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이 막바지에 이르던 1979년 9월16일 야당의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미국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의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서만 박정희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은 “국내 문제를 외국 언론에 고자질 했다.”며 격노했고 국회 다수의석을 독점한 집권여당은 김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했다. 이 때 김영삼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항변했다. 국민의 비판을 아무리 틀어막아도 유신정권의 종말은 오고야 만다는 경고였고 그 다음 달 유신정권의 종말은 왔다.

그로부터 41년 후인 10월3일 문재인 정부의 개천절 서울 광화문광장 시민집회 강제 봉쇄를 지켜보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김영삼의 항변을 떠올지 않을 수 없다.

시민단체들은 광화문광장에서 문 정권의 실정 비판과 “문재인 하야”를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자 했다. 그러나 문 정권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1만1천여 명의 경찰과 경찰버스 300여 대를 동원해 광화문광장 일대를 차벽으로 둘러싸 시위자들을 원천봉쇄했다.

더 나아가 경찰은 한강대교 등 도심 진입 요로에 검문소 90개를 설치, 시위자들의 광화문광장집결을 차단했다. 경찰은 통행 차량을 세워 차안에 태극기 등 시위용품이 없는 경우만 통과시켰고 광화문 인근에선 행인들을 불시 검문했다.

A씨는 광화문 앞 회사에 당직 근무키 위해 회사 까지 600m 걸어가는 도중 불심검문을 6차례나 당했다고 한다. 군사 쿠테타 라도 일어난 것 같은 긴박감을 자아냈다. 개별 검문을 당한 시민들은 인권유린 모멸감에 분노했다. 1970-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인권유린이었고 대낮 불심검문이었다.

경찰관 집무집행법 3조에 따르면 경찰이 불심검문을 할 때 ‘흉기의 소지 여부’를 조사할 수 있지만 태극기를 조사케 한 조항은 없다. 대법원은 2007년 농민집회 당시 집회의 원천 봉쇄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경찰관 집무집행법과 대법원 판례 까지 위반한 경찰의 과잉 봉쇄는 문 대통령이 “방역 방해 행위에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한데 따른 경찰의 과잉 충성으로 보인다.

경찰은 문 대통령 하야 시위는 막았으면서도 같은 시간대에 서울 시내 백화점·식당·근교 공원 등지의 시민 운집에 대해선 무방비 상태로 방치했다. 경찰은 정부 비판 차량 집회와 관련해서는 9대 이하가 모이더라도 창문을 여는 행위를 금지시켰지만, 공원 주차장 등에서는 수백 대의 차들이 빼곡히 들어찼고 차량 문을 여는 경우도 속출했다.

저 같은 이중적인 경찰 대응은 정부의 10.3 집회 통제가 방역조치를 구실로 문 정권 비판 시위 틀어막기에만 급급했음을 실증한다. 코로나19 방역을 넘어선 ‘정치 방역’이었고 집회와 표현의 자유 침해였다.

하지만 정부는 10.3 광화문 집회를 시위대의 “방역지침 준수 조건”으로 허가했어야 옳다. 그리고 1만1천여 명 경찰을 검문검색이 아니라 시위자들의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등을 계도토록 해야 했다. 하지만 경찰은 경찰집행법과 대법원 판례 그리고 헌법이 보장한 집회와 표현의 자유 마저 어기며 10.3 집회를 봉쇄했다.

“방역 방해 행위에 엄격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던 대통령 엄포를 받들기 위한 경찰의 과잉 충성이었다. 이제 검찰에 이어 경찰도 ‘집권세력의 개’로 전락되었다는 비아냥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국민의 비판을 봉쇄하는 나라는 독재국가이다.

그러나 경찰이 문 정권 비판 시위를 아무리 틀어막는다 해도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그들의 원성까지 짓누를 수는 없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절규처럼 시위대의 목을 비틀어도 “문재인 하야” 외침은 새벽이 올 때 까지 계속 터져 나올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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