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킹 메이커(kingmaker)는 대통령(왕)을 만드는 사람, 즉 대통령을 세울 만큼 막강한 권력과 실력을 갖고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우리 역사에서 대표적인 킹 메이커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을 비롯해 하륜(태종.이방원) 한명회(세조), 홍국영(정조), 흥선대원군(고종)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하륜과 한명회 등은 부귀영화와 천수를 누렸으나 정도전과 홍국영, 흥선대원군은 그렇지 못했다. 

정도전은 사대부가 나라를 다스리는 신권(臣權)정치를 지향하다가 왕권정치를 꿈꾸는 이방원 세력에 의해 참살 당했다. 흥선대원군은 둘째아들을 왕으로 세워 섭정정치를 통해 이씨 왕조의 부활을 꿈꾸다가 장성한 아들 고종과 며느리의 협공에 실각당하고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아들을 죽어서도 보지 못했다.

정도전은 자신이 이성계에게 천거, 등용시킨 조준 등 과거 혁명동지세력으로부터 참살 당했으며 흥선대원군은 자신이 간택하고 요직에 등용한 여흥 민씨(명성황후)와 민씨 일가에게 실각당했다. 조준과 여흥 민씨 일가는 왜 배신했을까.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들은 지는 해가 아니라 새롭게 떠오르는 권력을 선택한 것이다. 

조준 등 당시 왕권파는 정도전에게 휘둘릴게 뻔한 나이어린 방석 보다는 곧 왕권을 행사하게 될 방원을 지지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민씨 일가는 늙은 대원군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확실한 왕권을 행사하게 될 고종 편을 든 것이다. 

정치의 속성, 권력을 쫓는 세력들은 항상 직접적이고 확실한 실익을 보장하는 권력자를 향한다. 정도전에게 이방원이 없었다면 조준 등 그의 세력들은 정도전과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고종이 성인이 되지 않았다면 결코 대원군과의 밀착관계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누구보다 정치와 권력의 속성을 잘 알았던 정도전과 대원군. 자신이 왕을 만든 킹메이커라는 공적이 자신의 권력만은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내년 4월에 치러지는 서울시장 선거는 2022년 대권을 방향을 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여도 야도 결코 놓칠 수 없는 큰 판이다. 특히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시장 선거에 승리해야만 자신의 임기 연장과 차기 대권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니 자신이 직접 대권에 도전할 수도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내 나이 80에' 라며 대권등판설에 대해 극구 부인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변화시켜서 차기 집권이 가능할 정도로의 변화"가 목표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의 속성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조준이 이방원을, 민씨 일가가 고종을 선택한 것처럼 권력을 쫓는 세력은 우회로를 선택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을 맡기 전부터 '대권 후보선택권'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상왕(上王)식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서울시장 후보만 선정되도 당심, 민심이 달라지고 권력을 쫓는 무리들의 발길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 정국은 김 위원장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뒤 욕심내지 않고 홀연히 떠난 장량의 길을 갈 것인지 장성한 아들에게 권력을 뺏기지 않으려고 버티다 실각한 대원군의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다른 길도 있다. 직접 대권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2022년 대권승리 이후 김 위원장도 정도전처럼 '유방이 한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장량이 나라를 세웠다'는 말로 자족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상왕식 킹메이커' 행보를 계속하면 그 조차도 보장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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