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화 찢어 죽이는 잭

많은 사람들이 살인마는 겉보기에 눈빛이 흉악하거나 섬뜩한 살기를 품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들은 의외로 연약하고 선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살인의 심리는 내밀하고 원초적인 것이어서 누구나 갖고 있으나 실행에 옮기느냐 옮기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연쇄살인사건의 경우 처음 시작은 우연이었으나 검거되지 않으면 살인을 계속하게 되고 수법도 점진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연쇄살인 중 더러운 것을 심판한다는 논리로 살인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영국에서 일어난 가장 유명한 살인사건, 일명 난도질 잭, 찢어 죽이는 잭으로 유명한 잭 더 리퍼의 살인사건은 100년이 지나도록 미해결로 남아 있기 때문에 원인과 동기가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잭 리퍼의 범행 대상이 모두 매춘부였기 때문에 사회의 암적 존재를 처벌한다는 광신적 사상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메리 앤 니콜스는 영국 런던의 사창가인 화이트채플에서 매춘을 하는 42세의 창녀였다. 영국은 이 무렵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고 근대 산업국가로 도약하려는 단계에 있었다. 산업혁명은 도시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였지만 또한 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하기도 했다. 농촌에서 대도시 런던으로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 취업을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부산물로 런던에는 수많은 매춘부들이 등장했다. 르네상스시대가 귀족들이 부패한 시대였다면 산업혁명이 이루어진 1800년대는 서민들, 일반 시민들이 부패하는 시기였다. 특히 산업화는 성의 개방을 가져왔고 서민들이 새로운 주체로 떠오르고 있었다.

메리 앤 니콜스는 유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런던의 이스트앤드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이 죽자 그녀는 매춘부로 전락했다.

그러나 매춘부 생활은 비참했다. 거리에 매춘부들이 넘쳐 났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그녀는 손님을 받아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며칠에 한 번 간신히 손님을 유혹하는데 성공하여 돈을 받기 때문에 그녀는 궁핍하게 살았다.

1888년 8월31일 새벽 2시, 메리 앤 니콜스는 런던탑을 바라보면서 손님들을 유혹하기 위해 거리를 배회했다. 매춘부들을 사려는 남자들이 거리에 몰려다니고 있었다. 날씨는 새벽인데도 후텁지근했다. 그녀는 매춘부들 틈에 끼여서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말을 거는 남자도 없었고 그녀의 얼굴을 살피는 남자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42세나 되었고 몸이 뚱뚱했다. 이제는 물러나서 포주 노릇이나 해야 제격인데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아 아직도 매춘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젠장, 오늘도 공치는 건가?’

메리 앤 니콜스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새벽이 되면서 안개가 점점 짙어져 오고 있었다. 안개가 끼면 손님들을 받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뭐야? 안개가 내리잖아?”

“손님도 없는데 안개가 내리면 어떻게 해?”

매춘부들이 여기저기서 안개가 밀려오는 것을 보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메리 앤 니콜스는 매춘부들이 몰려 있는 골목에서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매춘부들이 많은 곳에서는 남자들을 유혹할 수가 없다. 남자들은 젊은 매춘부들과 그녀를 비교한 뒤에 젊은 여자를 사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
었다.

메리 앤 니콜스는 박스라는 거리 못미처에 이르자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이곳은 비교적 한산한 곳이었다. 안개는 점점 짙어져 오고 붉은 벽돌 건물들이 꿈결인 듯 희미해 보였다.

그때 메리 앤 니콜스의 눈이 커졌다. 한 남자가 이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보도블록을 밟는 남자의 구두 발자국소리가 기묘한 여운을 끌면서 들려왔다. 남자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 금줄이 달린 시계가 매달려 있었다.

메리 앤 니콜스는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남자는 그녀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안개와 어둠 때문에 얼굴을 확실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봐요. 재미 보고 가요.”

메리 앤 니콜스는 남자에게 바짝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스커트를 무릎 위로 살짝 걷어 올렸다. 남자의 눈빛이 화살처럼 날아와 그녀의 허벅지에 꽂혔다. 어두운 것이 오히려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어둠 때문에 남자는 그녀의 나이에 대해서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미라고 했나?”

남자가 웃으며 물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음산한 목소리였다.

“그래요. 나를 음미해요.”

메리 앤 니콜스는 스커트를 더욱 바짝 걷어 올렸다. 사내가 그녀에게 바짝 다가왔다. 메리 앤 니콜스는 사내가 닿을 듯이 가까이오자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여기서도 괜찮은가?”

남자의 손이 그녀의 엉덩이에 닿았다. 착각이었을까. 메리 앤 니콜스는 그 순간 남자의 손이 파충류의 촉수처럼 차고 미끌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메리 앤 니콜스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녀는 돈이 다급했다. 남자가 파충류라고 해도 그에게 몸을 팔아서 돈을 받아야 했다.

“그럼요. 어디서든지 환영이에요.”

“잘 됐군. 사실은 나도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여기에 왔어.”

“호호호. 그러시다면 저를 잘 만난 거예요. 저는 남자들에게 서비스를 잘 해요.”

메리 앤 니콜스는 유쾌하게 웃었다. 이런 남자라면 상당히 많은 돈을 화대로 지급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리를 옮길까?”

남자가 물었다.

“어디로요?”

“저쪽… 사람들이 없는 곳이 있어. 여기는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싫어.”

남자가 턱짓으로 박스가(街)를 가리켰다. 박스가는 사람들이 좀처럼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다. 공장지대가 밀집해 있어서 높고 긴 담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남자가 그곳으로 가자고 말한 것은 으슥한 곳에서 섹스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메리 앤 니콜스는 생각했다.

사내는 메리 앤 니콜스와 함께 박스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인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앞을 보고 걸음을 또박또박 떼어놓았다. 메리 앤 니콜스의 얼굴에서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어디까지 가는 거죠?”

메리 앤 니콜스가 물었다. 거리는 점점 으슥해지고 있었다. 밤안개는 지척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자욱하게 깔렸다. 남자의 얼굴조차 또렷이 보
이지 않았다.

“여기가 적당하겠군.”

사내가 걸음을 멈췄다. 메리 앤 니콜스도 걸음을 멈추고 사내를 쳐다보았다. 사내가 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그녀는 이제 사내가 주머니에서 화대를 꺼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내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날이 예리한 비수였다. 어둠 속에서 비수의 날이 하얗게 빛을 뿌렸다.

‘아!’

메리 앤 니콜스는 자신도 모르게 낮게 비명을 삼켰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내는 번개처럼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입을 틀어막은 뒤에 목을 찔렀다. 그녀는 눈앞으로 붉은 빛이 가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메리 앤 니콜스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이날 새벽 4시였다. 잭 리퍼가 범행을 저지른 지 불과 2시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바닥에 낭자한 핏자국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밤안개 때문에 시체의 모습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플레시를 이용하여 시체를 살피자 목이 반쯤 잘려져 있었고 복부가 참혹하게 난자되어 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지?”

런던 경시청의 헨리 경감은 현장에 도착하여 참혹한 시신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미치광이 같은 놈입니다. 미치광이가 아니면 이런 짓을 할리가 없습니다.”

피들러 경관이 대답했다.

“강간했는지 자세히 살펴보게.”

피들러는 메리 앤 니콜스의 옷을 벗기고 국부를 세밀하게 검사했다. 그러나 강간당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신원은 금세 파악되었다. 많은 매춘부들이 그녀의 신원에 대해서 증언했다. 경찰은 메리 앤 니콜스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소행으로 생각했다. 매춘부들과 손님들 사이에는 항상 잦은 마찰이 있었다. 돈을 더 뜯어내려는 매춘부들과 돈을 받은 뒤에는 손님들을 경멸하는 매춘부들로 인해 마찰이 잦았다.

“이봐. 메리를 죽인 놈은 미치광이야. 미치광이를 본 일이 없어?”

경찰은 형식적인 조사를 했다. 사건이 엽기적이기는 했으나 피해자가 매춘부였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메리 앤 니콜스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런던 경찰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된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 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매춘부들을 증오하는 사람이다. 세상을 더럽히는 매춘부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매춘부를 죽였다. 앞으로도 살인은 계속된다. 나는 더
러운 매춘부들을 잔인하게 살해할 것이다. 그 더러운 암캐들의 목젖을 찔러 쓰러트린 뒤에 배를 찢어발길 것이다. 매춘부를 살해한 잭 더 리퍼로부터.

경찰은 살인자로부터 편지가 날아오자 긴장했다. 살인자로부터 대담하게 경찰에게 편지가 날아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잭 리퍼는 앞으로 사건이 더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게다가 경찰을 우롱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찰은 살인마 잭 리퍼의 편지를 믿지 않았으나 수사에 참여하고 있는 헨리 경감은 불안을 느꼈다. 범인은 도착적인 성격이거나 변태성욕자다. 메리 앤 니콜스의 살인은 시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메리 앤 니콜스는 스커트가 밑으로 벗겨져 있었다. 하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으나 난행을 하지는 않았다. 메리 앤 니콜스를 죽인 것이 강간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다.

헨리 경감은 화이트채플 일대를 오가는 남자들을 세밀하게 조사했으나 범인에 대해서 윤곽조차 잡을 수 없었다. 1880년대라 지문을 채취하거나 담배꽁초, 타액, 발자국 등 범인의 유류품을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시의 수사는 알리바이, 목격자, 살인동기 등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사건 당일은 안개가 자욱했고 우범지대인 사창가에는 목격자가 없었다. 헨리 경감은 메리 앤 니콜스 살인사건에 대대적으로 경찰을 투입했다. 경찰은 그날 밤에 화이트채플의 매춘부들과 관계한 남자들도 모조리 조사하고 매춘부들의 기둥서방이나 포주들도 일일이 소환하여 알리바이를 추궁했다.

“너 그날 밤에 뭘했어?”

“뭘하긴 뭘해요? 집에서 잤지.”

“이거 왜 이래? 자네가 그날 밤에 화이트채플의 창녀촌에서 기웃거리는 것을 본 사람이 있대.”

“생사람 잡지 말아요.”

용의자들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져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메리 앤 니콜스가 죽은 지 9일째 되는 날이었다. 47세의 매춘부인 애니 채프만은 거주하던 싸구려 여관에서 쫓겨나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핵과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는 불행한 여인이었다. 여관 주인은 방세를 내지 못하는 그녀를 가차 없이 내쫓아 그녀는 노숙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도 겨울철에 쫓겨나지 않고 초가을에 쫓겨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여보세요. 재미 좀 보고 가요.”

애니 채프만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남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들을 유혹할 수가 없었다. 나이도 있고 결핵과 영양실조로 노파처럼 쭈글쭈글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애니 채프만에게 남자들이 섹스를 하려고 할리가 없었다. 그녀는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어떻게 하든지 남자들을 유혹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헛된 노력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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