구제는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라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영혼까지 갉아먹는다는 ‘악질 범죄’ 기획부동산. 이들의 사기 유형과 기획부동산 피해자의 피해담을 통해 기획부동산의 실체에 접근해 봤다.

공인중개사 “기획부동산, 접촉 아예 안 해” 무조건 경계·조심해야

기획부동산 사기, 수법도 다양… 피해자 구제 방법은 ‘거북이 걸음’

‘기획부동산’이란 용어의 학술적 정의를 찾기는 어렵다. 1999년 신문기사에 처음 등장 후 언론에서 부동산 투기 및 사기와 관련 보도를 내면서 기획부동산이란 용어가 시작되고 통용되기 시작했다.

기획부동산은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고용→토지 매입→소개 과정의 다단계식 영업 ▲펀드식 투자자 모집 유형 ▲지분등기 방식(공동소유주) 토지판매 ▲소유권 없이 토지판매(미등기 전매) ▲도시형 기획부동산 등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인 다단계 기획부동산은 기획부동산 업체에 고용된 텔레마케터와 영업직원이 전화와 신문 광고, 블로그, 인터넷 문자 메시지 전송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허위·과장 정보를 제공하며 투자를 권유한다. 이후 고용된 사람은 직접 토지를 구매하고 불특정 다수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지인 등에게 토지를 소개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지인에게도 피해를 끼치게 된다. 피해자는 지인에게 사기를 쳤다는 죄책감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등 다단계 기획부동산은 영혼까지 갉아먹는다는 ‘악질 범죄’로 알려졌다. 해당 범죄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사기 방법이다. 도시형 기획부동산은 도시 주변 지역의 개발제한구역 해제, 택지개발 등 각종 개발정보를 미리 정보를 빼내 주변 토지를 선점한 후 허위 정보를 퍼뜨려 높은 가격에 토지를 매각하는 방법이다.

피해 사례 다양
지인·가족에게 사기 당해

실제로 기획부동산 피해 사례도 다양하다. 다단계 기획부동산 피해 사례를 살펴보면 피해자 A씨는 기획부동산 직원이었던 이모로부터 “나도 이미 샀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듣고 여주군에 위치한 330㎡의 땅을 시세보다 높은 5000만 원에 구매했다. 이후 “매수자를 소개해 주면 그 대가로 땅을 싸게 주겠다”며 지인 소개 권유를 지속해서 받는 등 피해를 당했다. 도시형 기획부동산 사례의 경우 기획부동산 업체가 군산 시내 주요 지역의 토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이를 고가에 분할 판매해 실수요자인 개발업자와 개인이 피해를 본 경우도 있다.

본지는 실제 기획부동산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기획부동산 사기 피해자 이모씨는 도시형 기획부동산으로 피해를 당했다. 당시 서울에 거주중이던 이 씨는 운 좋게 2억 상당의 목돈을 마련하게 됐다. 돈을 어떻게 하면 부풀릴지 생각하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기획부동산 사기범 B씨를 통해 도시형 기획부동산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됐다. 이 씨는 “B씨가 서울 강남과 강북 근처에 좋은 토지가 있는데 곧 그린벨트가 해제되니 그 땅을 얼른 사라고 부추겼다”며 “지금 기회를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한다. 내 주위 사람들은 다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당시 그린벨트가 해제된다는 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B씨와 함께 직접 땅을 보러 가기도 했다고 이 씨는 설명했다. 이 씨는 “실제 B씨와 함께 해당 땅을 보러 갔다. 땅 근처에는 주택과 상가들이 있었고, 그린벨트가 곧 해제된다고 하니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며 “반신반의했던 상황이었지만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사람이니 믿고 1억 원을 투자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실제 이 씨와 B씨는 토지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약 이후 이 씨는 그린벨트 해제 구역이 아닌 그 주위의 엉뚱한 땅과 계약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B씨가 잠적한 뒤였다. B씨에게 현혹돼 엉뚱한 땅을 계약했던 사람은 이 씨 외 3명이나 더 있었다. 실제 이 씨가 계약했던 토지는 값어치가 없었던 쓸모없는 토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당시 사건으로 인해 사람에 대한 믿음도 사라졌고 누구를 믿는 것이 힘들었다. 돈은 잃었지만, 세상 공부했다고 생각한다”고 씁쓸해했다.

기획부동산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정부도 대책을 고심 중이다. 정부는 2012년 4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개발이 불가능한 토지 분할에 관한 사항은 지자체 조례로 정한 기준에 적합하도록 개선했다. 또한 기획부동산의 토지거래 모니터링 강화를 위해 한국감정원의 ‘토지거래 위험경고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기획부동산 사기에 대한 입증을 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피해구제 쉽지 않아
섣부른 계약·돈거래 금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망행위, 상대방의 착오, 재산상 처분행위, 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부동산범죄의 경우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되지만, 이미 발생한 금전적 피해 배상은 받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기획부동산이 잠적할 경우에는 현재로서는 피해구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기획부동산은 피해자도 직접 범죄에 관여하게 되면서, 소송 분쟁 시 기획부동산 사기범들은 직원(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중계약서 작성, 미등기 전매 등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취득세, 양도소득세, 종합소득세 등 탈세도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부동산의 거래 및 중개 과정에서 다양한 분쟁 양상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관련 분쟁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독자적인 분쟁조정기구는 없어 피해자 구제 방법은 여전히 ‘거북이걸음’이다.

기획부동산을 두고 부동산 업계에서도 혀를 내두른다. 수도권에서 20년간 공인중개사 일을 한 김 씨는 “기획부동산들과 아예 접촉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 업계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조금만 부동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도 기획부동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해당 지역의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김 씨는 “싼 땅이 매물로 나왔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경계하라고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김 씨는 “기획부동산은 현 시세보다 훨씬 높은 시세로 매매를 하고 나중에 피해자들에게 책임도 안 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인중개사도 아파트, 오피스텔, 고층 건물, 토지 등 거래하는 분야가 세분화돼 있기 때문에 토지를 잘 알지 못하는 공인중개사들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 분야의 공인중개사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섣불리 계약 등 돈 거래를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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