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후원금 받게 해 주고 수천만 원 뜯어내

홈앤쇼핑 사옥 [뉴시스]
홈앤쇼핑 사옥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해 10월 25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홈앤쇼핑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당시 경찰은 홈앤쇼핑이 사회공헌 명목으로 마련한 사회공헌기금 일부를 횡령한 것으로 의심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회계자료 등을 압수했고 회사 관계자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를 했다. 도대체 홈앤쇼핑 사회공헌기금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K씨, 중소기업중앙회·홈앤쇼핑과 무슨 관계?

‘제이유 사건’ ‘최규선 게이트’ 연루되기도

 

일요서울은 피해기업, 홈앤쇼핑, 경찰 등을 종합적으로 취재한 결과 홈앤쇼핑 사회공헌기금을 받았던 회사들이 누군가에게 수천만 원씩 강탈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부분 어려운 회사 사정을 알고 홈앤쇼핑의 사회공헌기금을 받을 수 있게 해 준다고 접근한 뒤 기금을 받자마자 일부 금액을 뜯어 간 것이다. 기업들은 회사 사정이 어려운 가운데 지원금을 받게 해 준 만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전달해 준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

K씨가 브로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홈앤쇼핑의 사회공헌기금을 받은 기업들은 전직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의 K씨를 통해 이른바 후원금을 지급 받았다.

조순 서울시장 재임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의 K씨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다. 과거 통합민주당 시절 김영삼 총재 공보비서를 지내며 부대변인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는 민주당 출신으로 서울지역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했다.

지난 2007년에는 제이유그룹으로부터 세금 감면 청탁과 함께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실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2003년에는 최규선 게이트와 관련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재판부로부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8천만 원을 선고 받기도 했다.

K씨는 홈앤쇼핑 관계자는 아니었지만 기업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 홈앤쇼핑을 통해 기금을 받도록 주선해 줬다. 그 과정에서 K씨는 당시 자신이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를 돕고 있다며 중소기업중앙회에서 100% 출자해 만든 홈앤쇼핑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 주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K씨로부터 후원금을 받았다가 수천만 원씩 빼앗긴 기업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 조사 과정을 거치며 자신들이 커다란 사기 계획에 휘말렸음을 직감했다.


사회공헌기금

신청 과정 허점투성이


피해기업들에게 후원금을 제공한 홈앤쇼핑은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해 사회시민단체나 기업 등에게 도움을 줘 왔다. 공익 차원이었지만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은 허술했다.

홈앤쇼핑에 따르면 지난 2018년에는 사회공헌기금으로 30억 원을, 2019년에는 35억 원, 올해는 40억 원을 기금으로 모았다. 문제는 지난해까지 사회공헌기금을 전달 받을 회사를 선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는 점이다. K씨는 이런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압수수색 이후 홈앤쇼핑 직원 중 일부는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다. 그중에는 사회공헌기금과 관련해 책임자 자리에 있는 대외협력파트 본부장도 포함됐다. 이 본부장과 K씨의 연관성은 아직 확실히 드러난 것이 없다.

K씨가 기업들과 홈앤쇼핑을 연결해 주는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을 통해서는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K씨는 기업들과 만나면서 홈앤쇼핑 관계자들이 자신과 같은 연대 출신으로 모두 선후배 관계라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치적 배경과 인맥 등으로 자신을 홍보하며 기업인들에게 호감을 산 것으로 보인다.

홈앤쇼핑은 지난해 사회공헌기금 횡령사건이 발생한 직후 사회공헌심의위원회를 만들었다. 기존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 사회공헌심의위원회는 외부인사 3명, 내부인사 1명 등 총 4명으로 구성돼 운영되고 있다.

홈앤쇼핑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은 후원금이 제대로 사용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업들이 후원금을 받아간 뒤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회공헌심의위원회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기금을 받기 위한 특별한 기준도 서류 절차도 필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원금을 받은 기업들 중에는 후원금을 신청할 때 특별한 서류나 사용 계획에 대한 문서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피해자

돈 받은 사실 부인하는 K씨


지난해 10월 홈앤쇼핑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10개월여 동안 약 30개 기업들 관계자를 조사하고 압수수색을 벌였다. 기업들이 K씨와 어떤 관계인지, 홈앤쇼핑 후원금을 어떻게 받았는지, 받은 후원금 중 얼마를 K씨에게 어떻게 빼앗겼는지 등을 조사했다. 또 기업들 통장은 물론 회사 관계자들이 K씨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등도 샅샅이 살폈다.

오랜 기간 경찰 수사를 받아온 기업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기도 힘든 상황에서 후원금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수천만 원씩 다시 빼앗겼으니 충분히 억울할 만한 상황이다.

문제는 경찰 조사를 받은 K씨가 기업들로부터 후원금 중 일부를 돌려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경찰 조사가 마무리 되고 검찰에 기소가 되면 재판 과정에서 치열한 싸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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