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희 선생 사망 비보에 김두한은 땅을 쳤다 이 때 연락을 받고 달려온 김두한의 부인 이재희 여사와 참모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아, 김관철씨!”김두한의 부인인 이재희 여사가 금방 눈에 눈물이 글썽이며 말했다.“관철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그러자 이젠 김두한의 참모 하나가 나서며 말했다. “ 이 새끼, 너 사람이 뭐 그래?”공기가 갑자기 험악해지자 사찰주임이 끼여들어 말했다.“이러지들 마시오. 폭력을 쓰면 모두 잡아 넣겠소!”사찰주임의 중재로 김두한의 참모들은 다소 누그러졌다.아무튼 그 자리에서 김관철은 김두한의 부인 이재희 여사와 참모들의 설득으로 검찰에 송치되어 있는 김두한과 대질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그 때 서대문 구치소에 갇혀 있는 김두한은 김두한대로 김관철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하고 있었다.(그 놈이 설마 나를 찍어서 살인미수죄로 고소를 했을까? 아니야, 그럴리 없어. 관철이는 의리를 아는 놈이니까…)그러나 막상 서대문 형무소 소장의 부속실에서 김관철과 대질 신문이 이루어지자, 김두한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말았다.

“이봐! 관철아, 이 새끼야! 내가 뭐 살인미수를 저질렀다고?”끓어오르는 격정을 참지 못한 김두한이 미처 대질 신문을 하기도 전에 들어서는 김관철을 향해 일격을 가해 쓰러뜨리고야 말았다.소장 부속실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화가 난 김관철은 대질신문에 응할 수 없다면서 소장 부속실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이 예기치 않았던 실수로 김두한은 살인미수 혐의가 풀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만 셈이다.(아아, 내가 잘못했구나. 왜 좀 더 침착하지 못했을까?)김두한은 몇 번이나 자기의 경솔했음을 후회했으나, 원님 지나간 뒤의 나팔일 뿐이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김두한이 엉뚱한 죄목으로 서대문구치소에 갇혀 있는 동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불행한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것은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당당히 현직 대통령인 이승만과 겨루어 정권 교체 일보직전까지 육박했던 해공 신익희선생이 뜻밖에도 호남선 열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비보였다.(아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렇게도 건강하시고 소탈하셨던 분이셨는데….)김두한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히고 하늘이 노래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이 땅의 민주주의가 이번에 비로소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는가 싶었더니, 이 무슨 변괴란 말인가?)김두한은 구치소 안에서 땅을 치며 통곡했다. 그 통곡소리는 맹호의 포효소리 그대로였다.일이 이처럼 허무하게 끝나고 말자 자유당이나 경찰에서도 더 이상 김두한을 붙잡아 둘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병보석이란 이름으로 김두한을 석방해 주었다.(정치란 이런 것인가? 아아,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김두한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구치소 문을 나섰다.

■법정에서의 두 사내의 눈물
부산행 야간 열차가 막 서울역 플랫폼을 출발하고 있었다.“잠깐!”몸집이 우람한 사나이가 달리는 열차를 향해 뛰어갔다.“위험해요! 위험합니다!”열차를 출발시키던 조역이 위험신호를 보내며 소리쳤지만, 사나이는 들은 척도 않고 다리는 열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동시에 그 사나이는 “휘유우!”하고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플랫폼에 남은 조역이나 똑같이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하마터면 차를 놓칠 뻔 했군!”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혼자 중얼거리는 사나이, 그 거구의 사나이는 바로 김관철이었다.김관철은 서대문 구치소에 갇혀 있던 김두한이 병보석으로 풀려 나왔단 소리를 듣고 급히 은신해 있던 청진동 소실 댁을 뛰쳐나와 부산행 열차를 탄 것이다. (내 이 무슨 꼴이람! 죄가 있다면 술 좋아한 죄밖에 없는데…)이렇게 마음속으로 뇌까리면서 김관철은 칠흑처럼 어두운 차창밖에 눈길을 던졌다.어두운 창밖으로 지나치는 무수한 검은 그림자 그 그림자들 중에서 단장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놈! 이 비겁한 배신자야, 어디로 도망가니?)김두한 단장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아니오! 아니오. 나는 결코 비겁하거나 배반자가 되어 도망치지 않소!)김관철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거짓말 마! 이 자식아)김단장이 두 눈을 부릅뜨고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거짓말이 아니오! 나도 단장님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답니다. 그러나 당장에 달려가 만나지 못하는 내 고충을 이해하여 주시오)(이해못해! 너같은 배신자는 죽어야 해!)김두한 단장은 여전히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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