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조각으로 DNA판별, 실종자 신원확인


백화점 붕괴 사건

“여러분, 저희는 DNA 감식기법을 이용하여 여러분의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아이들의 영령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가족들은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처참한 사고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그들은 우리가 과연 시신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뼛조각만 남았거나, 이미 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시신을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유가족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유가족들은 넓은 대학 강당에서 밤낮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그들 앞에서 말했다.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안심시켜 그들의 마음고생을 다소나마 덜어주고 싶었다. 어처구니없이 가족을 잃어버린 그들은 시신이나마 한시라도 빨리 찾고 싶었을 것이다. 가족들의 비통함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박함 그 자체였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경 강남구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점이 순식간에 붕괴됐다는 뉴스속보를 들었다. 어떻게 백화점이 무너질 수 있는가. 나는 귀를 의심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부상 930여 명, 사망 450여 명, 실종 110여 명(사고 발생 1개월 후 집계 된 사상자)으로 단일사고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참사였다.
나는 이 사건에서 DNA분석에 의한 유해의 신원확인 업무를 주관했다. 시신의 발굴은 사고 발생 1개월이 지난 후에야 시작되었다. 대량 재난구조체계가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의 경찰, 검찰, 군, 소방국, 의료지원반, 자원봉사자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국가의 비극인 대형 참사를 타개해 나가려 했다.
나는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사고현장 부근의 대학 강당으로 향했다. 발굴 현장 주변은 꽤나 복잡했다. 발 들여놓을 틈조차 없을 만큼 관련 협조기관들은 천막을 사고본부로 이용하며 구조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날씨는 8월 한여름, 그야말로 찜통 더위였다.
대형 참사에서 시신의 신원확인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때 육안식별 및 기타 상황판단으로 신원식별이 어려운 시신에 대해서는 법과학적 방법이 총동원된다.
첫째, 일반적인 방법으로 현장검사와 의복, 유류품, 휴대 장신구에 의한 식별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참고자료로 활용할 뿐이다. 유류품, 휴대품은 같은 종류도 많고, 때로는 뒤바꿔 휴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지문검사가 있다. 셋째, 성별, 연령 및 신장을 추정하는 인류학적 검사, 넷째, 시신 내외부를 검사하는 법의 부검 및 병리학적 방법, 다섯째, 치아의 특징을 검사하는 법치학적 방법, 여섯째, 혈액형을 검사하는 혈청학적 방법, 그리고 생존했을 때의 사진과 두개골 사진을 중합시키는 슈퍼임포즈(superimpose)방법 등의 결과를 종합 검토한 후 최종 신원을 확인한다.
단, 이들 검사방법들은 시신의 훼손이 심해 일부만 남아 있거나 부패나 화재에 의해 따로 떨어진 형태로 남았을 경우에는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다. 이때는 오로지 DNA분석기법을 이용해 신원을 밝힐 수밖에 없다.
DNA를 이용한 신원식별의 역사는 불과 10여 년 정도다. 그러나 최근 DNA 분석기법의 눈부신 발전으로 범죄 해결을 위한 범인식별은 물론 오래된 유골의 신원확인과 친생자 감정, 그리고 인류의 기원 등 계통발생학적 연구에 이용되고 있다. 게다가 인간 게놈(genome)의 완전해독 등 그 적용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하다.
개인식별법은 DNA 염기서열이 사람마다 반복되는 횟수에 따른, 이른바 반복염기서열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DNA 좌위(座位)를 검출하여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때 분석으로 의뢰되는 것은 시신조각이다. 시신조각이란 주로 뼛조각의 형태며, 일부 두피가 붙어있는 머리카락이 감정의뢰된다. 뼛조각일 경우에는 골수를 꺼내 DNA를 분리하고, 머리카락의 경우에는 뿌리세포에서 DNA를 추출하여 DNA형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한편, 신원확인은 실종자 유가족 모두의 DNA형을 판정해 가족관계의 성립 여부를 비교해야만 가능하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을 경우, 자녀의 시신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DNA유전형질은 부모로부터 동등하게 대립 유전자 한 개씩을 유전 받는 감정의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편부, 편모일 경우에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부의 형제, 모의 형제들의 혈액을 통해 DNA형을 분석해야만 정확한 신원확인이 가능하다. 따라서 고아의 경우에는 대조할 가족이 없기 때문에 DNA분석은 의미가 없다. 이런 경우, 두개골이 존재할 때에 한하여 장본인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제공받아 슈퍼임포즈 방법으로 두개골의 사진 필름과의 일치여부를 검사하여 신원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백화점 붕괴당시의 기후와 주위 환경조건은 최악의 상태였다. 장마철이라 날씨는 무덥고 습해 시신의 부패는 가속화되었으며, 생존자 구조 등의 문제로 시신의 발굴은 한 달이나 늦어진 상황이었다.
또한 대부분이 압사된 시신조각의 형태로 방치되었기 때문에 시신의 상태 역시 최악의 조건이었다. 국과수에서는 불가피하게 DNA 분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결정하고 실험 일정을 장기적으로 세웠다.
사고현장에서 117건, 난지도 매립지에서 152건, 총 269건의 시신조각 및 골격편들이 발굴되어 분석 의뢰되었다. 국과수에서는 일부 대학 및 DNA 감식기관까지 합류하여 DNA분석에 의한 신원확인 업무에 박차를 가했다.
밤낮없이 6개월이란 기간 동안 연구원들은 국과수 부검실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시료 채취는 계속되었고, 분석된 시료의 DNA형으로 그 형이 일치하는 시신조각들을 신체 각 부위별로 재조합하여 결국 1구의 유해로 확인한 후 유가족에게 인도했다.
최종 109명의 실종자 유가족들에게 최소한 한 조각의 시신 내지 여러 형태의 시신의 상태로 총 79명의 시신을 인도했다. 끝내 확인되지 않은 30여 명의 실종자는 주로 난지도 매립지에서 발굴된 골격편 및 모발 등의 심한 부패와 오염 때문에 DNA분석이 불가능해 확인할 길이 없었다. 물론 시신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아 의뢰되지 않은 시신이 있으리라는 것도 배제할 수 없었다.
DNA분석업무는 결코 쉽지 않았다. 대형 백화점이 일시에 와르르 붕괴될 당시의 시간은 백화점 손님들이 가장 많은 저녁 시간대였다. 탑승자 명단이 확보되는 항공기 추락사고와는 달리 사고 당시 백화점 출입고객의 명단이 있을 리 없다. 그저 불특정 다수의 생명이 무작위로 희생을 당했기 때문에 신원확인이 어려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해 12월 말까지 확인되지 않은 시신은 최종 합동장례로 끝을 맺고 ‘사망인증위원회’라는 한시적인 기구에서 실종자 유가족을 국가에서 인증함으로써 백화점 붕괴사고의 신원확인 업무는 모두 종료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우리나라 재난관리법이 새로 입법화되었고, 그 세부 시행령, 시행규칙까지도 1995년 7월 8일자로 발효되었다. 부실공사로 인한 건물의 붕괴는 영원히 없어야 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대형 참사가 예기치 않게 발생했을 때는 신속한 긴급 구조체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고 발생의 신속한 전달은 기본이다. 구조활동, 사고수습, 사고 원인의 규명, 인명 구조체계, 사망자의 신원확인 등이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 운영될 때만이 그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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