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인환 묘소 [사진=박종평 기자]
시인 박인환 묘소 [사진=박종평 기자]
소나무 아래 화가 이중섭 묘소 [사진=박종평 기자]
소나무 아래 화가 이중섭 묘소 [사진=박종평 기자]
중랑전망대에서 본 서울 [사진=박종평 기자]
중랑전망대에서 본 서울 [사진=박종평 기자]

선을 넘나드는 사잇길, 그와 나 사이에 설 수 있는 곳

[일요서울ㅣ박종평 객원기자] 귀신도 설 자리를 잃은 듯하다. 낯선 길, 낯선 곳, 어둔 밤 주인공 귀신까지 이젠 비정규직이 된 듯하다. 수많은 죽음과 죽임이 연일 폭우처럼 부어댄다. 버려진 사람들은 더 버티지 못하고 있다. 죽임을 대량생산하는 극단의 증오와 차별이 난무한다. 아무 이유 없는 죽임도 빈번하다. 귀신만도 못한 산 사람이 넘쳐 귀신조차 밀려났다. 볼썽사나운 도시 괴담, 소름 끼치는 가짜뉴스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외국 귀신 좀비까지 우리 옷을 입고 스크린과 안방을 점령한다.

몇 년 전에까지 서울에는 귀신이 곧잘 언급되던 동네가 있었다. 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있는 망우리이다. 그곳에서 혹은 그곳을 지나다가 귀신을 보았거나, 만났다는 이야기가 넘쳤다. ‘망우리’는 ‘공동묘지’와 동의어 같았다. 과거형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수십 년 동안 찍힌 낙인이 이젠 옛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귀신이 망우리를 떠나고, 대신 다양한 경계 위에 설 수 있는 사잇길이 나있다. 서울시와 경기도, 고인(古人)과 고인(故人), 그리고 우리 사이의 사잇길이다. 어제와 오늘을 걷고 그와 나 사이를 걷을 수 있다.

가을이 서럽거든, 삶이 아프거든 망우리로 가자

손수호 인덕대 교수는 지금의 망우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가을이 서러움을 넘어 고통스럽게 다가오면 망우리공원으로 가라. 산 자가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생의 의미를 되짚는 성찰의 공간이 거기에 있다. 때론 슬픔의 심연 앞에서 목 놓아 울 수도, 옷에 묻은 먼지를 털 수도 있다. …… 이름 없는 시민, 독립투사, 예술가, 정치인, 과학자, 의사, 가수 등 다양한 사람이 함께 안식하는 역사교육의 현장! 죽음의 공간에서 빛을 찾는 경건한 공부방이기도 하다.”(손수호, 「가을이 서럽거든 망우리에 가자」, 국민일보, 2013.11.02.)

손 교수의 말처럼 망우리로 떠나자! 망우리를 가는 길은 아주 많다. 광진구에서 출발해 아차산을 넘어가는 길, 면목동과 상봉동에서 가는 길, 경기도 구리시에서 올라가는 길 등이 있다. 어느 코스를 택하던 망우리는 등산객, 산책자, 사색가, 마라토너, 관찰자, 역사가 그 모두를 다 품는다. 그 길에 선 모든 이들은 망우리로 한마음이 된다. 편안히 산책하고 싶은 사람들은 서울 지하철 기준으로 상봉역이나 망우역 등에서 내려 구리시 방향 버스를 타고 ‘동부제일병원․망우리공원’ 정거장에서 내리거나, 아예 망우리 고개를 넘자마자 첫 번째 정거장(딸기원 서문, 51번)에서 내리면 된다.

망우리공원의 진면목을 접하고 싶다면, 망우리 고개 너머 첫 정거장에 내려 샛길로 가는 코스를 권한다. 손바닥만 한 평지에 펼쳐진 평범한 이웃들의 구획되지 않은 소박한 묘소와 묘비들이 있다. 사람마다 울림이 다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번개가 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묘비가 눈에 띌 것이다. 5분 정도 오르면 공원주차장에 이른다. 주차장 주변의 첫 느낌은 묘지 사이 샛길이 주었던 투박함과 스산함을 단번에 깨버린다. 그 어디에도 묘지가 보이지 않는다. 울창한 숲만이 보일 뿐이다. 시력 좋은 사람만이 나무 사이에 언 듯 묘지를 볼 수 있다. 각양각색의 등산복과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붐빈다. 여느 산과 다름없으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듯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안내판, 문학적인 이정표가 반긴다. 

망우리 사잇길 표지판 [사진=박종평 기자]
망우리 사잇길 표지판 [사진=박종평 기자]
독립운동가 박찬익 비석 옆면 [사진=박종평 기자]
독립운동가 박찬익 비석 옆면 [사진=박종평 기자]

근심을 잊는 곳, 망우(忘憂)

지난 9월 26일에는 “순국 제100주기 유관순 열사 추모식”, “망우, 힐링산책” 등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유관순 열사가 이곳 망우리 한 켠에 계신다고 알려진 뒤, 유 열사의 성지(聖地)로 인정되었고, 그에 따라 추모식이 거행됐기 때문이다. “망우, 힐링산책” 현수막의 부제는 ‘역사와 해설과 음악과 풍경이 함께하는 망우산 문화의 숲길 산책’이다. 주제와 부제 모두에 공동묘지 또는 묘지란 표현이 없다. 그저 ‘망우’만이 있다. 네이버지도에도 “망우리공동묘지”라는 표현은 없다. “망우리공원”이다. 최근에는 역사공원으로 탈바꿈 중이다. 망우리에서는 이제 구시대 괴담 공간인 공동묘지 모습을 찾기 어렵다.

망우리의 ‘망우(忘憂)’는 ‘걱정을 잊는다’는 뜻이다. 태조 이성계가 묏자리를 찾고 난 뒤에 이 망우리 고개에 올라 내려다보며 “이제야 근심을 잊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유래된 지명이라는 설이 있다. 그 묏자리가 구리시 동구릉이다. 지명 유래가 어떻든 ‘망우’는 어쩌면 모든 이의 꿈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자신을 표현한 말이 나온다. “마음먹고 빠지면 먹는 것을 잊고 빠진 것에 즐거워 온갖 걱정을 잊기에, 늙음이 곧 닥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공자의 ‘망우’는 태조 이성계의 망우와 다르다. 진리를 찾고, 지혜를 추구하고, 치열하게 사는 과정에서 얻는 ‘망우’이다. 오늘 하루 충실한 삶이 만들어주는 ‘망우’다. 망우리 고인(故人)들의 삶 역시 공자의 ‘망우’를 살다간 사람들이다. 모든 삶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그들 홀로 쓰는 최고의 소설이며, 드라마, 영화이다. 남들의 평가, 사회적 명성, 빈부, 계층과 계급과도 관계없다. 생명에 높낮이가 없고, 삶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가을 망우리를 말했지만, 망우리는 사시사철 그 어느 때라도 멋진 곳이다. 봄에는 벚꽃 꽃비를 맞으며 걸을 수 있다. 초여름에는 망우초(忘憂草, 원추리)에서 활짝 핀 ‘망우꽃’이 무덤가 곳곳에서 손짓한다. 겨울에는 스산한 북풍에 몸을 실어 에너지를 응축해, 끝내는 생명을 잉태하는 축적의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색깔과 느낌, 갖가지 사연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는 곳이다. 그곳이 망우, 망우리이다. 망우하며 걷다 보면, 교과서에서 보았던 근현대 주요 인물들도 만난다. 망우에서 그들도 평범한 이웃들과 함께 쉬고 있는 곳이다. 망우리에 관한 최초의 인문학 서적을 저술한 김영식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곳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비문을 읽었다.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듯 이곳에서 죽음을 통해 삶을 발견했다. 고인이 묘비에 남긴 글을 읽으며 그와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 유명 무명의 독립지사뿐 아니라 친일과 좌익의 멍에를 짊어진 죽음, 시대가 만든 억울한 죽음도 있다. 당대 최고의 시인, 소설가, 화가, 작곡가, 가수, 의사, 학자, 정치가 등 다양한 삶이 있다. 또한 비록 대중의 기억 속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지만, 저마다 사연이 있고 살아남은 사람의 마음속에 연민과 사랑을 새긴 그 시대의 수많은 보통사람이 함께 있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고인을 찾았는가, 고인이 나를 불러주었던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으며, 그가 내게 하려는 말이 무엇이었을까.” (김영식,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 호메로스, 2018)

공원내 명언판 [사진=박종평 기자]
공원내 명언판 [사진=박종평 기자]
구리(한강)전망대에서 본 구리와 서울 [사진=박종평 기자]
구리(한강)전망대에서 본 구리와 서울 [사진=박종평 기자]

망우 길을 걷는 방법

공원주차장에서 망우리를 답사하는 길도 여러 가지다. 아스팔트 둘레길 사이사이 사잇길이 있기 때문이다. 샛길은 산길이라 불편할 수 있다. 둘레길을 따라 가는 방법이 편리하다. 주자장에서 왼쪽 길로 가면, 유관순 열사가 합장돼 있는 ‘이태원 무연분묘 합장비’를 시작으로 조각가 권진규, 종두법의 지석영, 화가 이인성,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어린이의 벗 방정환, 간송 전형필의 멘토 오세창, 최초의 난중일기 번역가 설의식, ‘님의 침묵’을 읊은 만해 한용운, 분단이 만든 비운의 정치가 죽산 조봉암, 지사(志士)의 품격을 보여준 독립운동가 박찬익, 낙엽 따라 가버린 가수 차중락, 홈런왕 이영민, 사랑에 주린 절규하는 슬픈 소의 화가 이중섭, 주인을 버린 목마를 타고 떠난 시인 박인환 등을 만날 수 있다. 오른쪽 길을 택하면 박인환부터 거꾸로 가면 된다.

편히 갈 수 있는 둘레길 주변 묘소들과 달리 권진규, 이인성, 안창호 등은 능선에 있다. 능선을 타고 가다보면, 고구려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또 한강 방향 쪽 일부 묘비에는 6․25 중 전쟁터 증언하는 총알 흔적이 남아있다. 차중락 묘소는 둘레길에서 ‘망우리 사잇길 화살표’ 표시 부근에 있는 면목역 동원시장 방향 표지판을 따라 300미터 내려가야 한다. 차중락 묘소에 갔다가 다시 올라오려면 조금은 힘들다. 차중락의 팬이라면, 면목역 2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진로아파트 종점에 내려 곧바로 차중락 묘소로 올라가면 된다. 화장실은 주차장과 둘레길 중 아차산과 이어지는 등산로 길에 각각 있다. 화장실은 주차장에서 미리 다녀오는 것이 좋다. 차분히 둘러본다면 4~6시간 정도 필요하다. 

1933년에 개설된 망우리 묘지는 1973년에 만장됐다. 2015년 서울시는 죽은 자들의 공간을 미래를 밝혀주는 공간으로 인정하면서 “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2016년에는 망우리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도록 ‘인문학길’을 조성했다. 길 곳곳에는 다양한 삶의 무늬가 햇살에 반짝인다. 2020년 8월31일 기준 7126기의 묘지가 남아 있다. 

망우묘지관리사무소 
주소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산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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