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댐 주변의 한 시골 마을, 십수년 동안 수자원공사와 환경청으로부터 받고 있던 지원금 실체에 대해 주민 대다수가 모르다가 최근에서야 실체를 알고는 평온하던 농촌마을이 뒤집어졌다. 그 마을엔 없고 다른 마을에는 다있던 공동 농기계가 모두 이장과 그 지인의 가구에서만 20개가 넘게 발견된 것이다. 20여 년 동안 한 번도 지원금과 관련된 마을 회의가 없던 데다가 전체 13가구 중 오직 3가구만이 공동 농기기계를 사유화하면서 면세유까지 받아 왔으니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분노의 메아리가 울려퍼질 만하다.

국민의 혈세가 쌈짓돈처럼 줄줄이 새고 있는 현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농어촌에서도 도시에서도 정부 보조금과 지원금은 ‘눈먼 쌈짓돈’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보니 부정 수급의 현장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포항에서는 갯바위닦기 사업 지방보조금의 절반가량을 부정수급한 혐의로 어촌계 58곳이 수사를 받았고, 대구에서는 복지 관련 보조금을 관리직 직원들에게 관리업무수당으로 매달 지급한 뒤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횡령하다 적발되었다.

정의기억연대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양로시설인 나눔의집 회계부정 사건으로 촉발된 부정수급 문제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죽은 사람에게도 월급을 주다 적발되고 가족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다 발각되는 등의 부정 의혹이 2년간 1만여 건이나 된다고 하니 가히 구멍이 뚫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2018년부터 국고 보조 사업을 모니터링해 부정 의심 사례를 적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과부적이다. 시민단체에서부터 시골마을에 이르기까지 만연된 부실 회계 관행에 어느 곳 하나 의심의 눈을 거둘 수 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에 이런 부정수급이나 회계부정 현상이 ‘풍조’라고 할 만큼 만연되었을까. 

부정으로 적발되어도 실제로 정부 보조금을 반환하거나 제재를 받은 사례는 1.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난 것이 표면상 이유가 될 것이다. 혈연·지연 등에 따른 온정주의에 의해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도 적발만 해 놓고 사실상 묵인하거나 코로나 여파 등 외부적 변수에 의한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편승해 매년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사후관리에는 소홀한 측면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실제 기획재정부도 사업을 모니터링해 의심 사례를 해당 부처나 지자체에 통보할 권한만 있을 뿐, 보조금을 강제로 반환하거나 직접적으로 시정 조치를 할 권한도 없는 게 현실이다.

원론적이지만, 만연된 부정이 재발하지 않도록 통제하려면 기부금이나 보조금을 받는 대상에 대한 회계 보고를 미국 수준으로 개별 사용 내역과 1원 단위까지 상세히 보고하도록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현재로서는 보조금을 받는 대상 스스로가 세부적으로 공시를 하지 않는 이상, 후원금이 얼마나 들어왔고 어디에 쓰였는지 알 길이 없다. 경기부양책이나 지역사회나 직능, 이익단체 등의 여론에 떠밀려 정부보조금 역시 정부가 돈을 보조하기는 했지만 불필요하게 간섭한다는 비판이 두려운 나머지 세부적인 사용 내역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다.    

만연된 고리를 끊을 해법은 뭘까? 기부금을 모집하는 단체는 의무적으로 공신력 있는 외부 기관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무소불위 권력에 이르렀다고 비판받는 일부 시민단체도 법개정을 통해 관리감독을 강화한 사립유치원처럼 국가관리회계시스템 등을 제정하여 상시적으로 관리 감독하고, 위반 시 처벌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혈세로 집행하는 정부보조금은 미국의 사례처럼 시민단체들이 매 회계연도마다 결산서 등 세부목록을 정부 관련부처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제도화하고, 정부는 세부목록을 평가하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공시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독일에서 시행하듯이 시민단체들의 회계감사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비영리기구를 통해 관리 감독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제도보다 과도한 국가채무 시대에 소중한 국민의 혈세를 집행하는 보조금에 대해 투명하게 집행하고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성숙한 의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눈먼 돈, 쌈짓돈” 식의 인식이 지금처럼 만연되어 퍼지는 한 그에 비례하여 분노의 메아리도 끊임없이 울려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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