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일찌감치 해외국감을 취소했다. 해외국감은 보좌진들이 국회의원들과 함께 국감장에 가지 않기 때문에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보좌진들은 1년 중 얼마 안 되는 푹 쉴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러한 달콤한 유혹 때문인지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이 다른 상임위 보좌진에 비해 인기가 높은 편이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그러한 기회를 박탈당했다. 거기에 더해 거대여당의 엄호로 밋밋한 국감이 될 것을 우려한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일거리를 더해 주었다.

7일부터 시작된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국민들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해외여행 등 외부 활동을 자제하시는 가운데 제 남편이 해외로 출국한 것에 대해 경위를 떠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며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선제적으로 사과를 한 이유는 그의 배우자가 개천절 집회 문제와 나훈아 콘서트로 세상이 시끌벅적한 틈을 타, 지난 3일 요트 구입과 자유여행을 목적으로 미국으로 출국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KBS가 이 사실을 단독 보도했는데 개인의 사생활을 낱낱이 들춰내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일까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배우자가 현직 외교부장관이라면 공익에 부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 외교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 자제를 권고하는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린 상황에서 현직 외교부장관의 배우자는 매우 당당하게 KBS의 취재에 응하면서 미국행이 자유여행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에게 자신의 배우자인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입장을 고려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전적 의미의 상남자(上男子)인 것 같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배우자의 미국 출국에 대해 흥미로운 여론조사가 있었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실시한 10월 첫째 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강경화 외교부장관 남편의 미국 출국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52.5%가 미국 출국이 문제 될 게 없다는 취지로 응답했으며, 34.5%는 미국 출국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응답했고, 잘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은 13.0%였다.

이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들이 외교부장관 배우자의 자유여행을 위한 미국 출국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우 부적절하다는 필자의 생각은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소수의견이었던 셈이다. 여론조사 설문에 문제가 있지 않나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로 대통령의 레임덕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고,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즐기려는 속셈이 스며 있는 여론조사 결과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경화 외교부장관에 대한 책임론은 야당과 언론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책임론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당은 외교부장관 배우자의 미국 출국이 불법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논리일 뿐이다. 필자는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배우자의 미국 출국을 완곡하고 간곡하게 만류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나 그러한 만류가 실패한 이상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책임을 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부부 관계를 끊고 국익을 위해 외교부장관에 매진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외교부장관을 사퇴하고 가족을 지키는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장인의 빨치산 활동으로 야당의 공격을 받자 “그러면 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했고,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나선 김부겸 후보는 처남의 극우 활동이 논란이 되자 “나더러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남편을 버리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그러니 스스로 외교부장관직을 버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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