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습니다.”
소령의 말소리가 떨어지자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종문 본부장이 물었다.
“냉동이 풀리기 전에 파괴시켜야 합니다.”
“파괴시킨다고요?”
경찰청장이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소령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종문 본부장에게 물었다.
“저놈을 우리 부대에 가져가서 처리하는 게 원칙입니다만 워낙 민감한 폭탄이라 여기서 처리해야겠습니다. 가는 동안에 냉동이 풀릴 가능성도 있어서요.”
“여기서 터지면 큰일 아닙니까?”

이종문 본부장의 얼굴이 굳었다.
“사방 50미터만 확보하면 됩니다. 저기 주차장 옆 공터를 사용해야겠습니다.”
곧이어 폭탄차가 주차장 옆 공터로 이동했다. 잡풀이 간간히 나 있는 나대지였다.

“이제 빨리 주제어센터에 있는 한 차장을 구출하시지요. 오늘 당번 발전부원 6명은 제자리로 복귀시키고요.”
이 본부장이 김용소 발전부장에게 지시했다.
공터에 들어선 폭탄 차는 공터 한 복판에 검은 상자를 내려놓았다.
“준비 완료!”

차에서 내린 병사 두 명이 차렷 자세로 보고했다.
방독면처럼 생긴 마스크와 육중해 보이는 방폭 복장이었다. 로마 격투장의 검투사 같았다.

“물대포 실시!”
소령이 명령하자 폭탄차에서 벼락치는 소리를 내며 불꽃인지 포탄인지 모르는 물질이 튀어나와 검은 상자를 박살내 버렸다. 검은 상자는 여러 조각으로 박살나서 흩어졌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포를 쏜 것입니까?”
이종문 본부장이 물었다.
“예. 물대포를 쏜 것입니다. 고체가 닿으면 폭발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압력이 엄청나게 센 물대포를 쏘아서 분해시킨 것입니다.”
“아니, 물 힘이 그렇게 센가요?”

이 본부장이 혀를 내둘렀다.
“군에서 흔히 쓰는 방식입니다.”
처리반 병사들이 능숙한 솜씨로 폭탄의 파편을 주워 모았다.
“작전 끝!”

폭발물 처리반 장교가 소령에게 보고했다. 
“폭탄 분석 결과는 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소령이 비상대책 지휘부를 향해 거수경례를 붙였다.
그때 한수원이 뛰어왔다.

“한 차장, 살아서 왔구먼.”
이종문 본부장이 활짝 웃음을 띠며 박수를 쳤다. 모두가 따라서 뜨겁게 박수를 쳤다.
수원은 쑥스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주영준 차장은 함께 간 티를 내지 않고 멀찌감치 물러서서 박수 받는 수원을 지켜보았다.

11. 국제 조폭의 그림자

폭발물 사건 이후 수원은 회사 내의 인기 스타가 되었다. 본사에서도 수원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높이 사 포상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문이 났다. 움직일 때마다 화제의 대상이 되니 수원은 불편하기까지 했다.

회사는 경비를 더욱 삼엄하게 하고 보안 점검을 시간마다 실시했다.
“신용우라는 사원은 어디 소속이었나요?”
수원이 영준에게 물었다.

“화학기술부 소속인데 착실한 사람이라 평판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아직 소식이 없나요?”
“여전히 행방불명입니다.”
“사고 전날 독감으로 못 나온다고 연락했다면서요?”

“그렇게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화학기술부장이 전화를 받았는데 나중에 조사해 보니 본인의 핸드폰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옆방에 있는 사원 말로는 아침에 유니폼을 입은 채 황급히 어디론가 나가더랍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요즘 수상한 일이 자꾸 일어나고 있는 것이, 조만간 뭔가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외부인이라면 그렇게 쉽게 폭탄 설치 장소까지 갈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아무 눈에도 띄지 않고 그렇게 재빨리 일을 처리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내부 사정이나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이 개입돼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영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방사성 폐기물 처리로 마찰이 있지 않았나요?”
수원이 물었다.

“주민들과 보상 문제로 마찰이 좀 있었지만 모두 원만히 해결됐습니다. 이제 방폐물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주민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긴 중저준위 폐기물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럼, 그것 때문도 아닐 테고...”

그 때 영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한참 동안 통화를 하고 난 영준이 수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문동언 경위였습니다.”

영준이 앞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폭탄 분석 결과를 군에서 알려 왔답니다. 추측이 모두 맞았답니다. 핸드폰 칩을 사용해 뇌관에 불을 붙이도록 했고요, 수신 기능만 가능하도록 간단하게 변형한 핸드폰이었다고 합니다.”

“핸드폰 관련 기술자가 개입되었겠군요.”
“그렇습니다. 문 경위는 안토니오 클럽의 이경만이 동원됐을 거라고 생각하더군요. 이경만은 평소에도 핸드폰 변조, 복사 등 불법행위를 해온 모양입니다.”
듣고 있던 수원이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면 제가 잘못 눌렀던 그 리모컨도 이경만이...”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리모컨은 금고용 번호 자물쇠를 변형해 만든 것이었답니다. 거기에 송신 기능만 있는 칩을 부착한 것이지요. 수신이나 다른 기능은 전혀 없는 간단한 핸드폰이라고 보면 됩니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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