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어려웠지만 갓난아기처럼 모든 것에 도전”

인터뷰를 진행중이 허준 씨.
인터뷰를 진행중인 허준 씨.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탈북민 재입북’ 관련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월북한 55명 가운데 29명(52.7%)은 탈북민인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는 북한매체 보도 등을 통해 탈북민의 재입북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데 확인되지 않은 인원까지 포함하면 재입북 탈북민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재입북을 하는 이유 대부분은 정착 실패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우리 국민인 탈북민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정착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앞으로 세 편의 [릴레이 인터뷰] 연재를 통해 탈북민 정착의 현실을 알아보고, 문제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인터뷰의 첫 번째 주인공 탈북 대학생&유튜브 크리에이터 허준 씨를 8일 직접 만났다.

-자기소개를 한다면.
▲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이다. 중국을 거쳐 2010년 10월에 한국으로 오게 됐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 학생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동시에 유튜브 ‘Human of North Korea’ 채널을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22만 명이던데, 특별히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 2016년에 방탄소년단(BTS)을 보면서 영상의 힘을 믿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 유명하지 않던 BTS가 외국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유명해져서 다시 돌아왔다. 나도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영상에 담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나.
▲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정치적인 이슈에만 관심을 갖는다. 정작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또 탈북민에게는 새터민, 탈북민, 난민, 북한사람 등 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그런 수식어가 싫다는 게 아니라 우리도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나는 고향은 북한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고향은 다르지만, 다 같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영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게 된 것이다. 

-고향 함경북도 청진에서는 어떻게 살았었나.
▲ 인민군 사단장인 할아버지와 노동당 당원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90년대 후반 식량배급이 중단되면서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다. 해가 바뀌면서 상황이 악화되자 2000년대 초반 어머니가 먼저 탈북을 했는데 북송(北送)을 당했다. 그때가 10살쯤이었는데 수용소에서 어머니를 보며 북한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후 어머니는 다시 탈북을 해서 한국에 오셨고 뒤이어 나도 2005년 14살에 첫 탈북을 하게 됐다. 

-첫 탈북 때 북송이 됐다고.
▲ 당시는 지금처럼 제3국을 거치는 게 아니라 중국에 있는 대사관을 통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도 베이징에 있는 대사관을 통해 오려고 했지만 브로커에게 속아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다. 수용소에 있다가 사회로 나오니까 학교 졸업도 안 되고 남들 다 가는 군대도 갈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3년 후인 17살 때 두 번째 탈북을 하게 됐고 중국에서 몇 년 숨어 살다가 다행히 좋은 브로커를 만나 엄마가 계신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느낌은 어땠나.
▲ 이제 도망을 안 다녀도 되는 게 가장 좋았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특별한 계획이 있었나.
▲ 공부를 하고 싶었다. 북한에 있을 때 북송 경험 때문에 고등학교 학력도 없었다. 한국에 오면 무조건 공부만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원에서 나와 바로 수능 준비하는 학원에 가서 공부했다. 수능공부를 하면서 검정고시를 땄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주위의 도움도 받았나. 
▲ 한국 사회가 좋은 점이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도움을 주는 분들이 많다. 내가 학원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탈북민 정착 지원을 도와주는 곳에서 연결을 해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다. 

-하나원에서 나와 수능 준비를 하는 학원에 가고 바로 대학에 갔는데 적응이 수월했나.
▲ 처음엔 무척 어려웠다.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가 안 됐다. 그러나 좀 지나니까 오히려 학교에 감사했다. 탈북민이라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기회 줬으니까 동등한 필드에서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못 따라가니까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나중에는 좀 더 열심히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됐다.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땠나. 
▲ 한국에서 살던 친구들과 비슷하다. 친한 애들끼리만 친하고, 관심이 없으면 같이 안지내고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다행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나에게 질문도 많이 해주고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웠다. 

-주위에 적응을 힘들어 하는 후배 탈북민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
▲ 사투리나 문화차이 때문에 왕따를 당하거나 적응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그때 내가 해주는 말은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과 친해지고 잘 지낼 수는 없으니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조언하는 편이다. 또 위축되지 말고 오히려 다른 사람은 못 가진 스토리를 가진 북한 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말한다. 다만 차별적인 언어나 뒤에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사자에게 직접 분명하게 말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유튜브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사회에 정착하면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 적응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곳에서 갓난아기처럼 모든 것을 도전하는 것이지 않나.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배워야하는 게 있으면 배우려고 했다. 사투리가 심했는데 사람들과 거리감 없이 대화하기 위해 억양을 배웠다. 사투리를 쓰는 게 잘못된 게 아니고 재밌는 또 다른 억양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다. 대학원에서 공부도 하고 싶고 창업도 하고 싶다. 요즘에는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에 오면 적응을 어려워한다. 대학에 입학은 하더라도 자퇴 비율이 높다. 당연히 여기서 자란 친구들과 차이가 있고, 문화 차이도 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통해 이들의 격차를 좁혀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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